옴팡눈의 사내 / 김진진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치 된장 밑에서 오래 묵었다가 방금 꺼낸 무장아찌처럼 검고 찌글찌글한 그런 느낌의 사내였다. 변변찮은 산골 오지에서 그저 손바닥 만 한 땅뙈기나 일구다가 어느 날 불쑥 도심 한 복판에 출현한 무지렁이 촌부와 똑같았다. 둥근 테가 넓게 돌아간 낡아빠진 카키색 모자의 그늘 밑으로 움푹 주저앉은 두 눈은 이상스런 광채를 품고 있는 듯해서 심연의 이끼처럼 검푸르고 칙칙했다. 그 눈은 주먹만 한 얼굴 위로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온 광대뼈 때문에 더욱 작고 깊게 가라앉아 보였다. 눈과 마찬가지로 폭삭 꺼져 내린 양 뺨 사이로 우묵하게 말려들어간 입술은 영락없이 꾀죄죄한 노인의 행색이었다. 중키도 못 되는 바짝 마른 몸매의 이 사내는 대체 몇 살이나 되었을까?

‘완전히 깜씨로군.’

나는 모처럼 마음먹고 하는 집수리에 왜 하필 저런 일꾼을 쓰게 됐을까 스스로를 탓했다. 군을 제대 한 뒤 대학에 복학한 아들을 위해 아래층을 터서 독립된 거처를 새로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러자니 이층 벽을 한쪽 깨부수고 일층으로 통하는 내부계단을 만들어야 했다. ‘일 하나는 끝내준다’는 소개꾼의 말만 믿고 불러들인 것이 큰 실수인 것 같았다. 별쭝맞긴 해도 끼니 때 밥만 해주면 빈틈없이 일을 잘한다고 했다.

이층 거실의 시멘트벽을 혼자서 깨부수는 일은 팔월 초순의 날씨에 감당하기에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가방에서 꺼낸 연장이라곤 달랑 정 하나와 쇠망치뿐이었다.

‘쯧쯧……. 굴착기 하나 제대로 없는 모양일세.’

일찍이 몸의 두께를 지녀본 적 없다는 듯 얄팍한 어깨였다. 벽의 귀퉁이에 뾰족한 정을 대고 쇠망치를 들었다 연속으로 내리꽂는 그의 팔뚝에는 검푸른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갑자기 동작을 멈춘 그가 커피 한 잔을 청했다. 그러잖아도 솟는 연민이 마땅치가 않았던 나는 잠시 지켜보던 눈길을 거두고 이내 자리를 뜨고 말았다. 쿵쿵 울려대는 소리가 삼층 주방까지 들려왔다. 잠시 뒤 커피와 빵을 담아 내려갔을 때 사내는 흐르는 땀으로 물걸레처럼 젖어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바라보는 두 눈은 푸른 비단처럼 이상한 빛을 띠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사내는 금방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오전 내내 속으로 혀를 찼다.

‘어디 한 군데 실한 구석이 있어야지 원, 쯧쯧…….’

보다 못해 정육점으로 달려가 닭을 두 마리 사서 찹쌀과 황기, 인삼, 대추에 마늘, 은행, 오가피까지 넣고 폭폭 고아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저씨, 좀 드시고 하세요.”

떨떠름한 사내의 표정이 상 위를 쓱 훑고 지났다. 짙은 운무에 쌓인 그믐께의 달빛처럼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담배연기 사이로 건너 온 눈빛은 알 수 없는 까탈이 깊게 중첩된, 흡사 처음 발견된 동굴의 입구처럼 어딘가 을씨년스러웠다. 그 눈빛과 마주치자 나는 문득 성질이 괴팍한 일꾼이라던 소개꾼의 말이 귓바퀴 안에서 또렷이 살아났다.

“채식주의자라서……”

그는 정승판서도 부럽지 않을 삼계탕을 거절하고 그저 밥 한 공기와 김치 한 보시기를 원했다. ‘별쭝맞은 일꾼’이란 아마도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싶었다. 번거롭지만 김치와 나물, 오이무침과 풋고추, 김과 된장 한 종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 비워졌다. 나는 사내의 몰골이 자아내는 알 수 없는 느낌들이 대체 무얼까 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개골의 윤곽이 극명하게 드러난 깡마른 검은 피부와 감정을 읽기 힘든 쾡한 눈빛만이 느닷없이 살아나 숨 쉬는 화석처럼 선명했다. 그는 간혹 담배꽁초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마치 낡고 오래된 그물에 덧씌워진 것처럼 어딘가 슬프고 음습했다. 하루 종일 혼자서 깨고 부수고 나르기를 반복하는 것도 어쩌면 괴팍한 일면과 닿아있는지 몰랐다.

드디어 저녁식사가 끝났다. 푸짐한 야채들 속에서 반 공기의 밥과 배추겉절이 몇 쪽, 풋고추 두어 개, 두부조림 한 조각이 그의 위장을 채운 전부였다. 온 종일 해 치운 기막힌 일솜씨에 비하면 닭 모이 쪼듯 간결한 식사였다. 남편과 아들, 나, 사내까지 합세한 밥상이 그의 유별난 마음을 조금 흔들어 주었을까. 돌아갈 줄 모르고 제 얘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그가 정글에서 겪었다는 온갖 참상이 며칠 동안 우리의 눈앞에서 출렁댔다. 파편처럼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터의 실상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충격과 충격은 그의 내부에서 참을 수 없는 멀미를 일으켰다. 정신적 해체는 육체 내부의 소화기관까지 경악스럽게 만드는 것이어서 왕성하던 식성까지 모조리 뒤바꾸어 버렸다. 생생하게 살아남은 이성은 오직 식물적인 것만을 그의 내부에 채우도록 강요했다. 살 내린 얇은 몸을 지니게 된 것도 고엽제 피해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들어주었다. 아마도 월남전에 대한 기억의 저장고가 끊임없이 그의 내부를 헤엄쳐 다니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그가 슬슬 돌아갈 채비를 했다. 작고 마른 어깨 위로 낡은 카키색 모자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지워질 수 없는 역사의 현장에서 용케도 살아나온 자의 짙은 우수가 깊게 패인 두 눈 사이에 응고되어 있는 듯했다. 아직도 말하여질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심연 속에서 으엉으엉 울림을 매기듯 자라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기억이 심장의 지문처럼 돌고 돌아 그의 뇌리를 쉼 없이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옴팡눈의 사내! 둘러치고 메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온갖 참상의 덩어리를 생의 무늬로 간직한 남자. 그가 이제 자전거에 발을 얹고 해질녘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한 세계가 조그맣게 굴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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