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그 후 / 최원현

 

큰어머니 장례를 마친 후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못 찾았다. 뭔가 모를 큰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심장이 벌렁댔고 곧 경을 칠 것 같은 불안이 오금을 저리게 했다. 맥박도 90을 오르내리며 마구 요동을 쳤다. 딱히 큰어머니가 가신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내 신체의 바이오리듬에 문제가 생겼거나 정신적으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잠재적 스트레스가 발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어느 날, 마지막 면회를 마치고 나올 때 흔들어 주시던 그 손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 손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각도를 꺾어 갑자기 내게로 달려오던 수많은 의미의 소리 없는 말들이 한순간 가슴이 먹통이 되도록 점령해버렸다. 그런데도 그렇게 가슴이 꽉 매워졌음에도 다 비워낸 가슴처럼 시원해지는 것이 아닌가. 숨쉬기도 편해지고 몸도 순간적으로 가벼워지는 변화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큰어머니는 내 아버지 어머니 대의 마지막 보루였다. 삼형제 중 중간이었던 아버지를 위시해서 아버지 3형제가 다 가셨고, 맏이였던 어머니를 비롯한 세 자매도 다 가버렸다. 그런데도 왔다가 간다는 것, 떠난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 낯설어지는 것은 나만 못 가본 길이어서일까. 수없이 내 곁을 떠나갔다. 붙잡을 수도 아니 가는 것을 알 수도 없게 살그머니 떠나가기도 했다. 그 이후의 절차나 행사는 산 자들의 체면치레일 뿐이었다. 예우라는 것도 영혼이 떠나버려 당사자는 알지도 못 하는데 무슨 예우인가. 그 또한 산 자들, 살아있는 자들끼리의 위로이며 나도 떠나거든 이렇게라도 해 달라는 바람이고 요청이었다.

돌 달에 아버지, 세 살 때 어머니, 태어나기도 전에 형을 잃어버린 내게 죽음이란 이름으로 떠나간 것들에는 식상할 정도로 익숙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녔다. 달걀에서 자기가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지만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된다는 말처럼 생명 또한 스스로 나올 때 생명이고 움직임이 멈춰지면 죽음이 아니겠는가.

큰어머니의 마지막 손 인사의 의미가 자꾸만 가슴을 친다. 박자와 세기를 달리 해서 가슴을 친다. ‘잘 가거라. 이젠 더 못 보겠구나. 잘 살아라. 나중에 다시 보자’ 그러셨을까. ‘고맙다. 와 줘서. 또 올 거지? 나 잊어버리지 말고 꼭 시간 내어 다시 보러 와라. 그래야 한 번 더 보지.’ ‘참 세월 빠르구나. 어느새 너도 늙었구나. 너희도 멀진 않겠다.’ 문밖으로 나가며 뒤돌아보았을 때도 올려 진 손은 그대로였다. 그게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보름 후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자식도 함께해 주지 못한 이별의 길, 그때 큰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만도 아들 넷에 딸 하나 다섯이나 되는데 정작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는 데는 누구의 배웅도 없이 그렇게 쓸쓸히 외롭게 조용하게 떠나신 것이다. 정적 고요 침묵, 사람들은 슬픔 앞에서도 숫자를 세며 자신을 위로하기 바쁘다. 아흔넷이면 살 만큼 사셨다고, 행복하신 때도 많으셨을 거라고, 설날을 아흔네 번이나 맞으셨으니 복 있는 분이라고. 그런데 그가 가신 지금 고요만 남아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도 그분을 따르고 있다. 내가 포함된 아주 길고 긴 행렬로. 죽음 이후 삶의 행진도 고요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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