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윤경화

 

 

밤하늘의 별이 몇 개인지를 가장 명쾌하게 알려준 사람은 고향에서 머슴살이하던 ‘용이’라는 청년이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마을 조무래기들이 개울의 돌담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그 옆에 열아홉 살의 용이가 앉아 있었는데 언제나 말없이 하늘의 별만 바라보았다. 사실 별을 세는 것인지 구경을 하는 것인지 어린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던 어느 날 “용아, 하늘의 별이 몇 개고?”라며 넌지시 말을 걸었다. “석 섬 닷 말.” 무심한 듯했지만 확신에 찬 대답이 기다릴 사이도 없이 돌아왔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늘 공상에 빠졌는데, 용이는 별을 세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생소한 수의 단위지만 믿어야 할 것만 같았다. 회상해 보면 ‘석 섬 닷 말’에 그의 신념이 스며 있지 않았나 싶다. 훗날 나는 용이의 대답이 ‘어린 왕자’ 속의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 구렁이의 그림과 의미가 많이 닮았다고 종종 생각했다.

석 섬 닷 말이란 말은 매우 명징한 것 같았지만 수없이 많은 물음표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어느 초겨울 저녁,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에게 신비로운 그 수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아이고, 용이 새경이네. 니가 그걸 우째 알았노?” 열아홉 살의 청년이 일 년 동안 일하고 받는 대가라고 했다. 여름이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논밭에서 일하고, 겨울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나뭇짐에 묻혀 지내는 걸 보았다. 고된 그의 일상 속에 석 섬 닷 말의 별이 쌓여가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알았다.

그 뒤 밤하늘의 별은 용이가 새경 받은 나락을 확 뿌려놓은 듯이 보였고, 무변광대하던 우주도 좀 더 친밀하게 다가왔다. 석 섬 닷 말의 의미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진화하면서 나의 의식 세계를 이루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용이’라 부르자 아이들조차도 ‘용이’라 부르던 머슴의 별은 내 공상의 세계를 허물었고 정물이던 나의 별을 살아 움직이게 했기 때문이다.

학령기에 이사를 나오면서 용이 소식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고 별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경건하다. 특히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려견 금순이와 산책을 하다가도 나는 별을 쳐다보는데, 녀석은 앞산만 바라본다. 별이 아름답게 빛을 내며 신비로운 메시지를 보낸다 해도 녀석은 고개를 젖혀 그 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 내가 평상에 누워 별을 보면 저는 옆에 엎드려 나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물론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나을 게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러함에도 나의 자부심을 굳건히 받쳐주는 것은 별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요즘도 가끔 용이의 나뭇짐 속에 쌓여가던 별이 생각난다. 간절함이 있었던 그에게는 새경이 별이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에게는 아내를 형상화한 장미 목걸이를 한 어린 왕자가 별이었고, 알퐁스 도데 〈별〉의 양치기 소년의 눈엔 꽃잎 같은 별을 닮은 스테파네트가 별이 아니었을까. 금순이의 별은 어쩌면 긴 시간 함께 늙어가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늘푼수’ 없는 살이 방식이 탐탁지는 않지만 쉽게 변하지 않아서 금순이의 별일 수 있을 듯싶다.

고향의 용이로 인해 어린 시절 나의 공상은 균열이 갔고 별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간절함을 맑은 영혼으로 바치질 못하고, 가없는 허공만 좇는 사람인 듯하다. 가끔 아들이나 남편이 나의 별인가 싶다가 어느 때는 한 줄의 문장이라 여기기도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온전히 내놓지 못하는 까닭은 별은 지성스럽고 절실함이 있는 곳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의 시간은 늦가을인데 불모지 같이 얼었던 정원에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다. 목단이 생장을 멈추고 에너지를 모아 가지마다 꽃을 달고 있는 중이다. 탐스러운 꽃은 목단의 별이다. 지난가을에 보낸 나의 치성도 거들었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마주하는 소박한 현상 속에서 예전보다 귀한 것이 보인다. 사물의 매력이 선명하게 다가와 가슴이 설렌다. 나머지 생이 점점 매혹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주 공간에는 지구의 사막과 해변의 모래보다 훨씬 많은 별이 있다고 하지만 아득하여 닿을 수 없으니 사람은 각자의 별을 마음속에서 만들었다. 천문학자보다 명쾌하게 별의 숫자도 풀 수 있다. 석 섬 닷 말의 새경으로, 한 떨기 꽃잎으로도, 아름다운 어린 왕자로도. 목단이 용이의 별처럼 내 곁으로 오듯이 올봄에는 머뭇거리던 뭇별이 많은 이의 가슴에 쏟아질 것 같다. 가장 친숙한 별은 두근거리는 마음에 내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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