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 문육자

 

 

스산한 바람이 품속으로 왔다. 돌담엔 창백한 햇살이 구르고 있다. 시립미술관에서 나오면 매양 들르는 구두 수선방. 수선과 닦기를 겸하는 곳. 거기엔 몇십 년을 자리 지킴이 아저씨가 구두를 닦다가 하늘을 보곤 한다. 가을이 머뭇거리며 가는 소리가 들리고 늦을세라 초겨울이 색깔 없이 들어서는 환절기다. 비염이 무심히 찾아오고 가슴은 텅텅 비어간다. 아저씨는 눈을 맞추며 한 평의 집에서 쉬었다 가란다. 불을 쬐며 구두를 다 닦을 때까지 아저씨의 손놀림을 본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유년의 단짝.

그는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크고 의젓하며 공부 잘 하는 반장이었다. 그가 맨 앞자리, 그것도 귀퉁이에 앉는 나와 굳이 짝을 하겠다고 나서서 짝이 되었으니 낯가림이 심한 나는 뭔가 트집을 잡고 싶었다. 두 사람의 공용인 낡고 작은 책상에 금을 그었다. 이념을 달리 한 것도 뭔가를 헤아리며 나눈 것도 아니었으니 보이지 않는 시비였다. 아니, 치졸한 행위였다.

“이쪽으로 넘어오면 안 돼, 연필 한 자루도 굴러와도 안 돼. 팔꿈치 내밀지 마”

“그래 알았어,”

짧은 대답 외에는 반응조차 더딘 그에게 신신당부하면 알았다며 미적거리는 대답만 넘겨줄 뿐이었다.

시비할 거리라고는 전혀 주지 않고 잘 지켜주어 그 놀이조차 싱거워 가끔 팔꿈치를 옆으로 내밀어보아도 그의 영역은 침범해지지 않았다. 워낙 작은 몸이라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으나 아주 뒷날에 그가 표나지 않게 자기 쪽으로 금그어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 쉬는 시간 잠시 나갔다 오면 내 양철 필통 안에 키 재기 하는 몽당연필이 아닌 고급연필의 개수가 늘어가고 있어 물어볼라치면 정색을 하며 모른다고 하거나 누구의 소행인지 보지도 못했단다. 그의 짓임이 짐작은 되나 따질 만한 형편이 전혀 아니라 모른 체했다. 결핍과 가난에 옷을 입히며 따뜻한 피붙이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내 짝이 되어 주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 진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은 한 사람씩 상담 시간을 가졌다. 그의 차례였다. 조곤조곤 얘기하던 선생님의 목청이 느닷없이 높아졌다. 그에게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지는 걸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미 자신과 관계없어도 놀라 반쯤은 초주검이 되었다.

“입학금과 3년을 내가 책임진다고 하잖아. 그런데 왜 진학을 포기해?”

달래던 선생님은 언성만 높인 것이 아니라 심한 말도 했다. 우린 귀를 열었다. 그의 대답이 귀를 타고 들어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구두닦이를 하시는데 이젠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 둘을 돌보아야 하는 가장의 몫이 자신이라며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그대로 하기로 했단다. 선생님은 씩씩거렸고 알 수 없는 울분 같은 것을 느끼는지 천장 한 번 학생 한 번 쳐다보곤 하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시간이 흐르고 선생님과 그와의 타협점은 야간 중학교 진학으로 끝맺음이 되었다. 깊은 기억의 골짜기에서 대동중학교 야간인 것을 길어 올린다.

그의 가정사를 알고 난 이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양철 필통에 수시로 연필을 불려주던 그에게 무슨 말을 하며 도시락 반찬에 졸인 달걀을 몰래 넣어 두곤 하던 그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보아야 할지 난감한 채 졸업을 했다. 특차로 합격한 나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문으로 그는 학교생활 일 년을 버티지 못했고 늦은 밤에도 별빛 아래 구두를 닦고 있는 그를 만난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르쳐주는 그의 일터를 일부러 피해 다녔다. 만일 만난다면,

“이 자식아, 너 미쳤니? 네가 무슨 돈이 있어 값비싼 연필이며 달걀 반찬을 내게 주었니? 얼마나 더 부끄러워해야 직성이 풀리겠니?”

하며 두들겨 패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건 진정 가슴 아픈 고마움을 여과 없이 뱉어낸 것임을 헤아렸겠지만.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의 일터로 조심스레 가 보았다. 부산공보관 앞 길거리. 나를 보자 당장 자기 자리로 데려가서는 구두를 벗으라고 했다. 몸은 천근만근 내려앉아 거절할 수도 일어설 수도 없어 값싼 구두를 벗어주었고 정성 들여 닦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기쁘고 고맙다고 했고 다시 들르라고 했다.

그의 부탁대로 5년 후에 다시 그 자리에 갔다. 부산공보관에서 친구랑 2인 시화전을 끝낸 마지막 날이었다. 반가워하나 예전과 달랐다. 얼굴은 어둡고 손끝도 둔했다. 구두약이 묻은 그의 손에서 물결 같은 떨림을 읽었다. 다시 오겠다는 인사에 그의 숨소리만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 이후 그는 홀연히 사라졌고 나는 타향의 세월 반백 년을 넘겼다. 서울 시립미술관을 찾고 그 앞을 지나며 구두 닦는 아저씨의 한 평 만한 집을 보면서 그를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환절기로 기억된다. 환절기, 어디가 아픈지 요량을 하지 못하고 온몸이 젖어 운신할 수 없고 회색의 안개 속에 바람만 시름없이 분다. 그 몽롱한 아픔을 그는 알까. 왜소한 꼬마가 가슴 두근거리며 사람을 사랑하는 씨앗 하나 주워 아직도 간직하고 있음을 짐작할까. 오늘도 환절기의 초입에서 그리움 하나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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