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무렵 / 이두래

 

들녘은 이미 휴면에 들었나 보다. 드문드문 짚동이 아름으로 서 있고 염소들은 늙어 빈약해진 어미의 젖가슴을 파고들 듯 풀을 찾아 들녘을 헤맨다. 짧아진 해에 성급해진 농부가 잊고 갔는지 논 가에 흙 묻은 장화가 놓였다. 금방 논으로 걸어 들어갈 것처럼. 아직도 거둬들이지 못한 무엇인가가 남았을까. 나는 가지런히 장화를 뉘어 놓는다. 봄이 오기까지 농부는 잠시 흙을 잊고 쉬어도 좋을 것이다.

잡념으로 꽉 찬 머릿속을 비워내고 황량한 빈 들 같은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 밭이 비었다면, 들이 비었다면 곳간은 차야 할 것을 어디에고 메마른 바람만 인다. 바람은 내 머릿속의 잡념만은 휘몰아가지 못하고 세상은 늦가을 풍경에 잠겼다.

빈들을 거침없이 훑고 오는 바람 소리인가. 어디선가 가을을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노동으로 잊었던 바람 든 다리의 통증이 밤이면 찾아온다고 했다. 가을은 늙은 농부의 앓는 소리로 깊어간다. 나는 무엇엔가 통증을 잊을 만큼 근면한 적이 있었던가. 고질병인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씨뿌리고 가꾸는 농부의 혼신을 닮으려 한 적이 있었던가. 괭이자루 손에 쥐고 깊이 땅을 일구지 못했고 흐르는 땀방울 닦을 새도 없는 성실을 실천하지 못했다. 깨작깨작 얕은 호미질로 경작의 흉내만 내다 어설픈 호미 날에 상처만 입었다. 그래서 들녘에 서면 자신이 부끄럽고 마음엔 바람의 공명이 들려오는지도 모른다.

바닥을 드러낸 강가에 마른 갈대가 외롭다. 가을엔 강江도 마른다. 물이 없는 갈대의 풍경은 쓸쓸하다. 갈대는 물에 발을 담가야 더 매끄러운 음향을 연주한다. 고운 파동을 일으키며 강을 건너는 바람, 바람 탄 갈대들의 스킨십이 들려주는 소슬한 합창이 그립다. 갈대는 저 홀로 메마르고 물, 저 홀로 흐르되 춤출 수 없으며 갈대, 저 홀몸으로 노래할 수 없다. 자연은 쇠락해 가면서도 어우러져 아름다운 완성을 놓치지 않는다.

물기 가신 산 녘은 바스락대는 소리로 작은 소요가 인다. 바람결에 나무들은 살 비늘 같은 잎새를 떨구었다. 물기를 잃은 낙엽들이 살을 비비며 모였다. 공원 귀퉁이에 노인들이 처진 어깨를 기대고 앉은 모습과 닮았다. 나이가 들면 물기가 빼진다고 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주무셨던 자리의 먼지를 쓸어 모아 손가락으로 꼭꼭 찍어서 다른 손에 거두어 마당에 버렸다. 할머니의 낙엽이 바람을 탔다. 할머니는 낙엽을 떨구고도 일상인 듯 아무런 슬픈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나무처럼 계절에 순응하며 의연했던 것일까. 모든 것들이 제빛을 잃고 건어물처럼 주름져 바싹 말라가고 있다.

가을이 꼬리를 감출 즈음, 비가 내리는 산은 에센스를 바른 듯 촉촉이 가을 잔향을 풍기고 메말라가던 마음도 주름을 편다. 그런 날은 산에 들고 싶다. 산은 젖 냄새를 풍기는 어머니처럼 나를 부른다. 포근한 요 위에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듯 산길은 폭신하고 편안하며 평화롭다. 늦은 가을비는 풀풀 날리는 흙을 잠재우고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를 잠재우고 버석거리는 내 마음도 잠재운다.

도시의 거리를 쓸쓸히 떠돌던 가로수의 낙엽이 가을비에 젖는다. 우산을 받고 한 손은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발끝을 바라보며 걷는다. 낙엽이 보도블록 위에 그려진 판박이 그림처럼 곱다. 낙엽들의 아름다운 에필로그. 낙엽을 보고 쓸쓸하지 않은 것은 딱 이즈음이다. 내 빛깔은 우중충한 무채색이어서 부끄럽지만, 낙엽과 어우러지고 싶어 한참 동안 서 있다. 잦은 마른기침에 따뜻한 물 한 컵 들이킨 듯 습윤의 색채가 주는 위로에 상쾌한 기분이 된다. 비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잠시 붙들어 놓는다. 그것은 일시적 유예일 뿐 비로 인해 가을은 더 깊어간다.

빈손으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마음이 시렸다. 나는 가을을 갈무리하며 무엇인가 손에 쥐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손에 쥐면 묵직한 실체를, 가슴에 안으면 뿌듯한 포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욕심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낙엽은 빈손으로 떠나면서도 아름답게 사위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낙엽을 보고 쓸쓸해하지 말자.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비움의 시작이라는 걸, 가을은 아름답게 떠날 줄 아는 지혜를 내게 깨닫게 해준다. 항상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거둬들여야 하는 인간의 시점으로 가을을 바라본다. 가을은 지금 홀가분하게 다 비워내고 홀로 겨울을 맞고 있다. 비어서 아름다운 가을처럼 빈손이라 슬퍼하지 말자. 한 움큼 거머쥔 손에 다시 호미질을 할 수 없고 혼자 부르는 갈대의 노래는 음률을 이루지 못한다. 또 한 번의 가을로 나는 더 깊어진다.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도 빈들로 나가고 싶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농부가 장화를 벗어 논을 향해 두었던 것은 내일 다시 논을 일구기 위한 예비가 아니었을까. 서리 내려 싸한 늦가을 아침이 좋다. 뚜벅뚜벅 논을 휘돌아 희망의 이삭을 주워 주머니 속에 굴리며 돌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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