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머리 / 염정임 

 

 

 

 

 우리들 주변에서 점차 그 모습을 감추어가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도 특히 아쉬운 것이 바로 할머니들의 쪽찐 머리 모습이 아닌가 한다.

 쪽머리는 누구나 알다시피 길게 기른 머리를 뒤에서 한 가닥으로 땋아 동그랗게 쪽을 찌어 비녀를 꽂는 머리 모양을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중년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으레 그런 머리모양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쪽찐 머리를 한 할머니들을 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그리움에 잠기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 모습을 보기 힘들다.

 내 주위에도 한평생 쪽을 찌다가 칠순이 넘어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신 분들이 더러 계신다. 어찌 보면 더 젊어 보이고 머리손질이 간편하기도 하겠으나, 어쩐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 1,20년 후면 이 쪽진 머리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리라. 사라진 모든 풍물처럼 쪽머리도 사진이나 그림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생활에서 사라진 떡살, 등잔, 함지박, 놋그릇 등은 황학동 고물시장에 가면 볼 수 있어 메마른 현대생활 속에서도, 토방의 흙냄새처럼 푸근한 회고의 정(精)을 불러일으키지만, 사라진 헤어스타일이야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인가?

 가끔, 화보나 광고에 날아갈 듯한 한복을 입고 쪽머리를 한 모델들을 보지만, 그 요요한 자태에서는 어쩐지 할머니들의 쪽머리에서 느끼던 소탈하던 친근감은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머리 빗으시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과였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참빗으로 머리를 몇 번이나 빗어내리고, 동백기름을 발라 한 줄로 잘 땋아 내렸다. 댕기의 한쪽 끝은 입에 물고, 다른 쪽 끝부터 잘 돌려 맨 다음에, 손에 머리를 감아 돌려서 닳고 닳은 백동비녀를 꽂으시곤 했다. 아름다운 몸짓이었다. 그건 하루를 시작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아침 햇살 속에서 할머니의 얼굴은 어떤 숙연함과 맑음으로 빛났던 것을 기억한다. 젊어서는 탐스러웠을 할머니의 쪽머리는 점점 작아져서 나중에는 갓난아기 주먹만해졌다. 가끔 할머니는,   "비녀가 이리 무거우니 이제 갈 때가 되었나보다"   하시며 흘러내린 비녀를 다시 꽂으시곤 했다.

 흰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머리를 곱게 쪽찐 할머니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뜰을 거니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녀는 땅보다 이미 하늘 쪽에 가깝게 사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었다.

 쪽머리를 자세히 보면 그건 바로 매듭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옛 여인들 만큼 매듭맺기를 좋아한 여인들이 있을까? 적삼의 단추도 매듭으로 대신하고, 노리개나 갓끈도 매듭을 만들어 달았었다. 그들은 정한(情恨)도 바람도 꼭꼭 매듭지어 마음 갈피에 감추고 살았던 것일까?

 머리를 빗는 시간은 그녀들이 모든 가사와 인습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순수한 자아(自我)로 돌아오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보면서 마음도 한올 헝클음 없이 빗질을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인고(忍苦)와 기다림을 삼단 같은 머리와 함께 가닥가닥 땋아서 매듭을 맺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단심(丹心)인 양 붉은 댕기로 마무리해서 비녀를 찔렀으리라.

 쪽찐 머리는 단아하고 정갈하다. 그것은 바로 옛 여인들의 심상(心象)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속(時俗)도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옛 여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유풍(遺風)일지도 모르는 쪽머리가 사라짐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와 함께 안존하고 후덕하면서 맺음과 끊음이 분명했던 여인들의 굳은 심지(心地)도 우리들 가운데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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