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남은 시인 / 반숙자

어쩌다 핀이 꽂혀 종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소음으로 내 노래가 들리지 않아도 꾸역꾸역 노래를 부르는 심사를 모르겠다. 질기기도 하지. 누가 듣는다고 음치의 노래를 해질녘까지 부르는가.

  처서가 여인의 폐경기처럼 찾아왔다. 윤기 넘치는 초목들이 어느 날을 경계로 무더위가 가신 듯이 윤기를 잃으면서 가을이 자박자박 건너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십 수 년의 시공을 건너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시인이 찾아오고 또 노래가 절절히 가슴을 울리는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둥근 달이 고요히 창에 비치면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 봐

  오래전에 우리 고장의 문인들이 무슨 모임 끝에 노래잔치를 한 일이 있다. 노래방처럼 반주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악기도 없이 그냥 서서 육성으로만 부르는 노래였다. 시를 쓰는 윤 시인이 일어났다. 작달막한 키에 중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머리가 희끗했다. 그분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아 가을인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윤복진 작사, 나운영 작곡의 우리 가곡이었다.
  첫 연은 평범하게 시작하더니 세 번째 연 아아아부터 음폭이 넓어지면서 심장 깊은 곳에 모아두었던 어떤 한까지 다 토해내다가 물동에서부터는 다시 조용히 중저음의 소리로 갔다. 그 사이의 그 공간은 완전히 가을이 물들어서 숨소리조차 죽이며 저마다 자기 가을로 들어갔다.
  그것은 충격에 가까운 감동이었다. 그분은 학교 선생님이고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데 그때까지 문학모임에서 한 두 번 밖에 뵌 일이 없는 분인데도 그 노래 소리가 내 마음의 비밀창고에 저장되었던 모양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분이 쓴 시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 부른 노래는 기억의 창고에서 무한 리필되면서 가을의 문을 여는 것이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시로 기억되기를 바라겠지만 내 경우는 노래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당시 윤시인의 인생계절도 가을로 접어들어 더 실감이 나게 불렀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상은 외모로부터 시작해서 작은 몸짓, 미소, 입담 재치까지 한 몫을 차지하며 기억된다. 그런데 나는 외모는 잘 기억 못하면서도 그가 부른 노래로 기억하는 편이다. 역설적이게도 내 주제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그때의 자신의 감정을 노래에 담아 표현하는 기술은 사람의 기분을 한껏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어서다. 여행가는 버스에서 내내 조용히 있던 사람이 노래 한곡을 부른 후 인기상승을 타는 것도 사람들은 저마다 노래에 대한 감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싶기도 하다.
  언젠가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하는 철야기도에 참석한 일이 있다.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 마음은 하느님을 향한 뜨거움으로 타오를 때 그날 강사로 나온 오신부님이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성가가 아니고 우리의 가요 "나 혼자만의 사랑"이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나 혼자만을 그대여 생각해주, 나 혼자만을 그대여 사랑해주
  나 혼자만을 그대여 믿어주고 영원히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해주
 
  까만 수도복을 입은 사제가 눈을 지그시 감고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가요가 아니고 성가였다. 하느님께 드리는 절절한 사랑고백이었다. 어떤 유창한 강론보다도 더 애절하게 영혼의 심층을 파고드는 성가였다. 그때부터 내 18번이 그 노래가 되었다.

  오늘 나의 발동은 유튜브에서 김영환 테너가 부른 "아 가을인가"를 듣고 시작되었다. 그 테너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가 윤 시인이 생각났고, 시인이 불렀던 그날이 살아나면서 어떤 해갈을 맛보는 느낌이다. 그것은 일상이 삭막해졌다는 증거다. 요즘 나는 유치찬란하고 싶다. 체면도 벗어놓고 허세도 벗어놓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지금 윤시인은 세상에 없고 노래로만 내게 존재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기억의 출렁다리가 이어져 있다면 시인은 내 글을 보고 빙긋이 웃을 것이다.
  앞뜰 호두나무 잎새에 가을이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짧아져서 나무의 실루엣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호두는 다 털리고 잎새만 남은 호두나무, 어쩌면 우리 인생도 저 모습일지 모르지. 이제 고만 불러야겠다. 가을은 이미 물동이에만 온 것이 아니고 내 속속들이 뼛속까지 물들어 구멍을 내고 있으니…
  오늘밤엔 포도주 한 잔 따라놓고 오래전에 쓰다만 편지를 꺼내어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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