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계절 / 문경희 


   겨울 연밭은 폐사지 같다. 스산하다 못해 괴괴하다. 여며 싸고 친친 감아도 몸보다 마음이 체감하는 기온으로 뼈마디가 시려온다. 이따금 얼어붙은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철새들의 따뜻한 인기척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이 냉기를 견딜까.
   대궁만 남은 연, 아니, 대궁조차도 말라 비틀어져 버린 연이 얼음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수중발레를 하듯 겅중겅중 허공을 찍고 있는 저 무념의 발자국들. 물을 딛고 서 있지만 그들의 몸에서 물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곡기를 끊으시던 어머님처럼, 한 모금 물로 입을 다시는 일마저 부질없는 것일까. 어머님은 결국 인생의 겨울을 넘지 못하셨지만 저들은 분명 생명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잠시 휴면기에 들었을 뿐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깡마른 몸 어디에서 살아있음의 증거를 찾아야할지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더러 홀로 우뚝 서고, 더러 휘어지고 꺾인 모습은 낡은 철골 구조물을 연상케 한다. 쓸쓸한 계절을 뼛속까지 쓸쓸함으로 채색하기 위해 누군가 혼을 실어 놓은 설치미술품 같다 할까. 인연이란 핀 곳에서 지고, 진 곳에서 다시 피어난다지만, 이 순간, 그들에게서는 끝 외에 더는 무엇도 읽을 수가 없다. 연蓮이라는 고아한 이름마저 짐이 될 것만 같다.
   새삼 명치께가 아릿해진다. 어떤 손이 있어 저 가난한 뼈대에 살을 보태고 숨결을 불어 넣어 물오른 집 한 채를 완성할까. 도톰해진 꽃문을 열어 지나간 여름날의 영화를 되살릴 수 있을까. 꽃이라는 다정한 이름에서 하염없이 멀어져 있는 꽃의 형상들이 자꾸만 꼭뒤에 매달린다.
   얼기설기 몸을 포갠 연의 무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상형문자 같은 연대들만으로 앵글이 그득 찬다. 줌 기능을 이용해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해보지만, 멀어도 가까워도 그들이 줄기차게 뱉어내는 언어는 변함이 없다. 외려 해가 기울어 갈수록 그들의 문장은 점점 더 남루해질 뿐이다. 이러다가 저들도 어머님처럼 밤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불현듯, 그들의 몸 위로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오버랩 된다.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처음 접한 것은 얼마 전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였다. 그의 청동 조각 작품 하나가 런던 모 경매에서 미술작품 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와 함께 본 자코메티의 얼굴은 충격적이리만큼 작품과 닮아 있었다.
   푸석한 머릿결에 매서운 눈매, 굵고 깊은 주름이 밀어올린 날카로운 콧날, 거기다 광기가 번뜩이는 시선까지, 예술가의 고뇌가 서린 얼굴이 있다면 바로 그런 얼굴이지 싶었다. 그의 꽉 다문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쏟아져 나올 듯했다. 어떤 수식어나 미사여구가 가미되지 않은 극 건조체의 문장만이 그와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빈약한 체모를 가졌더라도 서 있을 수 있는 한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허리를 곧추 세우게 만들던 자코메티의 말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대개 홀로 또는 여럿이 서 있다. 그것도 길게 늘인 엑스레이 사진처럼 뼈대만 앙상한 몸으로. 골격만 남은 인체에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발, 그의 작품세계가 두 가지 특징으로 대변될 정도다. 작품 ‘걷는 사람’ 시리즈가 그러하고, ‘광장’이 그러하고, ‘개’가 그러하고….
   그에 의하면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다. 육신이 왜소하다는 것은 영혼의 왜소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극히 고독하고 불안하지만 끝내 직립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 그의 작품이라고 이해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평자들 역시 자코메티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입을 모은다니 내 눈에 보이는 나와, 나의 본질 사이에도 그만큼의 간극이 있다는 말일까. 더 높이 떨치고 더 많이 가지는 것으로 순간순간 몸피를 부풀리지만 실상 존재의 정수란 깎고, 또 깎아 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작품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연의 실존일까. ‘살을 발라낸 생선가시처럼 빈한한’, 애초부터 존재한다는 것의 실체는 이렇듯 단출한 것이었을까. 또 다른 자코메티가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이곳에 펼쳐 놓은 듯 고난의 계절, 겨울을 건너는 연의 뒷모습에 울컥 목이 멘다.
   하긴, 온통 아름답기만 한 것이 어디에 있을라고. 그만큼 남몰래 걸어야 하는 자기만의 뒤안길은 혹독했으리라. 그 누구도 거들 수 없는 길, 죽음만큼이나 외로운 길의 끝에 비로소 지난여름의 영화가 있었던 것이라고, 연은 온몸으로 자코메티의 계절을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면서, 내가 아니기도 한 것들을 깎아내면 나도 나의 실체에 가닿을까. 내가 감추고 있는 나의 최소한이 저 연대들과 무어 그리 다르랴. 한 겹 한 겹 수의가 입혀지던 어머님의 가녀린 몸처럼, 석양을 가로지르는 연의 모습들이 많은 것을 생각게 만든다.
   시부저기 옷깃을 여며 잠근다. 아직은 이도저도 언감생심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손에 쥔 것들이 여전히 소중한 내가 감히 그 궁핍한 무욕의 경지를 흠모할 수 있을라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섣부르게 뱉는 법이 아니라면서도, 꾸역꾸역, 뼈만 남은 풍경을 앵글 속으로 당겨 넣는다.


문경희 님은 《문학도시》 등단, 제12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상. 수필집:《창밖의 여자》 《물의 기억》 《그 바다에 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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