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뽑다 권남희  

 

 

 

벽이 갈라진다너무 큰 못을 벽에 겨누고 두드려 박은 것이다오래된 벽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새해 아침부터 못 박을 곳이 없나 벽을 바라보다 일을 냈다집안 곳곳에 못을 박고 뽑아낸 흔적과 새로 박은 못들이 있다벽은 이미 비명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대못을 박기 시작한다못 박히는 소리는 온 집안을 울리고 아래 위층까지 대못 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망치소리는 내 팔을 따라 몸 안으로 돌아다니며 진동 하다가 머리까지 흔들기 시작한다엘리베이터 안에는 밤 아홉시 이후에는 벽에 못을 박지 말아달라는 문구가 붙어있다아침이지만 잠시 숨을 고른다.

새집을 계약하고 이사했을 때 벽들은 얼마나 순결했던가저 눈밭에 사슴이라더니 벽들은 순대면 절대 안 될 것처럼 잡티하나 없는 뽀얀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하얀 실크벽지로 마감한 그 우아함에 매혹당해 벽을 보고 맹세를 했다 오래도록 벽의 순결함을 지켜주고 그 어떤 상처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아주 작은 못조차 박는 일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을 것처럼 벽을 바라보다 행복한 상상까지 했다이 벽은 앙드레지드나 모파상화가 파울 클레가 드나들며 영감을 얻었던 튀니지 시디부사이드의 카페 드나트 하얀 집처럼 행운을 불러올 것이라고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쪽빛 그림의 커다란 액자를 건 다음 아무 것도 걸지 않았다대부분 액자는 조심스럽게 벽에 기대어 두거나 창고에 넣어두었다꼭 걸러두고 싶은 그림이 있을 때는 벽과 얼마나 조화를 이룰까 간격을 재고 망설이기를 수없이 하며 벽을 아꼈다벽이 다칠까봐 늘 조심조심 바라보기만 했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벽은 한동안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슬슬 못을 찾기 시작했다벽을 위한 순결서약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지쳐가던 나는 지루하다는 핑계를 댔다아무 것도 걸어둘 수 없는 벽은 바보 같고 할 말 있는 것들이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고 얼굴을 내밀었다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낙서로 가득한 술집의 벽은 예술성을 얻는 경지인데 아무도 찾지 않는 벽은 이기적일 뿐이었다시간이 흐를수록 벽은 음식물이 튀고 먼지가 내려앉고 누렇게 바래 더 이상 우아하지도순결하지도 않았다더러워진 벽을 거린다며 우리는 각자 젊은 날 받았던 상장부터갖가지 걸개액자를 꺼내어 걸기 시작했다벽을 함부로 다룰수록 못이 수시로 박혀 벽이 흔들렸다거실에안방에점점 더 많은 액자더 큰 액자가 걸리는 날은 대못이 벽에 박혔다.

벽은 못을 거부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새해 아침 못 박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남편은 정초부터 왜 못을 박느냐고 불평을 한다그의 소리를 무시한 채 못을 더 세게 두드리다 문득 남편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못 박기로 대신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그와 나의 관계도 그렇게 서로에게 못 박기나 하다가 가슴은 점점 멀리 갈라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만남을 시작했을 때사랑을 키워나갈 때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는 말만 해주고 마음 상할까봐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노력했었다새로 사들인 화초에 정선을 들여 꽃을 피우는 것처럼 언제나 꽃을 피우고 가꾸는 일에 몰두했다.

어느 순간 서로가 주는 덕담 한 마디에 환호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사라졌다마음은 투박해진 채 허물이 없어졌다는 핑계로 못 박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서로는 못이나 박는 벽이 되어주고 상처받은 벽은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담아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놓기도 한다벽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않고 카페 드나트처럼 영감을 주지도 않는다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을 때 벽에게 못질을 시작하는 것이다못 박힌 채 더렵혀진 벽은 자꾸만 부스럭거리고 있다.

우리는 못이 뽑히지 않아 견질 수 없는 아픔이 밀려들 때 서슴지 않고 서로에게 더 큰 못을 박았다너무 큰 못을 견디지 못하고 갈리진 벽을 어루만진다계속되는 못질로 믿음을 잃은 벽이곳저곳의 균열은 벽 안에 갇혀 있다가 큰 못 한방에 끝내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못 박기를 그만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장도리를 살펴본다박기기능도 있지만 못을 뽑을 때도 필요한 장치가 있다

노늘 그동안 박았던 못을 뽑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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