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서울 출생으로 아호는 육당(六堂). 일본 와세다 대학 고등 사범 지리역사과 중퇴. 사학가이며 문학가. 한국 최초의 자유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1908년에 자신이 창간한 '소년'지에 발표한 것을 비롯하여 시조 수필 등에 선구적인 공적을 남겼고 잡지 '아이들 보이' '청춘' 등을 창간. 12세 때 대한 흥국책과 우국의 논설을 발표하고 1919년에 독립선언서 기초 책임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나 1928년부터 조선사 편찬위원이 되어 일본의 동화주의 목적으로 만드는 편찬 작업에 참여하여 친일파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수필집 {심춘순례}는 1926년에 나온 기행문집이다. 작가는 평소 자신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있는데 육신의 어머니와 더 큰 어머니인 국토(國土)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국토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나라 경승지, 유적지 33개소를 찾아 예찬과 유래로 민족 애환을 담은 2백자 원고지 770매에 달하는 장편 기행수필이다. 여기 게재한 [심춘순례 서]는 그 문집의 서문을 발췌한 것이다. 우리의 자연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상기시켜 주는 의의를 느끼게 한다.



尋春巡禮 序 / 崔南善


조선의 국토는 그대로 조선의 역사며, 철학이며 시(詩)며, 정신입니다.
문학(文學) 아닌 채 가장 명료(明瞭)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조선인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風雨)라도 마멸(磨滅)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조선역사(朝鮮歷史)의 작은 한 학도요, 조선정신(朝鮮精神)의 어설픈 한 탐구자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愛慕)·탄미(嘆美)와 같이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山河大地)에 가지는 자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둥에도 말할 수 없는 감각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色讀)하게 된 뒤로부터 조선이 위대한 시(詩)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고, 또 완전·상세한 실물적(實物的) 오랜 역사의 소유자임을 깨닫고, 그리하여 쳐다볼수록 거룩한 조선정신의 불기둥에 약한 시막(視膜)이 퍽 많이 아득해졌습니다.
곰팡내나는 서적만이 이미 내 지견(知見)의 웅덩이가 아니며, 한 조각 책상만이 내 마음의 밭일 수 없이 되었습니다. 도리어 서적과 책상에서 병신된 내 소견을 진여(眞如)한 상태로 있는 활문자대궤안(活文字大机案)에 교정(矯正)받고 보양(補養)을 얻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통절히 느꼈습니다.
묵은 심신을 시원히 탈락하고, 자유로운 공기를 국토여래(國土如來)의 상적토(常寂土)에 호흡하리라 하는 열망은, 이리하여 시시각각으로 나의 가슴을 태웠습니다.
일개의 백운향도(白雲香徒)로 힘 자라는 대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국토예찬을 권수(勸修)하기는 나로서는 진실로 숭고한 종교적 충동에 끌린 자불반파(自不般巴), 또는 부득불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와 힘을 여기서 얻었고, 얻고 얻을 것이니, 생활의 긴장미로만 해도 나의 이 수행(修行)은 오래도록 계속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조선국토에 대한 나의 신앙은 일종의 애니미즘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보는 그것은 분명히 감정이 있으며, 웃음으로 나를 대합니다. 이르는 곳마다 꿀 같은 속삭임과 은근한 이야기와 느꺼운 하소연을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염통은 최고조의 출렁거림을 일으키고, 실신(失神)할 지경까지 들어가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때의 나는 분명한 일예지자(一叡智者)의 몸이요, 일대시인의 마음을 가졌지만, 입으로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운율있는 문자로 그대로 재현치 못할 때, 나는 의연한 일범부(一凡夫)며, 일박눌한(一樸訥漢)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섭섭히 생각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의 작은 재주는 저 큰 운의(韻意)를 두술러 놓기에는 너무도 현격스러운 것이니까, 원체 애닯고 서운해 할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은 유적(遺蹟), 혹은 전설에 내일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도 있고, 혹은 자연의 신광, 혹은 역사의 밀의(密意)에 나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어서 변변치 않은 대로, 혹시 문획해(文獲悔)의 일세류(一細流)가 되려고도 하고, 간 곳마다 견문고험(見聞考驗)의 일반(一班)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문장으로 보거나 논고로 볼 것도 아니요, 또 천년의 숨은 자취를 헤쳤거나 만인의 심금을 울릴 무엇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런 대로 조선국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넘쳐 나오는 것이니, 내게는 휴지로 버리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다만 한 가지 또 어슴푸레하게라도 조선정신의 숨겼던 일면이 나타난다면, 물론 분외의 다행입니다. 그렇지 못할지라도, 오랜 동안 물려 내려오는 우리 청전구물(靑氈舊物)에 대하여 나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정리를 담은 것이 혹시나 강호의 동정을 산다면, 이 또한 큰 소득입니다.
아무튼 조선국토의 큰 정신을 노래해 내는 이의 어릿광대로 작은 끼적거림을 차차 책으로 모아갈까 합니다.
이제 그 첫권으로 내는 이 {심춘순례(尋春巡禮)}는, 작년 三월 하순부터 수미(首尾) 50여 일 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순례기의 전반을 이루는 것이니, 마한(馬韓) 내지 백제인(百濟人)의 정신적 지주였던 수악(袖岳)의 여훈(餘薰)을 더듬은 것이요, 장차 해변을 끼고 내려가는 부분을 합하여 서한(西韓)의 기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진인(震人)의 고신앙(古信仰)은 천[天]의 표상(表象)이라 하여 산악으로써 그 대상을 삼았으며, 또 그들의 영량(靈場)은 뒤에 대개 불교에 전승되니, 이 글이 산악예찬(山岳禮讚), 불도량(佛道場) 역참(驛參)의 관(觀)을 주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적을 것도 많고 적을 방법도 있겠지만, 매일 적지 않은 산정(山程)을 발섭(跋涉)하고, 가쁜 몸이 침침한 촛불과 대하여 적는 데는 이것도 큰 노력이었습니다. 선재(選材)와 행문(行文)이 다 추소(序 )를 극함은 부재(不才) 이외에도 까닭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고치자니 새로 짓는 편이 도리어 손쉽고, 고쳐 짓자니 그만 여가가 없으므로, 숙소에서 주필(走筆)하여 날마다 신문사로 우송하였던 원고를 그대로 배열하게 되었습니다. 후안(厚顔)의 꾸지람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행중에 여러 가지 편의를 주신 연로(沿路)의 여러 대방가(大方家), 특히 각 산의 법승(法僧)들에게 이 기회에 심대한 사의를 드립니다. 또 이 남순소편(南巡小編)에 다소라도 적은 보람있는 귀절이 있다면, 이는 도무지 시종일관하게 구책유액(驅策誘掖)의 노(勞)를 취해 주신 노석전(老石顚) 선지식(善知識)의 현교와 암시에서 나온 것임을 아울러 표백(表白)해 둡니다.
―韓國隨筆文學大全集, 汎朝社 발행

 

* 註解

색독(色讀): 글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여, 그 글의 참뜻은 헤아리지 않고 있음(여기서는 문맥상 맞지 않는 잘못 쓰인 단어임)
진여(眞如): 진실함이 언제나 같다는 뜻으로 대승불교 이상개념의 한 가지
상적토(常寂土): 불교에서 항상 변하지 아니하는 광명세계라는 뜻으로 '부처의 처소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
국토여래(國土如來): '국토'를 석가여래에 빗대어 이르는 말
운의(韻意): 운치와 의의를 아울러 이르는 말
높고 아름다운 품격을 갖춘 뜻
문획해(文獲海)의 일세류(一細流): 바다와 같은 많은 사상이나 흐름에서 아주 작은 것. 千山一花와 같은 뜻
청전구물(靑氈舊物): 대대로 전하여 오는 오래된 물건
수미(首尾): 처음과 끝
진인(震人)의 고신앙(古信仰)은 천(天)의 표상(表傷)이라: 조선인의 옛날의 신앙은 하늘의 표상이라
역참(歷參): 하늘에 있는 별이름
발섭(跋涉):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님
추소( 疎): 비로 씀
구책유액(驅策誘掖): 사물이나 동물을 다루어 쓰거나 부리는 방법을 가르쳐 도와줌
노석전(老石顚): 연세 높은 석전 스님
선지식(善知識): 불법을 설하여 사람을 불도로 듣게 하는 덕이 높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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