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조연 이정림

 

 

극장 안은 온통 열기로 가득했다배우와 관객의 구분이 없이 모두는 하나로 어우러져 박수를 치고 장단을 맞추었다무대 위를 누비는 배우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관객은 환호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 흥겨운 뮤지컬 코미디 "넌센스 잼버리"를 보면서도 그들처럼 마음껏 박수를 칠 수 없는 나는 참 불행한 관객이다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표현을 자제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까아니면 오락에 빠지는 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보수적인 성향 때문일까.

그러나 어쨌든 밖으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속으로는 그네들과 함께 웃으며 노래하며 율동하며 무대 속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그러면서 직업 중에서 뮤지컬 배우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즐겁게 노래를 불러대는 배우들직업이 곧 그네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은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연극 배우이든 뮤지컬 배우이든 시장성이 약한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은 배고프게 마련이다그들에게도 생활의 어려움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고삶의 그늘이라는 것이 또한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우울한 마음을 지니고서는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그렇다면 그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짧은 생각이었다주인공을 맡은 중년의 여배우는 얼마 전에 어린 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무대에 서서 열연을 했다어느 어머니인들 자식을 앞세운 애통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으랴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물일랑 뒤로 감추고 관객을 위해 웃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그런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아니그저 아름다웠노라고만 말하는 것은 표현의 부족일 것이다.

자신의 슬픔은 속으로 감추고 누르면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그 열정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자식을 앞세운 참척의 아픔마저도 가슴 한편으로 밀어두고 자기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그런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프로라고 부른다.

프로는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먼저 철저한 사람들이다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 타산(打算)이 없다타산은 상대적이지만몰입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그 절대성이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면 프로는 더욱 빛이 나게 될 뿐이다.

뮤지컬 경력 13년 만에 주연을 따낸 어느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어요개성 있고 재미있는 역할내가 했을 때 가장 빛나는 역할이면 되는 거예요그러다 보면 이번처럼 주연 자리도 자연히 따내는 것 아니겠어요?"

가창력과 무대 위의 카리스마가 뛰어난 그가 언제나 '빛나는 조연'으로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그 긴 세월 동안그에게도 숱한 좌절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인간이기에 탐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자리인간이기에 버리기 힘들었던 자기 현시욕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정열로써 극복해 나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세계 3대 쇼라 일컬어지는 라스베이거스의 주빌리 쇼에서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주인공의 나이는 자그마치 쉰다섯 살이었다연봉 34천 달러를 받는 이 무희는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몸매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쉰다섯이라는 연령은 어쩔 수 없이 젊음도 가시고 몸의 유연성도 감소되는 나이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그런데도 그 적지 않은 나이에 변함없이 정상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은자신의 일에 대한 무서운 열정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서 프로는 내면으로는 한없이 고독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끊임없이 자신을 상승시키고 자신이 힘겹게 이룩해낸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싸움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싸움은 치열함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아니순수한 열정이 우선되어야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 되리라.

누구나 원한다고 주연이 될 수는 없다그러나 진정한 프로는 자신이 주연이냐 조연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빛나는 조연'이 곧 '빛나는 주연'임을 알기에.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