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과 벽 / 유영희

 

기둥은 한번 자리하면 웬만해선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그는 힘찬 근육과 굳센 의지와 튼실한 사명감으로 지붕을 받들면서 벽과 벽이 지탱할 수 있는 제 사명에 충실하려 한다. 굵거나 가는 체형에도 나름의 의무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은 확고하고 주변의 섣부른 권고에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다. 당당하고 회의를 품지 않은 소신 또한 거칠 것이 없다. 지붕을 떠받치는 의무감에서 그럴까. 그는 늘 굳건하고 믿음직하며 자랑스럽다.

 

옛집에서 서툰 도끼질로 껍질이 벗겨진 날 기둥은 그 모습대로 멋있고, 솜씨 좋은 대목의 날렵한 대패질로 다듬어진 모습은 또 그대로 멋짐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산, 울울한 숲에서 선택된 금강송으로 다듬어진 궁궐이나 대찰의 기둥은 말없이도 드높은 위엄과 기품을 보인다.

 

나름의 재목으로 선택되어 구조물의 한 일원이 되기까지, 나무로 자라 기둥으로 되기까지 지나온 과정은 인간이 다 알 수는 없다. 여린 새싹에서부터 묘목이 되고, 가느다란 줄기가 굵어지고, 뿌리를 뻗어 땅속 깊이 자리해서 태풍이나 비와 눈의 온갖 시련을 견디어 오다 적어도 곁의 나무보다는 나아 보여 간택된 터이다. 반듯한 자세가 기둥의 재목으로 쓰인 이유가 되리라. 휘어진 기둥은 보기 드물다. 어느 사찰에서 휜 나무로 기둥을 세운 요사채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드문 사례일 뿐, 기둥은 바르고 반듯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나무도 제 쓰임을 알고 있었을까. 다음에 대궐이나 큰 정자의 기둥으로 쓰이리라 하고 몸피를 불렸을까. 굵은 몸피만으로는 기둥이 되지 않는다. 모양새가 바르지 않으면 도끼날을 받는 봇단이 되기도 한다.

 

솜씨 좋은 대목수의 손길에 다듬어져 네모반듯한 기둥은 안정적이고 단련된 군인 같은 견고한 인상을 풍긴다. 그 기둥사이로 흙이든 나무이든 벽을 두른다. 벽이 있음으로 집은 비로소 아늑해진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집을 만드는 벽은, 기둥을 의지하고 기둥을 감싸 건축을 완성한다. 벽은 바깥과 안을 구분하여 바깥의 풍상으로부터 안의 안온함을 지켜준다. 저택이든 오막살이든 사람 사는 집은 기둥을 중심으로 벽이 정해지고 문이 달리고 창이 열린다. 문은 벽이 허용하는 바깥과의 소통이고 창은 바깥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안을 밖으로 유도한다.

 

벽이 없는 건축물은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기둥과 기둥사이를 환하게 열어 제 면을 둥글게 함으로 벽이 밀착될 여지를 없애 도도하고 근엄하다. 그런 기둥은 대개 큰 지붕을 기와로 얹고 있다. 거기서 둥긂은 원만함이 아니라 지배나 위압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정자는 기둥으로 날렵한 지붕을 받들고 풍경 좋은 곳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강 언덕이나 계곡의 한쪽에 바닷가나 동네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건물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 아늑함과는 거리가 있다.

 

현대의 건축물은 대체로 기둥을 숨긴다. 기둥이 보이지 않아야 실내가 더 넓어 보인다. 아파트의 기둥은 벽에 숨어있고 벽은 기둥의 도드라짐을 허용하지 않는다. 튀어나오는 기둥을 경계하여 벽과 기둥을 붙이거나 실내는 기둥을 생략하기도 한다. 기둥은 숨고 창은 커졌다. 권위는 옅어지고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기둥의 역할을 하는 이가 있고 벽이 되어주는 이도 있다. 기둥으로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답답함으로 창을 만들고 문을 열어 달아나려 했던 지난 시간들이 이제는 기둥의 마른 결을 보라고 한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기둥이니 벽이니 역할을 굳이 나눌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살이가 단순명료하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사람 사는 일이 그래서, 정답이 없다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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