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로 가는 길 / 이방주

 

 

월류봉 광장에 우리가 모였다. 여기서 반야로 가는 길을 찾는다. 월류봉은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초강천에 감겨있다. 달이 경관에 취해서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 다섯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 오봉에서 바위 한 덩어리가 미끄러져 내려와 강 가운데서 불끈 일어섰다. 그 바위 마루에 월류정이 있다. 제 그림자에 취한 달도 편히 머물 수 있겠다. 정자까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이다. 월류정을 품은 광장은 풍류 마당이다. 시가 있고 향기로운 술이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있고…. 달도 놀다 간다니 월류정은 놀이 마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색(色)의 공간이다. 반야사는 여기서 이십리 남짓, 우리는 투명한 참 지혜가 있는 반야(般若)의 세계로 찾아가야 한다.

 

초강천은 금강의 한 줄기이지만 성난 황소의 영각처럼 소리를 지르며 월류정 아래를 파고든다. 물안개가 자욱하다. 지름길은 보이지 않는다. 달이 머물던 오봉이 내려다본다. 오늘밤에는 달도 물에 잠겨 아름다운 제 그림자를 찾지 못할 것 같다. 이미 풍광에 취한 달도 우리도 반야로 가는 들머리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른쪽 강안으로 데크 길이 보였다. 그런데 ‘아니 그냥 큰 길로 가자’ 했다. 찻길로 들어섰다. 공사중인지 바리케이드를 쳤다. 갓길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시작점인 원촌교를 건너면서 쳐다보니 광장에서 돌아오는 데크 길이 보였다. 아까 그 길이다. 그 길로 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길을 안 것만으로 다행으로도 생각하자.

 

원촌교를 건너 반야사에서 내려오는 석천 강안을 따라 절벽에 붙인 잔도를 거슬러 오른다. 여울소리길이다. 물소리가 요란하다. 폭우가 아니었다면 맑은 여울에 햇빛이 곱게 부서지고, 여울의 울음소리가 하얗게 반짝였을 것이다. 여울소리길 오리 남짓은 순순하고 널찍하다. 바닥은 야자 매트를 깔아 부드럽고 편안하다. 반야사 쪽에서 넘어질 듯 튕겨지며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바라보면서 나의 나태를 다독인다.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나태해질 겨를이 없다. 앞을 가리는 안개도 마음을 가리는 나태도 걷어내야 한다.

 

원정교를 건너니 물을 왼쪽에 두고 걷는다. 산새소리길이다. 흙길을 잠시 걷다가 다시 데크 길을 걷는다.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울소리가 새소리를 삼켜버린 것인가. 물소리 속에서 돌 구르는 소리를 듣는다. 소망하던 새소리가 아니라 무섭다. 산이 내품는 기운이 바람이 된다. 시원하다. 나뭇가지가 머리 위를 가린다. 볕이 나면 그늘로 들어가고 빗방울이 떨어지면 우산을 편다. 풍광이 좋으니 사람들이 많다. 오른쪽으로 한 줄로 섰다. 수행의 대열이다. 조용히 말하고 조용히 웃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하루이틀인가. 그것을 깨달으며 걸으면 반야의 세계를 만난다고 믿는다. 그늘이 가린 볕을 그리워하며 여울에 묻힌 산새소리를 찾으며 산새소리길을 걸었다.

 

데크길에서 나와 반야사로 넘어가는 나무다리를 지나쳐 둑길을 걸었다. 오리 남짓만 걸으면 드디어 반야사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징검다리를 팔짝팔짝 건너 반야의 세계에 들어갈 꿈을 꾼다. 그때 구레나룻이 허연 노인장이 내려오다가 “더는 못 가유. 반야사 건너가는 길이 물에 잼겼슈. 내 말 들어유. 헛걸음 하지 말구.” 아, 그류? 그냥 가볼께유. 노인장 말씀을 어겼다. 아니 그럼 여성 회원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우리만 가보자. 조금 더 걷다가 못생긴 강아지를 데리고 내려오는 처녀 두 명을 만났다. 자매이건 말건 상관없다. 반야사로 건너갈 수 있죠? 그래 그렇다고 해라. “그럼요. 물웅덩이만 지나면 징검다리가 나와요” 그럼 그렇지. 처녀들은 우리가 원하는 말을 했다.

 

신발을 벗고 물웅덩이를 지나 맨발로 걸었다. 야자매트는 촉감이 좋다. 그러나 토사가 쓸어 덮은 곳은 발바닥을 찌를 것 같이 아프다. 괜찮다. 반야사 가는 수행의 길이니까. 반야의 세계로 물을 건너가는 제도의 길이니까. 그러나 없다. 길은 물에 잠기고 징검다리 위로 물이 넘친다. 노인장 걱정이 파라미타를 바로 일러준 말씀이었다. 노인장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괜한 소리를 한 처녀들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

 

되돌아와서 일행을 만났다. 맨발에 흙을 털고 양말을 신었다. 기다리던 이들과 함께 반야교를 건넜다. 하늘이 파랗게 벗어졌다. 우리는 다시 웃고 떠들며 걸었다. 일주문이다. ‘白華山般若寺’ 우리는 반야의 세계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마주치는 산기슭 너덜이 호랑이가 되어 포효로 우리를 맞는다. 산골물이 하얗게 쏟아져 내린다. 폭포수 아래 잔자갈들이 훤히 보인다. 여기가 반야이다. 참 지혜의 세계이다.

 

문득 월류나 반야는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일주문은 불이문(不二門)이잖아. 일주문 안이나 밖이나, 여울소리나 새소리나, 노인장이나 처녀애들이나, 중생이나 부처나 모두 하나이다. 성속(聖俗)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백년 배롱나무를 지나 대웅전에 삼배를 올리니 부처님은 삼촌이 되어 하얗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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