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화로 / 송보영

 

 

산촌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여름날의 반 자락 밖에 되지 않을 성 싶은 겨울해가 지고 나면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는 매운 바람소리가 문풍지를 울리는 밤은 길기만 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산골마을의 정지에서는 투두둑 투두둑 소나무 타는 소리가 정겨웠고 굴뚝을 타고 자우룩이 피어오르는 연기 속을 휘돌며 퍼져가는 솔 향으로 그윽했다. 군불 때기를 마친 집안의 안주인은 요염한 광채를 내며 이글거리는 숯불을 고무래로 긁어내어 화로에 옮겨 담곤 했다. 그 불빛은 꽃보다 고왔다. 가세가 넉넉한 가정에서는 담아내야 하는 화롯불도 서 너 개는 되었다. 바깥어른이 머무는 사랑채로, 안노인이 거주하는 안방으로, 큰방 작은방으로 담아내느라 손길은 늘 분주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단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밤이면 언 몸을 녹이기에 딱 좋을 만큼 따끈따끈한 아랫목에는 귀가가 늦은 대주의 밥사발이 묻혀 있기도 했고 화롯불 위에서는 뭉근하니 찌개가 끓곤 했다. 어린 아이들은 화롯불에 묻어둔 밤이 익기를 기다리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취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일반 가정에서는 대개 옹기화로나 질화로를 사용하곤 했는데 우리 집에는 보기 드문 놋화로가 있었다. 화로의 전더구니에 ‘ 몇 년 몇 월 며칠 육학년 졸업생 일동’이라 쓰여 진 화로였다. 이는 6학년 학생들이 졸업을 하면서 담임선생님이셨던 아버지에게 사은의 뜻을 담아드린 선물이었다. 어떤 해에는 놋그릇 두벌에 수저 두벌일 때도 있었고, 더러는 양복 한 벌일 때도 있었다. 이룰 두고 요즈음의 촌지나 뇌물에 비교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밤이 이슥하도록 호롱불이나 남포등을 밝혀놓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서 철필로 원지위에 글씨를 새기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철판위에 원지를 놓고 글씨를 쓰는 것을 두고 쓴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새기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검지와 중지손가락 사이에 백인 티눈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놋화로나 유기그릇들은 범접 할 수 없는 아버지의 권위의 상징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는 기꺼운 마음으로 이를 인정했다. 적어도 일 년에 몇 번쯤은 볏짚에 짚재를 묻혀가며 화로와 유기그릇을 윤이 나게 닦느라 심히 고단 했지만 불평 할 수는 없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손가락에 티눈이 박이도록 헌신하신 아버지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스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간직한 채 우리에게 와준 화로에 대한 예우였기에 그랬다.

놋화로는 또한 어머니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박봉으로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다는 것이 버거웠던 시절 부부가 함께 가정을 세워 나가야하고 자녀 양육도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을 통감하셨던 어머니에게 꼭 필요한 도구였다. 긴 겨울밤이면 어머니는 군불을 때고 담아다 놓은 화롯불이 잦아들려 하는 시간인데도 화롯가에 앉아 계실 때가 많았다. 그런 새벽녘쯤이면 초저녁에 마름질을 끝낸 비단 천은 끝동이 곱게 달린 저고리나 자식들의 혼사를 매듭짓기 위해 상견례를 하러 갈 때 입을 이웃 어른들의 윗옷으로 변해 있곤 했다. 바느질을 하기 위해서는 화롯불이 필요했다. 마름질을 하기위해 선을 긋는데 필요한 초크 같은 것이 없었던 그 때에는 알맞게 달구어진 인두가 그 역할을 대신했기에 인두를 달구어 줄 화롯불은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였다.

어머니가 만든 비단 옷들은 단아한 어머니의 모습만큼이나 고왔다. 목선을 타고 내려와 동그스름하게 그려진 깃의 모양이며,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부드럽게 그려진 앞섶의 모양이 그랬다. 반가의 규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침선을 잘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10살도 되기 전부터 바느질하는 법을 배웠다는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는 근동에서 손끝이 여물고 곱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살아생전 아버지께서는 옷장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빛바랜 양복저고리를 꺼내 당신의 함자 밑에 새겨진 <졸업생일동>이라 쓰여 진 글자들을 쓰다듬어 보시기도 했고 새로운 문물에 떠밀려 제 소임을 내려놓고 거실 구석 자리에 정물이 되어 놓여 있는 놋화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추억여행을 떠나시곤 하셨다. 아버지는 아마도 당신의 가슴 한 자락에 머물고 있는 그 때의 아이들의 모습을 에둘러 보며 젊은 한 시절 그들과 함께 했던 때가 당신의 일생 중에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고 생각 하셨으리라.

바람이 분다. 차고 매끄러운 겨울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어댄다. 저녁 어스름 낡은 겨울햇살이 산마루를 넘고 있다. 오늘 같은 밤엔 청솔가지가 타며 내 뿜는 솔 향에 취해보고 싶다. 가장의 어깨에 얹혀 있는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자 밤이 이슥하도록 화롯가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가 그립고, 남포등을 밝히고 책상 앞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부모로서의 본분을 다하느라 노심초사 하셨던 그 분들은 오래전 우리들 곁을 떠나셨다. 한 시대를 살아내면서 제 몫을 온전히 감당한 뒤 이는 자연의 순리라며 이글거리는 화롯불대신 지난 삶의 이야기들을 오롯이 간직한 놋화로만이 있을 뿐이다. 그를 바라보며 긴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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