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안녕할까 / 김덕기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는 계묘년 경칩이다. 예전 농촌에서는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면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나 도룡농 알을 건져 먹었다. 그런 일화가 아니더라도 경칩하면 떠오르는 게 개구리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부터 수난을 겪는다. 누구나 어려서 한번쯤은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며 유리병에 올챙이를 길렀던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시간에 동물 해부 대상이 되는 것도 개구리다. 통통하게 살찐 다 큰 녀석은 개구쟁이들의 군것질 거리가 되기도 했다. 어려서 개구리에 못된 짓을 많이 했던 나는 철이들고서는 개구리를 괴롭히지 않으려 애쓴다.

경칩이 지나 날이 따듯해지면 밭갈이가 시작된다. 규모가 큰 농사를 짓는 대농은 트랙터 등 농기계로 밭갈이를 하지만 손바닥만 한 작은 텃밭을 일구는 귀향 농부는 관리기로 밭을 간다. 관리기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삽으로 땅을 파는데 가끔 삽날에 동면하던 개구리가 찍혀 나오기도 한다. 조심하느라 하지만 억세게 재수 없는 녀석이 애꿎게 희생된다. 이럴 때면 봄기운 가득한 바깥세상을 구경도 못한 채 다시 땅속에 묻히는 개구리에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낙엽농업에 무농약 농사를 짓고 있는 나의 농장은 유난히 개구리가 많다. 풀이 많고 친환경이다 보니 개구리 먹이인 벌레가 지천이다. 한 여름에는 벌레를 먹고 살찐 개구리를 노리는 뱀도 심심치 않게 농장을 찾는다.

참개구리가 많은 우리 농장에서는 작은 청개구리도 자주 만난다. 청개구리는 녹색 잎에 붙어 있으면 잎인지 청개구리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이는 말썽꾸러기라는 우화 내용과 달리 아주 착해 보인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어쩌다 그런 대상이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농촌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꼽으라면 나는 개구리 합창 소리를 으뜸으로 꼽고 싶다. 어둑한 밤 개구리 합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한 마리의 개구리가 돼 이들 무리 속으로 빠져 든다.

모내기를 하는 5월초부터 논에 물이 차면 ‘개골 개골 개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건강하고 멋진 상대와 짝짓기를 하려는 수컷 개구리들이 한껏 목청을 드높여 내지르는 소리다. ‘나 이렇게 건강하고, 잘 생기고, 빼어난 유전자를 가졌으니 암컷들아 나를 배필로 삼으라’는 수놈 개구리들의 절규로 들린다. .

개구리도 매미처럼 암놈은 음치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수놈이 목 밑의 울음주머니를 부풀렸다 오그렸다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해질녘에 시작한 개구리 울음소리는 떼 지어 합창으로 이어져 새벽까지 잇는다. 한 놈이 ‘개골’하는 순간 넓은 무논의 온 개구리가 개굴거리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딱 그친다. 좀 쉬는가 싶다가 다시 고래고래 울어 댄다. 이렇게 모질게도 울다 그치다 하면서 한 밤을 지새우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온 사방에서 와글거려 개구리를 노리는 것들에 잡아먹을 놈을 정조준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참으로 영리한 녀석들이다.

경칩이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집 맞은편 세 배미가 이어진 논에 대형 트럭이 오가며 메우기 시작했다. 그 곳은 개구리 합창단의 주무대였던 논이다. 우리 마을 이장 말에 따르면 대형 창고 두 동과 섬유공장이 지어질 것이라고 했다. 길보다 훨씬 낮았던 논은 대형 덤프트럭 서너 대가 며칠을 오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축구장 크기의 공방부지가 만들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논이었던 그곳에는 개구리가 아직 동면하고 있을 터인데 몇 길이나 높아진 흙더미를 비집고 나올 수 있을까. 콘크리트 파쇄한 것을 꽤나 많이 부어 어림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건물이 완공되고 바닥을 포장까지 하면 탈출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아직은 영하의 날씨라 동면하고 있을 테지만 땅속의 개구리들은 안녕할까, 공장 부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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