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 지연희

 

 

 

옥상은 산의 정상을 오른 것처럼 상쾌함이 있다. 옥상에 올라가 서면 한 끝도 감추지 않은 나신처럼 몽땅 드러낸 하늘이 좋고, 눈앞에 시원하게 나타나는 비취의 색깔이 좋다. 늘 위로만 쳐다보아야 했던 어지러운 빌딩을 저만큼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으며, 그것은 마치 산을 정북한 쾌감과도 같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서좋다.

너무 부신 햇살을 전신으로 수용할 수 없는 부족함과, 머리카락을 하늘로 끌어올리는 매몰찬 바람이 몰아쳐 올 때의 불편함 이외에는 이렇다 할 아쉬움이 없다.

7월의 폭염은 집요하게 슬래브 지붕에 있는 한 방울 습기도 남기지 않고 버석버석 불을 붙인다.

해마다 여름철 태양열은 옥상의 공간을 이용하려는 시멘트 바닥에 강렬한 불기둥으로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다.

질식할 것같이 밀폐된 방 안의 뜨거운 공기를 창을 열어 갈아주어도 직성이 풀리지 않고, 작은 창틀에 매달린 햇살로는 도저히 시린 가슴을 데울 수 없을 때 홀연히 찾아가 마음을 푸는 곳, 그곳은 바로 옥상이다.

옥상의 끝에 서면 금시 내게로 손을 내어 품속에 끌어안을 것같이 콧잔등이 시큼한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반갑게 맞는다.

어둠침침한 방 귀퉁이에서 혼자 내면으로 쌓아 올리다가 헐어내곤 하던 형태가 없는 갈망 같은 것은 일순간 물거품처럼 으스러져 버리고, 알 수 없는 기쁨으로 내가 인식하지 못한 또 다른 상면할 수 없는 나의 영상을 열심히 그려 보곤 하는 곳이다.

온갖 물체들이 질서 없이 내다보이는 해바라진 낮보다는 어둠 속에서 영롱한 별빛을 담고 반짝이는 야경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밤바람이 간간이 살갗에 스며들 때는 가슴 사려지는 따뜻한 손길처럼 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정경과 심성적 질서로 하여 우리 집 옥상은 내 유일한 휴식처이며 삶을 닦는 사색의 밭이기도 한 것이다.

고향의 친정집에는 퍽 운치가 있는 옥상이 있었다. 두꺼운 통나무로 만들어 붙인 길고 높은 대형 화분에 용의 요동처럼 꿈틀거리는 등나무의 굵은 가지는 대나무 받침대를 돌돌 기어올라 옥상을 더욱 아담한 풍치로 이루어 주었다.

그 풍성한 잎 사이로 푸른 등을 밝히듯 등꽃이 수없이 매달려 있었으며 등밑에는 오색 비취 파라솔과 작은 원탁을 중심으로 우리 식구 수와 일치된 네 개의 의자가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어머니의 맞은편 쪽에 아버지, 그리고 양 옆으로 언니와 내가 앉았었다.

고향의 옥상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지금 내가 지닌 우리 집 옥상은 그 곳과 무척 닮았다고 행각한다.

아버지가 앉아 계셨을 자리엔 몇 년 전 고사(枯死)되어 해묵은 뿌리만 남아 있던 장미를 캐내어 손수 담배 파이프로 만들어 버릇처럼 물고 있는 나의 남편이 앉아 있고, 어머니의 자리엔 무수히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고운 자태가 아닌 늘 가슴 한쪽이 텅 비어 싸늘한 내 불안전한 형상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변성기에 들어선 우리의 두 아들이 언니와 내가 소유하던 자리에 의젓이 성장하고 있으니 대견한 일인 것이다.

골목 어귀에서 높이 올려다 보이는 옥상의 유리 온실이 약간은 허름한 지붕의 초라함을 여러 종류의 화초로 채색하고 있어서 고연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또한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 뒤의 겨울철 옥상은 한 폭의 설화를 보는 듯이 포근함까지 안겨 준다.

티끌만큼의 발자국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은 정결함이 있고, 갓 피어난 싱싱하게 물이 오른 꽃잎을 발길에 밟고 싶지 않듯이 미세한 눈꽃송이를 검게 멍들이고 싶지 않은 일념이 벅찬 기쁨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엔 상쾌한 밤바람이 실어다 준 향긋한 꽃향기에 정신없이 취하여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 나온 적이 있다. 때마침 밤하늘엔 불덩이 같은 보름달이 강렬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질주하며 밀려오는 이름 모를 향기가 장독대를 지나 옥상의 계단까지 오르게 했다.

보름달 곁으로 많은 별무리들이 짓궂은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반짝이고, 알 수 없는 꽃향기는 점점 더 진하게 코끝을 파고 들어와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밤의 옥상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마냥 태우게 했다.

향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옥상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갔다. 그것은 아까시의 하얀 꽃샘을 통하여 내 옥상의 등나무 아치를 맴돌며 황홀한 유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옥상의 어느 곳에도 아까시를 심은 적이 없었으므로 철이네 집 정원에도, 영희네 집 뒤뜰까지 코끝을 들이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을 감고 등나무의 굵은 기둥 한쪽에 몸을 기대어 나폴거리는 매혹적인 향기 속으로 살며시 눈을 떠 보았다. 순간 화사한 눈맞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서 성큼 몸을 높이 일으켜 주었다. 한눈에 내다 보이는 큰길 건너 한나네 집 뒷동산이 온통 하얗게 뒤집어 쓴 아까시의 꽃잎으로 출렁이는 물결처럼 어둠 속에서 일렁이지 않는가.

그렇다. 한나네 집 뒷동산에서 아까시의 꽃잎들이 한창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을 크게 열고 향그럽고 맑은 호흡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이토록 삶이 풍만한 옥상에 짙은 안개가 감싸는 새벽녘이면 구름 속에 두둥실 떠다니는 낙원처럼 옥상은 신비의 성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물리칠 수 없는 질투의 여신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와 뜨거운 여름으로 잎을 태우고, 그런가 하면 냉혹한 겨울로 연약한 생명들을 응고시키려 하지만 우리 집 옥상 위에서 벌어지는 계절의 무궁한 조화는 곧 내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확신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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