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나무 계단으로 시작된 산행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단 턱이 이마에 부딪힐 같았다.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서부능선 코스는 대청봉을 거쳐 봉정암까지 11km 되는 장거리이다. 처음 시간 반이 힘들고 다음부터는 능선을 반복해서 타는 것이므로 다른 코스에 비해 수월하다는 스님의 말씀에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호흡을 조절하였다.

 배낭에 , 미역, 오이, 과일, , 사탕, 여분의 , 우산에 샌들까지 매달았다. 남편이 염려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거뜬하다는 자신에 포즈를 취해 보였다. 봉정암까지의 산행이 아무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들어왔던 터여서 일찍부터 준비를 하느라고 했다. 전부터 매주 두세 정도 앞산에 오르고, 오후에는 수영을 했다. 산악 전문인이 신는다는 등산화도 컬레 마련하고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해마다 번씩 봉정암 참배를 한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깔딱고개를 발로 기어 올라간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온 터다. 칠순이 보살님을 업다시피 모시고 올라갔다는 무용담을 곁들일 때는 번이고 침을 삼키곤 했다. 부처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유달리 ‘부처님의 원력’에 힘을 주어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 보였다.

봉정암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누구든 그곳에서 기도하면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식이 남보다 많으니 기도할 일이 남보다 많고 소원도 남보다 많은 내가 아니던가.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고민스럽다. 소원이 어디 가지뿐이랴. 급한 마음에 소원을 낭비할지도 모르니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그래서 바꾸면 급한 것이 고개를 내민다. 예삿일이 아니다. 생각은 생각끼리 부딪히고 부딪힌 것들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결국, 올라가는 일곱 시간이나 걸린다니 그때 생각하기로 미루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간격이 점점 잦아졌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니 오직 지나온 시간만이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게 뿐이다. 시간 반이 지나면 힘들지 않으라던 스님의 말씀도 이제 믿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등성이를 올라가면 나아지려나 했지만 힘겹게 넘어보면 앞을 가로막는 우뚝 솟은 . 산다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높은 고개를 넘는 것이리라. 대청봉은 1,700m 고지다. 내리막을 만나면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숨을 고를 있는 내리막길이 이어지기를 고대하며 나는 말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입은 옷은 완전히 젖었고, 걸어가는 중에도 이마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졌다. 산의 어름다움을 마음껏 담아 가리라던 생각도 이미 사치이고, 올라가면서 결정하리라던 소원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다섯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어깨가 결리고 무릎에 통증이 오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옮길 때마다 신음 소리가 저절로 배어 나왔다. 그제야 배낭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부처님 전에 올렸다가 공양간에 내어놓을 오이를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누가 먹어도 먹을 음식이다. 누구보다 부처님이 사정을 이해해 주실 것이다. 과일을 비우고 물을 비워나갔다. 줄일 있는 것은 줄여야 한다. 우산과 샌들은 남편의 배낭으로 옮겼다. 그쪽 형편도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염치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봉정암에 오를 눈썹도 떼어 맡겨두고 가라던 말이 바로 법문임을 이제야 같았다.

당장 아픔도 힘들었거니와 앞으로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골절상을 당한 할머니 분이 반을 절에서 머물렀다는 얘기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남편의 어깨를 건너다보니 자신의 짐을 견디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자장율사는 이다지 높고 험한 산꼭대기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서 나약한 중생을 시험하시나 하는 원망의 마음도 들었다.

산행이 예상보다 늦어져 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예불이 끝나가고 있었다. 정성이 하늘에 닿아야 기도가 이루어진다는데, 힘에 버거운 욕심을 지고 와서 무슨 염치로 소원을 빌까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이었다. 부처님께 삼배하고 뒷자리에 앉아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내일 내려갈 걱정으로 법문이 자락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불이 끝나 방으로 건너왔으나 이미 다리는 펴기도 굽히기도 자유롭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신음이 나오고 두통까지 겹쳐 온몸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철야기도를 것이라고 방에 짐만 풀고 다시 법당으로 가벼렸다. 나는 새벽에 예불 하고 불뇌보탑(佛腦寶塔) 참배하려면 쉬어야 같아서 몸을 뉘었다.

도량석 치는 소리가 새벽의 설악을 깨웠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처님 전에 백여덟 절을 하고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보탑으로 올라갔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바위에서 솟아오른 듯한 오층 보탑을 돌고 돌았다. 보탑 뒤편 너럭바위에 앉아 스님에게서 봉정암의 내력을 듣는데 맞은편 용아름 능선에 자리한 우뚝 바위들. 기상 늠름한 새벽의 설악이 신령스럽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환희심이 일어 가슴이 터질 같았다. 지금이다. 소원을 빌어야 한다. 가지 소원을.

간절하게 합장하고 나는 머리를 숙였다.
“자비하신 부처님! 제가 오늘 무사하게 설악산을 내려갈 있도록 가피(加被) 내리소서!
천천히 무릎을 쓸어보았다. 건너편 부처님 모습을 웅장한 바위가 솟아오른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