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빨래를 널지 말라 / 신복희

 

 

 

예전 할머니들은, 빨래가 이슬에 젖으면 옷 임자의 앞날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여 해가 지면 일찍 빨래를 걷으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모두 바쁜 사람들이라 낮이나 밤이나 시간이 날 때 세탁기를 돌리고 탈수까지 된 옷들이라 빨래에 밴 물이 아래로 떨어질 염려가 없기 때문에 어디든 널어 놓는다. 하지만 한번쯤 그 말을 믿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작은 아들이 군 복무 중에 있었던 일이다. 나의 아들은 운전병으로 있었는데 운전뿐만 아니라 자동차 정비까지 했다. 정비할 때 입는 작업복은 위아래가 붙은 옷이다. 어느 날 신참병이 그 옷을 빨아서 정비소 창안에 널어 두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그 앞을 지나던 장교가 창문에 비친 빨래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자고 있던 운전병들을 모두 깨웠다. 흐릿한 불빛에 비친 빨래의 모습은 마치 목매달아 죽은 사람의 모습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을 아들은, 밤이 되어서도 줄에 널린 빨래만 보면 걷어치운다.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다면서 조심을 하는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은, 빨래줄에 빨래가 있는 밤에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내려서다가 그것을 보면 예의 그 장교처럼 가슴이 쿵하고 놀란다. 옷 색깔이 하필 흰색일 때는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또는 밤에 빨래가 널려 있으면, 그곳에 사람이 서 있는 줄 착각하고 놀랄 수도 있고 전등도 없이 깜깜한 밤에 빨래가 널린 줄 모르고 지나가다가 머리에 감겨 더욱 놀랄 수 있다. 그리고 낮에 다 말린 빨래가 밤에 다시 이슬을 맞으면 오히려 젖어 버리는데 밤에 빨래줄에 빨래가 그대로 널려 있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밤에 빨래를 널면 옷 임자의 앞날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말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미리 조심을 시킨 것이다.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담긴 가르침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신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고 편히 지키겠다는 배려로 그 미신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다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다니면 애먼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있다. 빨래가 다 마르지 않은데도 성급하게 입고 다니면 애먼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젖은 옷을 입고 다니면 남몰래 나쁜 짓을 하다가 물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은밀한 장소에 누구랑 함께 있다가 옷의 한 부분이 젖어 있더라도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밤에 빨래를 널지 말라는 말은 타인을 놀라게 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젖은 옷을 입고 다니지 말라는 가르침은 자기 관리를 잘하라는 교훈이다. 인류의 역사는 금기를 지키면서 시작되었다. 금지 구역과 금기 사항을 지키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금기를 어기면 가책이 생기고 가책을 가져야 후회와 반성이 일어난다. 반성은 사색하게 만들고 사색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가 미신이라며 쉽게 생활 속에서 밀어낸 밀들은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게 하고 사색을 통하여 성숙할 기회를 준 가르침이다. 사라져 가는 말들 속에 선명하게 비치는 생활 지침들을, 이제는 남은 자취마저 밟아 버리며 사는 우리가 조금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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