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설 / 윤오영

 

 

C은 가끔 글을 써 가지고 와서 보이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만나면 글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깍두기를 좋아한다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더 달래서 먹는다. 그래서 오늘저녁에는 깍두기를 화제로 이야기를 했다.

 

깍두기는 이조 정종(正宗) 때 영명위(永明慰)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창안해 낸 음식이라고 한다. 궁중에 경사가 있어서 종친(宗親)의 회식이 있었는데, 각궁(各宮)에서 솜씨를 다투어 一品料理를 한 그릇씩 만들어 올리기로 했다. 이 때 영명위 부인이 만들어 올린 것이 누구도 처음 구경하는 이 소박한 음식이다. 먹어 보니 얼근하고 싱싱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위에서 '그 희한한 음식, 이름이 무엇이냐' 고 하문하시자 '이름이 없습니다. 평소에 우연히 무를 깍둑깍둑 썰어서 버무려 봤더니, 맛이 그럴듯하기에 이번에 정성껏 만들어 맛보시도록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깍둑이구나' 하고 크게 찬양을 받고, 그 후 오첩반상의 한 자리를 차지해서 상에 오르게 된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그 부인이야말로 아마 다른 부인들은 산진해미 희귀하고 값진 재료를 구하기에 애쓰고 주방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무··마늘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갖은 양념 갖은 고명을 쓰기에 애쓰고, 소금·고추가루는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료는 가까운 데 있고 허름한데 있었다.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이나 왜관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으나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官中에 울릴 음식을 그런 막되기 썰은 규범에 없는 음식을 만들려 들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무를 썰면 곱게 채를 치거나 나박김치본으로 납작 납작 예쁘게 썰거나 장아찌본으로 걀쭉걀쭉하게 썰지, 그렇게 꺽둑꺽둑 썰 수는 없다. 기름·깨소금·후추가루식으로 고추 가루도 적당히 치는 것이지 그렇게 시뻘겋게 막 버무리는 것을 보면 질색을 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깍두기는 무법이요 창의적인 대담한 파격이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익숙한 솜씨가 아니면 이 대담한 새 음식은 탄생될 수 없다. 실상은 모든 솜씨가 융합돼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법중의 유법이다. 무를 꺽둑꺽둑 막 써는 것은 곰국 건지 썰던 솜씨요, 발효시켜서 익혀 먹도록 한 것은 김치 담그던 솜씨가 아니겠는가, 다 재래에 있어 온 요법이다.

 

요는 이것이 따로 따로 나지 않고 완전동화 되어 충분히 익어야 하고 싱싱하고 얼근한 맛이 구미를 돋우도록 염담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음식의 염담이란 맛의 생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의 구미에 상하 귀천 없이 기호에 맞은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격식이 문제 아니요 유래가 문제 아니다.

 

이름이야 무엇이라 해도 좋다. 신선로(神仙爐)니 탕평채(蕩平菜)니 두견화다(杜鵑花茶)니 가증스럽게 귀한 이름이 필요 없다. 깍두기면 그만이다. 깍두기가 반상(정식) 오첩에 올라 ·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오히려 中央에 놓이게 된 것이요, 위로는 官中士大未家로부터 일반 빈사(貧士)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C은 영리한 사람이다.

 

先生, 지금 깍두기를 빌어 隨筆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지요. 수필의 소재는 우리 생활 주변에 있고 다시 평범한 데 있는 것이요, 신기하고 어려운 데 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무가 싱싱하고 단 무라야 깍두기 맛이 나지 썩은 무나 시든 무야 되겠나.”

 

그것은 글의 품위에 관계되겠지요, 청신하고 진실한 것으로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야 되겠지요.”

 

이름이야, 小品이라고 하든 에세이라고 하든 잡문이라고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요, 나는 내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어느 이름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요. 어느 형식이나 유파에 따를 필요도 없지요. 오직 파격이 필요하지요. 램의 수필이 어디까지나 환상적이요, 정서적인가 하면 노신(魯迅)의 수필은 정열적이지요. 혁명적이었고, 주자청(朱自淸)의 수필이 서정적이요 미문적이었다 하면 프루스트의 수필은 사색적이요 내심적이었거니와 그들의 수필을 기준으로 할 아무 필요도 없으니까요. 서구적인 저널리즘이 칼럼니스트들을 수필 문학가라 하고 한편에서는 서투른 작문을 수필 명작이라고 떠드는 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남들이 내 글도 수필이라고 불러 준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여 족하고요. 다만 읽어서 싱싱하고 얼근한 깍두기 맛만 낸다면 소설·시와 같은 문학들과 함께 오첩반상에, 오히려 중앙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던 중 무를 숭덩 숭덩 썬 것이 무법인 듯 하되 곰국 건지 썰던 법이요 云云하시던 말씀인데 수필에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가 내 말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니까 좀 무서우이마는 수필에 정서가 흐르는 것은 서정시에서 빌어온 법이요 수필에서 서술이 긴박하고 빈틈없이 나가는 것은 단편 소설에서 빌어온 법일세. 설리는 평론의 수법에서, 묘사는 배경 소설의 수법에서, 문장의 탁의는 시의 메타포에서 확충된 것이요, 문맥의 정연함은 논설문의 수법에서, 독자에게 친절감을 잃지 않는 것은 서명한 서간문의 수법에서, 사색적이요 반성적인 것은 저명한 일기문의 수법에서, 문장의 활기있는 긴장(緊張)은 희곡(戱曲)의 수법에서, 문단과 문단이 갈릴 때마다 청신(淸新)한 전환(轉換)은 시나리오의 씬(Scean)을 바꾸는 솜씨에서 자유자재로 섭취 활용해 가며 자기의 독특한 문체와 참신한 문태(文態)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거나 의식적인 기교에 지나치거나 익지 아니한 날내가 나면 그 글은 원숙한 글이 아닐 것일세.”

 

음식의 맛의 생명은 염담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이 없으면 정물화(靜物畵)에 음영(陰影)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함축도 있고 여운도 있고 기환(奇幻)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없는 문장을 가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 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

 

일후(日後)의 참고삼아 이 날의 문답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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