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 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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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였다. 금방이라도 펄떡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데, 내 종아리보다도 길고 튼실해 보이는 몸을 다 펴지도 못하고 작은 아이스박스 속에 J자로 누워 있다. 항복의 몸짓으로 은색의 배를 내보이고 있지만, 투지로 퍼렇게 굳은 등허리에선 언제라도 구부려진 꼬리로 바닥을 탁~ 치고 튀어오를 것 같은 저항이 느껴진다.

평소 난 아주 작은 것들의 숨결에서 종종 감명을 받곤 했다. 산 속을 거닐다 풀숲의 작은 꽃을 보거나, 포르릉 날아가는 작은 새의 날갯짓 등을 보면, 보일 듯 말 듯한 생명들로 이 세상이 경이로움에 가득 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큰 숨결로 살아가는 것들이 주는 생명의 기운은 작은 숨결에서 받는 경이로움과는 다르게 나를 압도한다.

어림잡아도 60센티는 월~씬 넘을 듯했다. 이미 숨결은 멎었지만, 누워서도 녀석은 그 큰 몸짓으로 항의를 한다. 드넓은 바다를 누비던 몸이라고, 구부러진 꼬리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먹이사슬의 제물이 되지 않고 완전한 성어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의 행운에 감격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하필이면 모천회귀(母川回歸)를 코앞에 두고 강어귀에서 잡혀버린담! 그의 최대 불운을 애도해야 하는지, 즐거워해야 하는지, 잠시 복잡했다. 바다에서의 긴 여행을 끝내고, 산란을 위해 모천을 거슬러 오르기 전, 그러니까 남대천어귀에서 잡힌 연어가 최상의 맛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다.

즐겨 찾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가장 먼저 접시에 담아오는 것이 훈제연어였다. 비린내도 별로 없고, 향긋함마저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붉은 속살을 보면 언제나 식욕이 당기곤 했다. 한 번의 식사분량만큼씩 포장 판매하는 것을 종종 사다 먹긴 했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온전한 모습을 대하긴 처음이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나가는 인천의 수필 반 회원 한 사람이 속초로 주말여행을 떠나는 중에 연어 알 잘 가져와서 맛나게 익으면 나눠 드릴게요. 저희 가족들이 겨울 내내 행복해하면서 먹어요.”라고 문자를 보내오더니, 알은 나중이고 우선 구해온 연어 몇 마리 중 하나를 나에게 전해 준 것이다. 알맞은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구하려고 시장을 몇 바퀴 돌다가 수업에도 늦었단다. 제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구하려면 연안부두까지 가야 한다기에 할 수 없이 버섯 박스를 얻어 담았노라고, 옹색하게 누워있는 연어의 사연을 설명했다. 가을 날, 물고기 한 마리가 내 가슴을 얼마나 뛰게 하던지 집으로 향하는 차 차 속에서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연어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고 안도현은 말했지만, 눈앞에 누워있는 연어에게서 나는 시간의 냄새를 맡는다. 우리의 3~4년은 잠깐이지만, 지금 이 녀석에게선 우주를 다 헤매다가 온 세월의 냄새가 났다. 오늘 같은 가을 날, 물살마저 졸고 있는 남대천 어느 여울에서 알이 되어 태어났을 그 생명의 시작부터, 한 겨울을 지나 봄에 부화하여 남대천 물살을 타고 바다로 향했을 수천수만 치어들의 빛나는 행렬, 그리고 그들이 헤엄쳐 다녔을 알래스카의 차고 푸른 바다까지.

그들은 왜 태어난 강을 버리고 바다로 갈까. 그리고 망망한 바다를 헤매 돌다가 어떻게 길을 찾아 모천으로 돌아오는 걸까. 모천에 대한 기억들은 어디에 숨어 있으며, 알래스카, 그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도 어김없이 돌아올 수 있는 절대적인 방향 감지능력은 어떻게 지니고 있는 것일까. ‘연어라는 말 속에는 너무나 신비한 의문부호가 숨어 있다.

연어의 몸속에 숨어 있는 의문부호를 알게 되면, 내 삶의 의문부호도 좀 풀게 되려나?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또 그렇게 가야 하는지, 이 나이가 되도록 참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왔다. 문득 그런 물음들 앞에 서게 되면 언제나 풀어야 할 잡다한 것들로 항상 골치가 아프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다급한 일이 발생했다.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믿어버렸던(지금도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다) 아주 먼 훗날에야 올 줄 알았던 회항의 신호가 느닷없이 내게 떨어진 것이다. 모든 시간에 비상이 내려졌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사이도 없이, 키를 돌려 모천을 향해 가야 하는데 난, 내가 헤엄치고 있는 바다가 어디쯤인지, 또 모천이 어느 방향인지도 가늠하기를 못하겠다.

깜빡깜빡 생명 센서에 비상등이 켜지고, 칠흑 같은 어둠뿐인 바다에서 나아가지도 주저앉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하늘에선 몇 번씩 뇌성벽력이 지나갔다. 무서움이 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내가 무서움을 처음 알았던 것은 첫아기를 출산했을 때였다. 어떤 순간에도 지켜줘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 그런데 지금은 내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 버거워서 떨고 있다. 모천을 알지 못하는 무지함 때문에 그 떨림은 몇 배나 힘들다.

물고기 한 마리도 자기가 들어가야 할 곳을 알아 수만 리 떠나왔다가도 그 길을 정확히 찾아가는데, 천억 개의 뇌세포를 가지고 있는 인간, 내가 생명의 모천을 인지하지 못하다니되돌아 올 수 있을 만큼 헤엄쳤어야 하건만, 욕심으로 너무 멀리 나왔나보다. 기억장치엔 오류가 걸려 있고, 갈 길은 바쁜데 지느러미는 지친 상태다.

더 이상 의문부호들을 미룰 수가 없어서 끌어안고 지낸다. 연어에게 주신 모천회귀의 생명력과 그 초유의 감각기능, 틀림없이 내게도 입력되어 어딘가 저장시켜 놓으셨을 것이다. 무사 회귀하기엔 너무 무거워진 나를 하나하나 덜어내다 보면, 생명의 파장을 따라 모천으로 가고 있는 나와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에 힘차게 물살을 거스르며.


                                                                                           <김화진 회장 추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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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시와 시론'에 수필로 등단했다. 1994년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제7차 개정판 국정교과서 '중학국어 1-1'에 수필 '어린 날의 초상'을 게재했다. 인천 중앙도서관 수필반 강사, 수필문우회 동인, 에세이문학 이사, 에세이스트 편집위원, 국제 펜클럽 회원이다. 수필집으로 '언덕위에 바람이',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고통을 알리', '바닥의 시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