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자, 큰 상자 / 염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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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으로 길을 달리다 보면 길가에 열을 지어 서있는 높은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작은 창을 허물고 큰 창으로 만들어서 예쁜 커튼들을 걸어 놓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강변 풍경을 즐기려고 창을 넓힌 모양이다. 아마 까마득한 옛날에 우리의 조상들은 이 강변에 움집들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나무로 불을 피우고 흙으로 그릇을 구우며 평화롭게 살았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이 강변에 자동차들이 다니고, 높은 아파트들이 서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파트들은 마치 시멘트 상자를 차곡차곡 포갠 것 같아 보인다. 이 허공에 떠 있는 상자가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흙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화분에 꽃을 심어 가꾼다. 어떤 집은 조그만 분수를 만들어 놓고 돌도 주어다 놓아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꾸며 놓기도 한다. 우리들은 그 속에서 꿈을 꾸고 아이들을 기르고 늙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상자로 옮겨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애를 쓰고 몇 년에 한번씩 이사하기를 마다 않는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상자에서 상자로 옮겨가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는 병원 영안실의 조그만 상자 속에 누워 있고, 혹시 너무 성급하게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인큐베이터 상자 속에서 자란다. 자라서는 바퀴 달린 상자를 타고 등교를 해서 지붕이 있는 큰 상자 안에서 공부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작은 알루미늄 상자에 든 밥을 먹고, 간식으로는 조그만 종이 상자에든 과자를 먹는다. 집에 오는 길에는 거리에 서 있는 상자 속에 들어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시 독서실이라는 칸막이 상자에 들어가서 공부하기도 한다. 문명이 점 점 발달 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상자를 만들어내고, 우리들은 상자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간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에 있는 차가운 네모상자에서 작은 종이상자에 든 우유를 꺼내어, 전자레인지 상자에 넣어 데워 마신다. 식탁 위의 작은 상자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에 맞추어서 현관문을 나서서, 수직으로 이동하는 긴 상자를 타고 내려간다. 땅 밑을 달리는 긴 네모상자를 타고 도심에 내려서 빌딩이라는 높다란 돌상자에 들어가, 다시 올라가는 네모상자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선다. 일을 하다가 휴식시간이 되면 복도에 서있는 네모상자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신다. 퇴근길에는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김이 나오는 큰 나무상자 속에 들어 앉았다가 나온다.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 1층에 있는 네모상자를 열고 편지들을 챙겨 들고 온다.

 

옛날 사람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나가서 달을 구경하며 놀았다. 둥근 달 속에서 계수나무와 토끼를 찾으며 상상도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만들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우리들은 저녁이면 네모난 바보상자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그 현란한 영상과 자극적인 대사에 마음을 빼앗기고, 복제품 같은 이야기에도 울고 웃는다. 식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각 사람들은 방에다 또 TV처럼 생긴 컴퓨터라는 상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가족들과 서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상자를 들여다보며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한다. 컴퓨터를 들여놓은 후부터 우리 집에는 바벨탑을 쌓은 후처럼 언어에 혼란이 생기고 있다. "아빠, 한글 도깨비 가지고 계셔요?""화면이 왜 뜨지 않지?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렸나봐…….""터보 파스칼 버전5.5가 나왔대요……."내가 알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도깨비 같은 대화들이 오고 간다. 나는 완전히 문맹자가 되어 소외감을 맛보아야 한다.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이기심으로 사람들은 상자 속에 들어앉은 듯 주위와 담을 쌓고 산다. 부자들은 집안에 불에도 타지 않는 상자를 가지고 있고, 그 속에 또 작은 상자들을 넣고 산다. 도둑들은 그 상자 속의 작은 상자들을 훔치려다 붙잡혀서 철창이 달린 큰 상자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상자를 좋아 하다 보니, 명절이면 선물상자를, 결혼 할 때에는 예물상자를 주고받는데 이것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하기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불행이 상자 때문이라는 신화도 있다. 판도라가 하늘에서 가져온 상자의 뚜껑을 열지만 않았다면……. 사람들의 마음도 사는 모습도 점점 모난 상자처럼 되어가는 것만 같다. 각자의 삶은 개성을 잃어가고 틀에 박힌 듯이 규격화 되어 다른 사람의 사는 방식을 모방해간다.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삶에다 가치를 둔다. 우리는 누구나 조그만 보석 상자를 원하고, 커다란 시멘트 상자를 바라면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최후로 몸을 눕힐 곳은 어딘가, 결국은 기다란 나무상자가 아닌가.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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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6년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 1987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월간 '에세이' 주관 에세이스트상(1988), 현대수필문학상(1993), 펜문학상(2009) 수상. 저서: 수필집 '미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다'(1992), '유년의 마을'(1999), 수필선집 '회전문'(2002), '작은 상자, 큰 상자'(2008)가 있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기획위원, 수필문우회, 에세이문학작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정책개발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와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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