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에서 무늬를 읽다 / 고경숙

 

 

 

대청호 앞에 서 있다. 두서없이 끌고 온 길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지도에서 영원히 삭제된 옛 문의 마을을 휩쓸고 가는 바람살이 맵다. 넓디넓은 호수를 돌려가면서 본다. 파리한 하늘을 담아낸 호수가 청동거울이다. 빛을 잃어 녹슬어가는 나를 희미하게 비춰낸다.

 

삭풍이 물 위를 흩뜨리자 호수 가장자리로부터 뻗어나간 잔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호면湖面에 반사된 햇빛은 다시 미세한 각도로 박히고, 튕겨져 나간 틈으로 산산조각 나 반짝인다. 베어지고 할퀸 상처들이 눈부시다. 희뜩희뜩 잠겼다 떠오르는 은빛 물결들, 빛과 그림자로 연신 파닥거린다. 물살의 행간마다 중첩된 빛살문양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윤슬은 수몰 마을이 존재감을 알리는 몸짓일까. 어둔 물속에서 밀어올린 파문들이 몽환적이다가 돌연 쓸쓸함으로 다가선다. 물비늘이 빚는 사방연속무늬가 난해한 시詩로 읽혀진다.

 

시 한 수에 이끌려 먼 곳으로 떠나오기는 처음이다. 시에서처럼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하필이면 가장 바람 부는 날을 골라 일상에서의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시인이 '먼 산이 너무 가깝다'고 노래한 산은 흰 눈으로 덧칠한 색을 지우고, 현란한 수식을 걷어낸 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고 있다.

 

계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절제된 무게감으로 담박하게 보여주는데 낯선 장소를 은신처로 삼은 내 안의 풍경들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이러한 친숙하면서도 생경한 감정 기복이 시적 화자話者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감을 좁히면서 여백을 만들어간다. 하나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무채색의 겨울을 읊고 또 읊는다. 시에서 음미한 아릿한 여운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K

 

시인이 동료 시인의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창작한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다.
이 시의 배경인 문의 마을은 예전엔 존재했지만 지금은 부재하는 공간이다. 아마도 샛강이 에둘러 흐르는 아늑한 분지였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수몰당하는 비운을 겪었을까. 빛다발에 오래된 집 한 채 어른거린다.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들이 한사코 기어오르는 토담 너머로 무명이불 한 채 마당에 펼쳐놓고 터진 세월을 시침질하는 아낙의 거친 손등이 만져진다. 막다른 고샅길을 버선발로 달려오던 그날의 적막한 눈바람소리가 미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에게로 풍덩, 뛰어든다. 눌러앉은 세월도 허리를 펴고, 닳아 뻑뻑해진 세상도 관절을 풀어 유순해진다. 눈을 떴다 감는다.

 

처음 이 시를 읽고 막막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이미지로 시상이 전개되는 전문을 연달아 낭송하다 보면 명치끝이 쓰리고, 목울대가 울컥 막혔다. 행과 연, 문장이 긴밀하게 호응하면서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죽음이 괴기스러운 형상을 띠고 전신을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속 깊숙이 묻어둔 한 죽음이 세상 밖으로 떠올려졌다.

 

그해 겨울, 눈이 없는 고장에서 폭설이 내렸다. 운명의 신은 가혹했다. 그가 함부로 던진 돌팔매질에 동생이 맞고 쓰러진 것이다. 인근 병원에서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대도시의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숨졌다는 비보는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학교에 등교하듯 씩씩하게 걸어 나간 몇 시간 후였다. 낯선 곳에서 장례를 치르고, 폭풍오열로 돌아오신 부모님은 대명천지에 자식을 잃은 자는 당신들뿐이라며 회한과 자책으로 한동안 유폐된 생활을 하셨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재밌는 영화를 봐도 감흥이 없던, 지독한 슬픔만 강물처럼 흐르던 이십 대의 일이었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이 시구에 이르면 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죽음의 행태에 진저리쳐졌다. 삽시간에 생명을 박탈해간 죽음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생로병사의 통과의례라고는 하나 어찌 이다지도 순서 없이 빠른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공空의 세계라 일축하다가도 실존에 대한 부정과 회의로 혼란스러웠다. 언제라도 삶과 죽음이 한 패가 되어 남은 자들의 뒤통수마저 일격하리라는 두려움으로 섬뜩했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삶이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라 죽음이 삶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내쫓으려 해도 피할 수 없다는 시인의 진술에 동조한 나는 시 속의 우울한 화자였다. 인간의 운명을 송두리째 뺴앗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신에게 따져 묻다가도 이도저도 신의 소관이라는 체념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쏟아낸 눈물이 호수를 만들었던가. 미처 발설하지 못한 말들은 차가운 물속에 죄다 웅크리고 있었다.

 

호수의 물빛이 검푸르다. 꺾이고 휘어지는 생의 격랑을 건너온 내 안의 강물들. 민낯을 제대로 보인 적 없었던 나는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캄캄한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기억들이 내 삶의 무늬다. 고향을 등진 채 뿔뿔이 흩어진 실향민들의 애환이나 동생의 기막힌 죽음이 궁금해 길을 나서면 자연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언어로 질문을 던진다. 나를 따라온 과거가 물살을 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무늬는 상처와 결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몸 안에 켜켜이 쌓아두고 빠져 나오지 못한 뜨거운 울음이 윤슬처럼 무늬를 복제해낸다. 그것은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인간과 자연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리라. 그 무늬들은 나와 호수와 시와 바람이 공유하고 있다. 기억의 그림자들이 꿈틀대는 한 문의 마을도 동생도 죽지 않는다.

 

무거운 침묵을 끌어안고, 석양이 손님처럼 들어선다. 시인이 죽음의 이미지로 묘사한 질감과 색채, 냄새가 배어난다. 어디서 성냥불 긋는 소리 들리고, 유황 냄새가 와락 풍겨져 온다. 내 안의 뜨거운 울음인가. 슬픔으로 뭉쳐 있던 아픈 기억들이 잠시 형상을 드러내고는 사라진다. 인생이 몇 개의 무늬로 압축된 시적 은유라면 죽음은 미완으로 끝난 단 한 줄의 시詩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떠넘기고 간 책갈피 속에 호수가 흔들리는 나를 그려넣는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어느 죽음만큼/ 세상의 길이 아득하기를 바란다.

*인용한 시는 1994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시집을 텍스트로 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