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원짜리 헌 우산 손광성

  

세상 아내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남편들이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늘 불평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건성으로 들어 넘기는 것 같아도 출근할 때 던진 아내의 한 마디는 종일 남편의 뇌리에 박혀 있게 마련이다. 반짝이는 동전처럼.

여기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깨 한 섬 값이 5만 원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깨장수 허씨는 대문을 열고 나오다 말로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아무래도 한 줄금 할 것 같은 하늘이다. 안에 대고 소리를 친다.

"여보, 우산."

잠시 뒤 아내가 검정 박쥐 우산을 들고 나왔다.

"우산 잊지 마세요."

아내가 당부했다. 금년 들어 벌써 두 번이나 우산을 잃어 버렸으니 아내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허씨는 듣는 둥 마는 둥 행하니 골목을 나섰다. 마석 장까지 제 시간에 대어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버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서두른 덕에 그가 장에 닿았을 때는 예상보다 이른 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해가 떴을 터인데도 하늘은 여전히 캄캄하게 흐려 있었다.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골 아낙네들이 이고 온 참깨를 사 모았다.

여나믄 가마가 되었다.

세를 낸 트럭에 모두 실었다.

너무 서둔 탓인지 일을 끝내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서울로 오는 도중에 몇 번인가 꾸벅꾸벅 졸았다.

"우산 잊지 마세요"

환히 웃는 아내의 얼굴이 말했다.

허씨는 우산 끈을 자기 손목에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가 신당동 중앙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다행히 비는 그 때까지 오지 않았다. 그는 참깨 열 가마를 모두 팔아넘겼다.

10만 원짜리 돈 뭉치가 다섯 다발이었다. 신문지에 아무렇게나 쌌다. 일부러 허술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택시를 잡았다. 매사가 안전한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왔는지 다시 졸음이 엄습해 왔다. 흐린 날은 유달리 졸린다고 생각하면서 시트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스르르 눈이 감기려는 순간이었다.

"우산 잊지 마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눈을 감은 채 허씨는 우산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본다. 무사히 있다.

그는 다시 수면의 늪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저녁이었다.

대문을 두드렸다.

아내가 나와서 빗장을 풀었다.

그는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내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여보, 우산."

아내는 웃으며 우산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다.

가슴 한 귀퉁이에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돈 보따리를 두고 내린 것이다.

요새 금새로 치자면 참깨 한 가마 값이 40만 원 가까이 한다. 아침에 던진 아내의 말 한 마디에 참깨 같은 돈 400만 원을 주고 몇천 원도 안 되는 낡은 우산을 산 셈이 되고 말았다.

세상의 아내들이여. 출근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마시라. 행여 400만 원짜리 헌 우산을 사는 불상사가 생길까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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