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며 / 정복언

 

 

 

 

밤새 바람이 난장을 일으킨 모양이다. 현관 앞은 물론 주택의 벽체 옆으로 자리한 분재 사이사이에 낙엽들을 비질해 모아 놓았다. 아직도 여흥이 끝나지 않았는지 바람은 방향을 틀며 낙엽을 굴리고 있다.

기다란 나일론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 커다란 쓰레받기에 담는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다. 크고 작고 구겨지고 찢긴 잎사귀들. 알록달록하게 화장한 얼굴도 있고 앙상한 뼈마디에 누런 색깔이 달라붙어 있기도 하다.

푸른 세상을 떠나는 마음은 살아온 삶의 문양같이 가지가지일 테다. 혼자 당당히 이별을 고하기도 하지만 무더기 무더기로 뭉치는 걸 보면 처음 가는 세상은 두려움의 길인가 보다. 오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광합성작용, 증산작용, 호흡작용의 소임을 한순간도 게을리 하지 않은 생이었지 않은가. 그런 삶에 무슨 죄목이 있을 수 있으랴. 무슨 여한이 있으랴.

나는 낙엽을 보며 유한의 미를 생각해보곤 한다. 짧디짧은 생애인 줄 알면서도 허투루 보낸 날들이 어디 하루 이틀일까. 인간에게 영생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지구가 만원이라는 문제를 떠나 삶 자체의 질이 퇴보할 것만 같다. 흥청망청 아수라장을 만들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체에 존재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의 존엄성을 높이는 일이다. 많은 사람의 노고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면 주어진 생이 길다고 불평하지는 않을 듯하다. 문제는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무늬가 달라지듯이 인생도 길이가 아니라 질일 테다. 짧아도 길게 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워지지 않는 족적, 그게 떠나는 이가 가슴에 품을 선물이리.

바람이 분다. 건들바람이 정신 차리라고 몸을 스치며 지나간다. 바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바람은 촉수 하나로 사는 외로운 존재인가 보다. 만물을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무서운 것, 더러운 것을 가리지 않는다.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양지와 음지를 차별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때론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요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슬기를 깨우치려는 술책인지도 모른다.

낙엽을 구덩이 안으로 살며시 내려놓는다. 흙의 품속으로 영면을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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