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꿈 /  강중구

 

   한 해가 덧없이 흘러가고 또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어릴 때에는 세월이 한 해 두 해 흘러가면서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해가는 것이 그렇게도 좋더니 이순이 지나고 고희마저 넘어서고 나니 이제는 새해를 맞이하는 게 두렵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소년은 미래를 꿈꾸며 살고 노인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산다고 하지만 이제는 내 인생이 석양으로 접어들고 보니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고 새해에는 무슨 일을 해야 좋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새해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 없으니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욕심을 내겠는가만 그래도 가는 세월이 아쉬워서 새해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해보고 싶다. 우리 가족은 나에게 가장 가깝고 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할 사람들이고 앞으로 나를 보호해줄 사람들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로 온 가족이 한집에 서로 의지하며 살아서 가족 간의 유대가 돈독했다. 할아버지는 가정의 방향을 잡으면서 손자들을 돌보고, 아버지는 일을 하여 가정의 생계를 꾸려 나갔으며 손자들은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떨면서 가정의 잔일을 도왔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과 더불어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식들이 직장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핵가족 열풍이 불어왔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년이 된 자식들이 직장을 따라 부산과 서울과 일본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하지만 핵가족생활은 가족 간의 유대와 역할 분담을 단절시키고 가족 간의 정마저 소원해지게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된 나도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가정교육을 하기는커녕 가끔 전화로 “아빠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라!”는 당부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일본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고 있으니 의사소통마저 어려운 실정이니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겠지만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하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가족 간의 유대도 강화해야겠다. 그래야 아이들도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고 조손 간의 정과 형제자매 간의 우애도 돈독해질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소원해진 친구들과 옛 직장동료들을 찾아서 점심이라도 함께하면서 환담을 나누고 싶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 지 10년 만에 중등학교 교원 자격고시 검정시험을 거쳐서 중등학교로 옮긴 후 평생 동안 고등학교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퇴직을 한 지도 벌써 12년이나 지났다. 그러고 보니 정답게 지내던 친구들도 직장동료들도 모두 소원해져버리고 연락마저 끊긴 지 오래이며 어떤 사람은 생사마저 알 길이 없다.
   그들 중에는 허물없이 지내던 다정한 친구도 있고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도 많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나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금년에는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와 직장동료들을 찾아서 점심 식사라도 함께하면서 그들의 근황과 인생살이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감사의 말이라도 전해야 하겠다.
   또 어느 가난한 나라 어린이랑 결연을 맺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일제 때 태어난 우리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가난했다. 2차 대전 말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짚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고 해방 후에는 교과서도 없이 공부를 했으며 6·25한국전쟁 때에는 미국 등 유엔 여러 나라가 보내준 원조 물자인 분유와 빵을 먹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경제 개발과 새마을운동으로 웬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2010년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전환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되었으니, 이제는 보은의 차원에서라도 가난한 나라 불쌍한 어린이를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어린이면 좋겠다.
   탄자니아는 사바나초원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야생동물의 낙원이다. 그러나 독립 운동가이자 국부로 추앙되던 초대 대통령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의 잘못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여 집단 농장제를 실시하다가 경제가 파탄이 나버린 가난한 나라이다.
   몇 년 전 탄자니아로 사파리를 갔던 길에 마사이족 마을을 찾아가 보았더니 가장 한 명이 10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32명의 아들딸을 낳아 흙집에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뿐만 아니라 길에서 손을 내미는 아이에게 빵 하나를 주었더니 어른들까지 모여드는 것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새해에는 나의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중구  -------------------------------------------------

   강중구 수필가.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가을에 그린 초상화》, 《그 찬란했던 배낭여행기 인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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