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박 타는 여인/ 김규련                                                                                                      

 

 

 늦가을 엷은 햇볕이 툇마루에 깔리고 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여인이 등에 햇볕을 받으며 조롱박을 타고 있다. 두 발로 조롱박을 고정시켜 놓고 실톱으로 박을 타는 솜씨가 꽤 익숙해 보인다. 그 연인의 옆켠에는 싱싱하고 탐스러운 조롱박이며 금시 두 쪽으로 타놓은 것들로 작은 추수가 뒹굴고 있다. 그녀는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아들 딸들이며 친구들이 표주박을 받아들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연신 톱질을 하고 있다.

 

 조롱박을 다 타고 나면 씨앗이 들어있는 하얀 속을 드러내고 솥에 넣어 조롱박을 찔 모양이다. 쪄낸 조롱박은 잘 손질해서 햇볕에 말려야 한다. 뜨락 둘레의 돌담이며 닭장 지붕 위에는 아직도 풋풋한 조롱박이 달려 있다. 무서리가 두어 번 더 내린 뒤에 따들일 모양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빼어나게 잘생긴 놈 한두 개는 그냥 뒀다가 첫눈이 내릴 무렵 조심스레 따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년 봄 씨받이를 위해서 표주박을 만들지 않고 껍질을 잘 벗겨서 씨앗이 박혀 있는 둥그런 속을 그냥 그대로 처마 밑에 달아 두리라.

 

 옛부터 큰 과실은 먹지 않고 새 생명의 씨앗으로 남겨두는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거룩한 슬기가 여기서도 엿보인다고 할까. 밤이 이슥하도록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여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솥에서 쪄낸 표주박에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봄에 씨앗을 심고 가꾸어서 가을에 따들여 타고 찌고 손질해서 만들어 낸 표주박은 드디어 정성의 결실이리라. 아내의 손질을 곁에서 조용히 돕고 있던 남편이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임자,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구료.”

 

 “당신 먼저 주무세요. 아이들이 표주박을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몇 마디 대화가 오가다가 남편의 시선이 아내의 손에 와 멎었다. 거칠고 굵은 손마디, 찌들고 저승꽃이 핀 손들, 그 흔한 보석 하나 달지 못한 손, 그러나 저 손이 오랜 병고와 절망과 가난 속에서 이 가정을 지켜온 구원의 언덕이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남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아내의 바쁜 일손을 괜히 꽈악 쥐어본다. 그리고 말이 없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이내 훤히 읽어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살며시 손을 빼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뇌리에 광망光芒처럼 스치는 지난날의 발자취.

 

 젊은 날 암담했던 삶의 광야, 험준했던 고난의 산맥, 서러웠던 눈물의 강기슭, 상처를 입으며 흙탕물을 덮어쓰며 그래도 넘고 건너온 지천명知天命의 고갯마루, 때로는 분에 넘치는 축복 같은 것이 전혀 없지도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의 흔적만이 왜 이 밤 따라 주옥처럼 빛나는 것일까.

 

 산은 높아 귀한 것이 아니고 수목이 무성해서 귀하고, 들은 넓어 소중한 것이 아니고 곡식이 자라 소중하듯, 인간의 삶도 생명이 있어 빛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자국이 있어 빛나는 것일까. 두 사람은 서로가 미덥고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괜히 무엇인가에 감사라도 드리고 싶었는지 뜨락에 나와 서성거려 본다.

 

 늦가을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 마음의 뜨락에도 별빛이 쏟아진다. 상념의 의상을 훨훨 벗어 던지고 금시 지구의 맨 끝에 표표로이 서 있는 착각을 느껴본다. 시방 두 사람은 별을 우러러보며 말이 없다. 지복至福의 이 일순이 깨뜨려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두메산골 허물어져가는 지붕 밑에서 부엉이 우는 깊은 밤에 이들이 표주박을 손질하다 말고 고요한 기쁨 같은 것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안주安住의 성城을 얻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안빈낙도 安貧樂道의 어떤 깨달음 때문일까.

 

 찬바람이 몸에 스며온다. 두 사람의 발길은 정성의 결심이 뒹굴고 있는 불빛을 찾아 서서히 옮겨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 사이에는 무한한 사랑의 대화가 오가고 있다.

 

 평생을 인고와 순종과 헌신으로 일관해 오면서 괴이고 괴인 아내의 그 흥건한 눈물을 씻어주는 남편의 깊은 정.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집념과 성실과 노력으로 일어서면서 고달프게 흘려온 남편의 그 더운 땀을 식혀주는 아내의 마음의 손길. 어쩌면 이것이 애환을 같이해 온 부부의 참된 대화가 아닐까. 여기에 부질없이 언어가 있어 무엇하랴!

 

 조롱박 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마무리 손질을 계속해 본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가슴속에는 끝내 가시지 않고 향불처럼 타오르는 한 가닥 상념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것은 거룩한 비원悲願일지도 모른다. 비록 하찮은 잡초같이 살아갈지라도 기약없는 이승의 남은 여로旅路에 욕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

 

 쌀그락쌀그락, 조롱박 속을 긁어내는 소리가 깊은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울고 웃으며 가야 할 삶의 길목을 짚어보고 더듬으며 연신 조롱박 손질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묘하게도 닮아 보인다.

 

 남녀가 부부의 인연으로 서로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닮아가는 것일까. 식성과 취미가 가까워지고 생각이며 성격이 비슷해지다가 드디어는 모습도 닮아가는 것이리라. 같은 모습의 반려자. 이것이 초로初老의 부부상일지도 모른다.

 

 늦가을 밤은 이미 깊었다. 먼 데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은 잠을 잊은 채 서로의 깊은 애정을 담아둘 사랑의 표주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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