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달 / 최장순 

 

"잰 며느리가 초생달을 본단다."
서쪽 하늘이 익숙한 말을 건넨다. 대숲을 건너가는 바람은 그때와 다름이 없는데 이미 이 숲을 지나 먼 곳으로 돌린 발걸음.
어머니는 왜 그토록 달에 정을 주셨을까. 그것도 초저녁 막 돋아난 저 별에게.

몇 해 전, 형제들이 유품을 나누던 자리에서 나는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필사본을 골랐다. <초생달>이라는 제목이 가슴 깊이 박혔다. 수많은 지문이 쌓인 표지를 어루만졌다. 낡아서 몇 번씩 덧붙이기를 했고 실로 꿰맨 자국이 선명한 그것, 표지의 신미辛未년은 1931년, 어머니는 열여덟 처녀였다.

책이 귀했던 때, 풋풋한 처녀의 감성은 소설에 빠져들고, 어머니는 그것을 틈틈이 붓으로 베껴 썼을 것이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세로로 써 내려간 구문은 가로쓰기에 익숙한 내게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머나먼 기별이 궁금한 듯 어느 날 나는 그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기로 했다. 작심한 듯 읽어도 더러 낯선 글자에 막혔다. ​ 그러나 앞뒤 문맥을 따라가며 읽다 보니 어머니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벅찬 가슴에 싸한 기운이 돌았다.

'백설은 북악에 싸이고 싸여서 옥으로 깎아 세운 듯하였고'로 시작되는 소설은, 열네 살 나이에 고아가 된, 옥순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눈보라치던 날, 오갈 데 없어 방황하던 그녀를 어느 여염집 여인이 데려다 돌본다. 절색인지라 해가 지날수록 동네의 뭇 남정네들이 탐하기로, 몇 해를 키운 후 돈을 받고 기생으로 팔아넘긴다. 본격 기생 수업을 받은 그녀는 계월이라는 명기가 되고, 여러 남자를 만나는 우여곡절 끝에 지아비를 사랑하게 되어 잘 살았다는 신파풍의 스토리였다.

1920년대, 어머니가 4년제 간이학교를 다닌 것은 당신의 말대로 일생에 큰 복이었다. 읽고 쓰고 산술을 익힌 것이 당시 시골에서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큰댁의 할머니에게 언문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은 늘 어머니 몫이었다. 내 기억으로 어머니가 가까이 둔 책은 반야심경이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나 성경이었다. 틈만 나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여름철이면 처녀들도 소 먹이러 다녀야 할 만큼 일손이 귀하던 때. 염전을 일구던 외할아버지의 일을 거들다 보면 밤이 이슥해서야 겨우 벼루에 먹을 갈았을 것이다. 한 달에서 몇 달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과중한 일복이어도 틈을 빌어 한지에 옮겨 쓴 <초생달>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에 홍치마와 노랑 저고리로 단장한 어머니. 흐릿한 등잔불 아래서 한 자 한 자 꼼꼼히 써 내려간 붓놀림 속엔 아직 반달이나 만월이 되지 못한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헤진 홑바지에 치마를 겹쳐 입고 눈보라에 떨고 있는 옥순이가 되었다가, 또 어떤 날은 난봉꾼들의 틈에서 술을 따르는 기생 계월이가 되어 북받치는 감정을 눌렀을 것이다. 행간이나 글자의 크기가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것은 정갈하고자 했던 몸가짐, 조금은 흐릿하게 번진 먹은 꼭꼭 눌러 담아도 새어 나온 슬픔이었을 것이다. 늦은 밤 고단함에 빼먹은 글자는 뒤늦게 채워놓은 듯,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때론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은 듯 줄을 내리긋고 다시 쓴 흔적도 있었다. 기생이 되라는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는 옥순이. 뺨을 후려치는 사내들의 거친 손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부르르 주먹을 움켜쥐었을 것이다. 군데군데의 얼룩은 옥순이의 서러움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가물에 콩 나듯 옥순이의 설렘은 새가 날아가듯 경쾌한 문장으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흥얼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어머니는 영월 신辛씨이다. 열아홉 나이에 두 살 아래 강릉 최가 아버지와 결혼한 것이 1932년이었다. "자그마한 키는 바지런해 보였고 서글서글한 눈은 총명함을 가득 담고 있었지. 작은 얼굴에 오뚝하게 중심을 잡은 코는 복스러웠어. 도톰한 입술은 허튼 말을 절대 뱉을 것 같지 않더구나. 티 없는 얼굴엔 생기가 돌았지. 네 아버지가 어찌나 부럽던지."

당숙은 혼례 때의 어머니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도 매운 시집살이는 피해 가지 못했으니, 시집오기 전 해에 필사한 '초생달'은 한가한 곳에 마음을 준다는 핀잔의 구실이 되었다. 시집살이는 물론 육 남매를 키워야 하는 고단함에도 남몰래 꺼내 읽으며 당신을 위로하였을 필사본. 부지런한 어머니는 초저녁 일찌감치 흰 고무신을 끌고 나온 초승달을 곁눈으로 훑으며 소원을 빌었을까. 늘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는 법'이라고 굳게 믿은 어머니는 소설 속 옥순이처럼 '좋은 끝'을 기대하며 힘든 고비를 버텨냈을 것이다.

외갓집은 개명한 집안이었다. 어머니의 4촌들 중에는 진명여학교를 거쳐 경성사범이나 대구사범을 거쳐 일본 중앙대학을 나온 분들도 있었다. 그런 집안 사정으로 볼 때, 막내딸인 어머니가 동네 간이학교만 다닌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못 한 학업에 대해 불평하지 않으셨다. 출가한 자식들에게도 수시로 편지를 써 소식을 전했다. 또박또박 연필을 눌러쓴 글에는 당신의 생각을 질서정연하게 표현하셨다. '한시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훈계의 말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때가 있었다. 파산은 마흔여덟 살인 할아버지를 화병으로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삼촌들은 '기회의 땅'이라며 만주 용정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금융조합에 다니거나 운송부를 맡아 일하셨다. 어머니는 살림 뒷바라지를 하는 틈틈이 강릉에 계시는 할머니께 자식들의 소식을 소상하게 전하셨다. 꼬박 100년의 장수를 누린 비결도 늘 글을 가까이한 까닭이었을지도 모른다.

반세기도 훌쩍 지난 지금,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은 외갓집은 대숲만 낯익을 뿐 돌기와집은 사라지고 없다. 마당에서 내다보던 바닷가, 백사장과 기암괴석은 발전소에 가로막혀 있다. 형들이 태워준 소의 등에서 두려움에 울었던 산자락엔 전원주택들만 즐비하다. 나는 지금 '초생달'을 베껴 쓰던 열여덟 처녀의 연둣빛 꿈속을 헤맨다. 초승달이 상현달로 부풀고, 다시 보름달로 환해질 때쯤 어머니의 봄날도 그리 환했을까. 어머니의 봄날은 과연 있기나 했던 걸까.

저 풋풋한 달처럼 꿈을 키우다가 결국엔 그믐으로 이운 어머니. 순결한 손끝으로 전해주는 어머니의 파릇한​ 영혼, 초생달은 나만이 간직한 비밀스런 샘이다. 서녘 하늘에 잠시 머물다 잠드는 것이 저 달이라 해도 겹겹이 묻어있는 어머니의 지문과 따뜻한 체온은 영원히 잠들지 않을 것이다. 그믐 끝에 다시 뜨는 초생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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