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행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자세 / 이미영 

 

3D 안경을 쓴 두 남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나비는 손끝에 내려앉을 듯 팔랑거리고 새들은 코앞까지 다가와 날갯짓한다. 여기는 판도라 행성, 하늘까지 뻗은 나무 넝쿨을 미끄럼 삼아 타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천국의 음악처럼 퍼진다.

곧이어 금속성의 굉음이 숲의 평화를 집어삼킨다. 판도라에 착륙하려는 우주선은 시뻘건 화염을 내뿜어 원시림을 단숨에 거꾸러뜨린다. 춤추던 생명이 잿더미로 쓰러지자 우주선의 문이 열린다. 전투용 로봇과 장갑차가 쏟아져 나와 밀림을 갈아엎고 사나운 길을 낸다.

내 발에 불이 붙는 것 같아 다리를 웅크려 바닥을 내려다본다. 속이 울렁거린다. 옆자리의 남편과 아들을 번갈아 살핀다. 현실 같은 영상을 만들어 낸 기술력에 감탄사를 터트린다. 온몸은 스크린에 꽁꽁 묶여있다.

  두 남자는 석유자본의 중동 국가들이 화석연료 이후의 세계를 내다보아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라는 소식에 손뼉을 쳤다. 지구가 환경오염과 이상기후를 더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화성을 제2의 지구로 골랐다고 한다. 화성으로 이주하여 인간의 문명을 이어나가고 다행성 종족으로 진화한다는 계획이다.

  두 부자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아바타〉를 네 번이나 보았다. 모래사장에 새겨진 발자국이 파도에 쓸려 조금씩 지워지던 장면을 두고두고 언급했다.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물의 세계에 감탄하며 기술이 만든 상상의 세계가 어서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다행성 종족의 계획은 꿈이 아니라고 기대에 부푼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은 제2의 지구이다. 그리스 신화를 염두에 둔 이름일까. 판도라는 제우스신이 상자를 열지 말라고 했던 경고를 무시하고 만다. 호기심에 그 뚜껑을 여는 순간 갇혔던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로 인간은 갖가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살던 아파트 뒤편으로 금호강이 흘렀다. 제방길을 따라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자전거 길도 여유로웠다. 서울에 사는 어린 조카들은 할아버지 집에 올 때면 강을 따라 이어지는 정원에서 오리와 하얀 새들을 만났다. 강 건너편에 작은 습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귀엽다고 쳐다보던 새들이 습지에 사는 원앙이나 황조롱이 같은 희귀한 야생동물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꼬맹이들과 아버지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귀여운 오리와 다리가 긴 새를 바라보는 추억을 쌓았다.

금호강 제방길로 산책을 나선다. 강 건너에서 일렁이는 유채꽃밭이 노란 손을 흔든다. 새들을 구경하던 잔디정원과 유채꽃밭을 잇는 다리가 새로 놓였다. 강을 건너 노란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유유자적하는 하얀 새와 강물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찾는 동그란 몸통이 등장한다. 예전에 우리가 귀엽게 여기던 새들의 후손인가. 아이들은 자라고 아버지도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하얀 새는 여전히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거닐고 있으니 뭉클한 것이 올라온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길을 걷는다. 얕은 물 속에서 철퍼덕 하능 소리가 들린다. 산란철을 맞은 잉어가 구애하는 소리란다. 물속에서 세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는 중이라니 보이지도 않는 물고기의 퍼덕임이 기특하고 어여쁘다. 다시 오솔길을 걸어간다. 수풀 사이로 노란색, 빨간색 깃발이 군데군데 꽂혔다. 공사 전에 꽂아두는 깃발인데….

야생동물들의 거처 위로 교량형 산책로를 만들 계획이란다. 판도라 행성에 인간들이 침입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수달과 황조롱이가 생각나 가슴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전부터 강가는 그들이 살던 곳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힘없는 것들의 세상을 쉽게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이 작은 습지를 거닐어 보았을까. 이름 모를 하얀 새가 긴 다리로 거닐고 귀여운 오리가 수면에서 장난치는 모습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지켜본 적이 있을까.

금호강 제방 뒤편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은 널찍하고 자전거는 거침없이 달려간다. 발길이 드문 강가에는 몇몇 사람들이 낸 오솔길이 한적하다. 작고 여린 것들이 사는 조그만 습지는 처음부터 그들의 땅이다. 새가 날고 수달이 헤엄치고 잉어가 유영하는 강은 그들의 영토이다.

판도라는 열었던 상자를 얼른 닫았다고 한다. 온갖 불행은 빠져나왔지만 웅크리고 숨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갖가지 재앙에 시달리지만, 희망만은 깊이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영화〈아바타〉는 제2의 지구를 판도라 행성으로 이름 짓고 상처투성이 지구에게 조그마한 빛을 비추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아무것도 모르는 원앙과 황조롱이의 터전을 뭉개려는 계획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집 두 남자는 아이맥스와 돌비 시스템을 갖춘 영화관에서〈아바타〉의 물질세계를 본다. 환경 훼손이 부르는 기후 위기는 과학에 맡긴다. 나는 판도라가 간직한 희망에 소망을 둔다. 〈아바타〉는 영화의 기술을 한껏 뽐내며 관객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인간의 무자비한 욕망을 생각해 보라고.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이 간직한 희망에 대한 신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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