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 정임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수다를 떤다. 흔히들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데 남성들이 여성들 보다 더 많은 수다를 떤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도 화제가 신변의 잡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다가 아니라고 여기뿐이다.

수다쟁이들이 모여 기분 좋은 수다를 떨 수만 있다면 수다는 카타르시스다.

그러나 잘못된 수다를 실컷 떨고 나면 마음이 더 꼬여 버린다. 남들이 끼어들면 기분도 나쁘고, 여기저기 옮기면 속도 상한다. 공연한 말을 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말 좀 아끼라’는 충고라도 받는 날이면 견디기 어렵다. 남자들은 수다로 인한 허물을 술에다 뒤집어씌울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참 괴로울 것이다.

  수다를 유머와 해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려 말할 줄 아는 친구는 마음이 트인 사람이다. 말도 없이 와서 저 혼자 놀다가 아무 말 없이 가버리는 친구는 위대한 수다쟁이다. 수다를 떨고 싶어도 말실수가 두려워 침묵하는 경우가 더 많다. 수다를 참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화병이 생긴다. 수다를 실컷 떨고 나면 생각의 찌꺼기가 정제되고 맑은 정(精)을 얻을 수 있다. 실수를 두려워 말고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다를 떨어야 한다. 수다에 너그러운 사회, 타인의 실수를  포용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수다를 듣다 보면 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이제 그만해라’고 핀잔을 주지 않고, 슬쩍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릴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수다의 맛 상대다. 수다를 떨다 보면 혼돈했던 생각에 길이 보이고, 아 그게 이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우침도 얻게 된다.

 수필을 쓰다 보니 문득 ‘수필은 자기와의 수다’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수필을 읽게 되면 좋은 친구를 만난 듯 둘이서만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나의 수다를 잘 들어주는 친구, 나의 허물을 덮어주는 친구, 그래서 수필은 좋은 친구다.

생각이 진리에 이르르려면 자신과 수 없는 밤을 새우며 수다를 떨어야 한다. 영혼이 잠들지 못하게 하고, 묻고 답하고, 답하고 묻기를 쉼 없이 해야 한다. 단순한 수다에서 벗어나 자기고백, 자기정화, 자기참회, 자기성찰, 그리고 깊은 사유의 경지에 이르르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혼자만의 수다를 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다에 말실수가 없을 수 없듯이 글에도 글실수가 없을 수 없다. 내 마음이 새벽부터 수다를 떨어 이렇게 한자 적어보는데 또 괜한 수다를 떤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위대한 수다쟁이들을 불러 모아 남들이 듣고 읽어서 기분 좋은 수다를 밤늦도록 떨어보고 싶다. 노천명이 그랬듯이 놋 양푼의 수수엿이나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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