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단상(결벽증) / 안병태

 

 

별로 자랑할 만한 감투는 아니지만 이 병실에 오래 머물다보니 환자들이 나를 ‘실장님’이라고 부른다.

오늘 우리 병실에 새 환자가 들어왔다. 그동안 환자가 수없이 갈마들었지만 저런 별종은 처음이다.

입실하자마자 간호사를 호출해 소독솜을 청구하더니 자신의 병상을 닦기 시작한다. 별의별 환자가 다 거쳐 갔을 터이니 별의별 병균이 다 묻어있을 거란다. 나 역시 병실의 청결상태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은 건 아니나 저렇게 구체적으로 의심해보진 않았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내 병상에서도 각종 병균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지네처럼 옷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몸이 근질거린다.

병상을 구석구석 닦은 신참이 TV 리모컨, 출입문 손잡이, 링거 거치대, 화장실 손잡이, 특히 변기의 하수용 밸브와 엉덩이 접촉 부분은 오래 오래 닦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어차피 저렇게 닦아봐야 완벽하게 소독하지도 못할 것, 차라리 분해하여 끓는 물에 푹 삶아 다시 조립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저 신참 퇴원할 때까지 좀 피곤하겠구나’ 생각했다.

‘소독솜’이라고 해도 알아들으련만 굳이 혀를 돌돌 말아서 ‘클린알코르스왑’이라고 발음해 아니꼽게 군다거나, 이 병원의 ‘클린알코르스왑’을 혼자서 거덜내려든다거나, 신참 간호사가 혈관을 못 찾아 땀을 뻘뻘 흘리면 눈을 가늘게 뜨고 쯧쯧 혀를 찬 다음 사정없이 인터폰으로 수간호사를 호출한다거나…… 사사건건 시건방을 떠는 것으로 보아 미구에 우리 병실이 간호사실로부터 미운털이 박힐 것 같다.

그나마 그 정도로 그치면 좋으련만 그것도 부족하여 선배 환자 5명을 상대로 병균오염예방에 관한 강의까지 시작하는 것이었다. 열변을 토하여 가라사대,

“음식점에 가시거든 메뉴파일을 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병균이 득시글득시글한답니다. 메뉴파일 세탁하는 식당 본적 있으세요? 화장실 손잡이는 더더구나 건드리지 마세요. 그걸 만진 손으로 음식 못 자시지요. 1회용 타월 믿지 말고 손을 씻으세요.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도 만지지 마세요. 끈적끈적한 그것을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모두 병균 덩어립니다. 뿐입니까. 지난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았듯이 병원이 오히려 병균 오염원인즉슨 병원도 믿지 마세요. 복도, 화장실, 환자복, 침구류 모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 구석구석 병균이 잠복해 도사리고 있다가 접촉 즉시 전염됩니다. 또 공기를 타고 날아다니다가 코나 입으로…….” 6번의 ‘공기를 타고 날아다니다가……’ 대목에 이르러 피식 웃고 말았다. 독감이 전국을 휩쓸던 작년 겨울, 기침이 심하고 가래가 끓는 노인과 1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간 적이 있었다. 가능하면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참다가 13층에서 그만 숨을 쉬고 말았던 것이다.

6번의 말을 경청하다 보니 구구절절 지당한 말 같기는 하나, 실천하기가 극히 어려운 주문인데다, ‘엘리베이터 과거’가 있는 나로서 6번을 나무랄 수는 없으나 그의 말대로라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지 싶다. ‘그럼 메뉴파일을 턱으로 넘길까요? 화장실 손잡이는 팔꿈치로 돌리나요? 버스손잡이는 발로 잡고 서있어야겠네요?’ 질문을 하려고 벼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까부터 6번이 하는 짓을 노려보고 있던 2번이 드디어 포문을 열고 나선다.

“그라지 말고 아예 화생방용 복장으로 댕기라. 깔끔떠는 것도 지나치면 병인기라. 병균도 적당히 먹어줘야 면역력이 생기는 법이라꼬. 찢어진 상처에 재 뿌리고, 머리 터지면 된장 바르고, 곪은 상처에 감자 짓이겨 붙이며 불결한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는 그럼 벌써 다 죽었겠네? 위생에 그리 철저한 양반이 독감엔 와 걸맀노? 미안하지만 실장님이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고, 내가 간염, 3번이 폐렴, 4번이 기관지염, 5번이 천식이니까 이 병실에도 병균이 우글우글하겠구만? 그런데다 당신이 독감바이러스까지 끌고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독감에 걸렸거든 아주 무균실에 입원할 일이지 6인실엔 왜 들어왔어? 고마해라! 그마이 호들갑떤다꼬 병균이 없어지나? 마스크 쓰고, 손 자주 씻고, 의료진 지시에 순종하면서 병균과 서로 부대끼다가 병을 이겨내면 집으로 가는 거고, 못 이기면 영안실 냉장고로 들어가는 기라. 메르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거 몇 달 동안 전 국민을 공포와 번거로움 속으로 몰아넣고 장사치 몇 놈만 배불려준 사건 아이가? 그 난리통에 모두 23명이 죽었다지? 하루에 죽어나가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몇 명인 줄 아나? 결벽증도 저 정도면 이미 중증이여!”하며 6번의 독감에다 결벽증을 하나 더 보태버린다. 내가 들어도 지당한 말씀이다. 눈치 없이 고상한 척 어수선하게 굴더니 고소하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저런 결벽증은 우리 집에도 살고 있다. 저번에 갓 태어난 외손자가 왔기로 그놈을 번쩍 들어 안고 뽀뽀를 해주었더니 제 외할머니란 작자가 질겁하고 달려와 포대기를 홱 낚아채며 고함지르기를, “씻고 와!”하는 것이었다. 저 “씻고 와!”는 평생 들어온 말이로되 그날따라 새삼스레 더 번거롭고 미웠다. 모전여전, 솔직히 외손자의 어미는 한술 더 뜬다. 사위도 피곤할 것이다.

내가 회장인 어느 모임에도 저런 결벽증이 하나 있었다. 그는 100도 이상 끓이지 않은 고기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한번은 횟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날도 그는 회 뜨고 남은 뼈다귀와 대가리를 삶은 찌개만 깨작깨작하고 있었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보아 저러다 폭발하지~~ 아슬아슬 곁눈질하고 있는데, 결벽증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눈치 없이 결벽증 앞 접시의 회까지 휩쓸어 담아 쌈을 싸서 맛나게 아작아작 씹는 바람에 그만 그의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회식장소 선정에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사유로 회장단을 성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의 불만에 동의하는 회원이 없자 날고기를 먹는 야만인들과는 도저히 모임을 같이할 수 없다며 결연히 탈퇴를 선언한 뒤 선걸음에 휑하니 퇴장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섭생에 철저한 그 문명인이 우리 야만인들보다 건강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면 없어서 못 먹는 우리 야만인들이 그보다 덜 건강한 것도 아니다.

작년 여름캠프를 서해안에서 개최하면서 문명인의 강력한 주장에 못 이겨 점심으로 홍합탕을 먹었다. 그때 설사를 좔좔해 병원 응급실에 들렀다 국도로 돌아오며 시도 때도 없이 버스를 세우는 바람에 그 좋은 ‘관광버스’의 즐거움을 망치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 문명인이었다. 회원 모두 무드가 무르익을만하면 버스를 세워 설사를 하고, 모처럼 노래 한 곡 뽑으려고 분위기를 잡으면 버스를 세우는 것이었다. 관광1번지 경주에 살면서 굳이 서해안까지 멀리 간 이유도 왕복 관광버스에서의 유흥을 오래 오래 즐기기 위함이었으니 회원들의 불평과 원망이 오죽했으랴. 월례회마다 문명인 입맛에 맞추다보니 엉뚱한 메뉴가 선정돼 회원들의 불만이 고조되던 참이라 그 친구 탈퇴 선언을 듣고는 모두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회칙 징계 조항에 식사 메뉴 문제로 친목을 저해하는 회원은 축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기로 제명을 못 시키던 참에 스스로 떠나준다니 얼마나 반갑던지. 뒤통수에 대고 ‘섭섭하다’, ‘아쉽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척들 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만세를 불렀다. 그 다음부터는 거리낌 없이 ‘보신탕’ ‘육회’ ‘과메기’에서 모임을 즐기고 있음은 물론이다. 야만인은 야만인들 끼리 놀아야지 어쩌겠는가.

별로 자랑할 만한 과거는 아니지만 나는 할머니가 잔칫집에서 꼬질꼬질한 손수건에 싸들고 오신 시루떡을 얻어먹으며, 외할머니가 씹어서 먹여주는 오징어를 받아먹으며 자랐다. 그것조차 귀해서 껄떡거렸다. 6번, 우리 집 여인들, 탈퇴회원이 알면 속이 뒤집어져 구토를 일으킬 것이다.

그들의 위생관념에 대입하면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잡지가 발간되면 내 이름부터 찾는다는 몇몇 독자와 더불어 병균과 뒤엉켜 씨름하며 멀쩡하게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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