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출가 / 곽흥렬

 

 

인구의 고령화 현상이 불러온 사회문제가 화젯거리로 떠오른 지 오래다. 장수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초래된 피치 못할 결과일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점차 개선이 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암울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비단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형국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것은 유치원 아니면 학교이고, 생겨나는 것은 노인병원 아니면 요양시설이다. 계속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되고 말 것인가. 그 암울한 미래상을 떠올려 보노라면, 생각만으로도 벌써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온다.

인연 있는 스님과 함께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잡다한 세상 이야기가 오고 갔다. 출산율의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나라의 장래가 적이 염려스럽다는 ​걱정도 흘러나왔다. 그 말끝이 스님이 불쑥 이런 소리를 꺼낸다.

"낮은 출산율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불교계로선 요즈음 출가자가 모자라서 참 큰일입니다. 게다가 다들 예전에 비해 훨씬 늦은 나이에 출가出家를 하다 보니 수행의 치열성이 부족한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불현듯 우리 문단의 현실이 떠올랐다. 지금 문학계 역시 불교계가 처한 상황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평소의 생각 때문이다.

이 땅의 문단이 날로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형세이다. 물론 복합적인 요인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겠지만, 아마도 국민 평균연령의 증가가 여기에 한몫을 한 결과이지 싶다.

삼사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요즈음에 비해서 작가도 그다지 흔치 않았을뿐더러 십 대 혹은 이십 대 때 벌써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문학청년, 이른바 '문청'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나이에 일찌감치 작가의 길로 들어선 까닭에 다들 영혼이 순수했다. 그러기에 오로지 문학 하나에다 생을 걸고 우직스럽다 싶을 만큼 창작에의 열정을 불태울 수가 있었다. ​

자본주의가 득세를 하자 물질적인 것들이 세상의 주류로 군림하게 되면서 문학은 주변부로 밀려나 버렸다. 요즈음 글을 쓰는 직업을 갖는 것은 밥 굶기 딱 좋을 만한 일이다. 그러니 청춘들이 굳이 돈 안 되는 글에다 인생을 걸려고 하겠는가. 지금 문인 단체에 젊은 피는 눈 씻고 살펴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그러한 상황에 불을 붙이지 않았는가 싶다. 이제 문학은 세상의 중심부에서 한 발짝 물러난 은퇴자들의 놀이 장소로 전락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신 문학을 하나의 고급한 사교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니, 창작에 목을 매기보다는 그것을 그저 취미 내지는 여기餘技 삼아 하려 든다. 자연히 좋은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들의 글이 대체로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필시 이런 이유에서 일 터이다.

개중에는, 다분히 농이 섞인 어투로 '전 국민의 문인화文人化'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 국민 모두가 문인이 된다면 사람들의 정서가 그만큼 순 후해 질 것이 아니냐는 논리를 편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닌 성싶기도 하다. 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풍요로운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그 무엇이든 너무 흔하면 자연히 희소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인 법,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존 그레샴의 법칙이 우리 문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문인의 길로 들어선 사람일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창작에 임해야 젊어서부터 작가 생활을 한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상당수가 그렇지 못한 것 같으니, 그 점이 '사이비 문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한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소일거리 삼아 문단을 어슬렁거리는 행위는 문학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끄러운 짓임에 틀림없다. 글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사실을 한번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로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산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정신적인 건강성은 점점 더 황폐화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가치의 부조화 현상이 깊어 가면 갈수록 용맹정진하는 참다운 수행자가 목마르고 그리워지듯, 세상의 무게중심이 물질 쪽으로 기울어 가면 갈수록 창작에 생을 걸려는 진정한 작가가 간절히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