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공책 / 전오영

 

산자락에 걸린 노을이 붉다.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김 할머니의 목소리도 덩달아 붉게 물든다. 갈림길을 지나 들녘 길이 이어진다. 길 양옆으로 휘어져 있는 밭뙈기가 길을 만드는, 고적한 풍경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엊그제 당신도 텃밭에 마늘을 놓았다며 마을 어귀를 가리킨다. 신목의 귀기를 품은 팽나무 곁을 지나 공터에 주차를 한다. 먼저 내린 김 할머니가 앞서 걷는다.

길갓집 개가 짖어댈 뿐 동네는 조용하다. 초록대문 집을 지나 칠하지 않는 은빛 철 대문 앞에서 멈춰 선 할머니가 숨을 고른 후 천천히 문을 민다. 티끌 하나 없는 정갈한 마당이 초면의 어색함을 마중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일자형의 주택은 할머니의 동선에 맞게 개조한 듯 보인다. 소박하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고 가야 한다며 꼬리볕이 데워 놓은 마루에 앉힌다.

마당 너머 할머니의 마늘밭이 보인다. 밭 가상엔 봄동이 나부작하니 땅에 엎디어 있고 북을 돋아 갈무리해둔 파 두럭은 파꽃 같은 김 할머니의 이미지 그대로다. 단정한 텃밭 위로 할머니의 구부정한 시간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렀을 것만 같다. 풀을 매면서 한글 시간에 배운 글자를 땅에 써 보기도 했다는 할머니의 텃밭은 글거름 때문인지 더 푸른 것 같기도 하다.

기실 예기치 않은 방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못했던 문해 수업을 보강하게 된 이후 김 할머니는 유독 초췌했다. 하루 서너 대밖에 없는 마을버스 시간에 맞춰 학교에 다니는 일이 수월찮은데다 워낙 마른 체구라서 체력이 쇠한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보강 때문에 두어 시간 넘게 한데서 차를 기다린 게 화근이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정류장 근처 약국에서 잠시나마 한기를 면했을 텐데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기인지라 그러지도 못했다며 수척해진 이유를 풀어 놓았다. 나는 슬쩍 할머니의 넋두리 틈새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김 할머니의 집 방향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자 한 내 속내가 오늘의 느닷없는 방문인 셈이다.

김 할머니가 문해반 교실 문을 두드린 건 이태 전이었다. 백발에 다소곳한 차림의 할머니는 교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강의 시간 첨삭하기 위해 내가 옆에라도 가면 할머니의 글자들도 당신처럼 긴장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차츰 이물이 없어지고 할머니의 자리는 빈 적이 없었다. 숙제를 빼먹으면 끼니를 거르는 것 같다는 말을 무심히 던지기도 했다.

해방이 되기 전, 일제가 숟가락 젓가락까지 거둬가던 시절에 태어났다는 김 할머니는 유독 말수가 적다. 가난은 배움의 시간을 앗아갔고 젊은 날 남편과의 사별은 삶을 고독하게 했던 것 같다. 때문인지 노트 속 글자들도 쓸쓸해 보였다. 먼저 하늘로 간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던 할머니의 소망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부터 김 할머니의 일기장이 내 책상 위에 올라왔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삶의 애환이 속박이처럼 들어 있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나름대로 적어오기도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본 소회를 당신의 고적함에 빗대어 써오기도 했다. 한글의 제자 원리와 애민 정신을 배우고 난 다음날엔 세종대왕을 사랑한다는 글을 수줍게 내놓기도 했다. 어느 날은 글자들이 쓰면 쓰는 대로 머릿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하소가 절절하니 노트에 박혀 있었다. 꾹꾹 눌러 쓴 글자가 자국으로 남거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많은 할머니의 일기장이 때론 경이 되어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김 할머니는 이제 맨 앞자리에 앉는다. 말수도 점점 많아지고 얼굴도 밝어졌다. 간혹 방금 배운 것도 도랑 건너다 잊어버린다며 너스레를 피우기도 하고, 교실 분위기가 절인 배추처럼 흐느적거릴 땐 당신의 삶이 녹아든 해학으로 생기를 불어넣곤 한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사과낭구를 심더라고잉." 김 할머니의 말에 의자들이 이구동성 허리를 펴는 문해 교실.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땀 한 땀 글을 수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생의 경전이지 싶다.

엷어진 노을이 앞산을 넘어간다. 문득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爲'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 말은 제사 때 쓰는 지방이다. 죽은 사람에게도 학생이란 신분을 언급한 것을 보면 사는 동안 공부해야 할 이유 아닌가 싶다.

할머니의 공책에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