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김희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섬이다. 우주의 중심에서 실재하는 지구 또한 외딴 섬이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혼자인 섬이다. 우리 삶도 섬이 되는 날이 있다.

어부의 통통배를 얻어 타고 앵강만을 건너 노도에 섰다. 노도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티끌처럼 떠 있는 섬이다. 실타래 같은 인연으로부터 탈출의 욕구에 시달릴 때는 차라리 세상만사와 아득히 먼 섬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 속에서 중심을 잡아보지만 외롭기는 매한가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섬에 오고 싶었다. 그리움도 병인 양 부딪혀서 환상을 깰 수 있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비우고 털어 낸 자리에 또 다른 것이 채워지듯 새로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구운몽의 배경이 되었던 앵강만은 전설처럼 묵묵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을 뿐 고요하다. 노도는 바다에서 올려다 보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답지 않게 서포 김만중이 유형(流刑)의 삶을 마감했던 곳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의 고뇌와 족적이 서린 섬은 바다라는 창살에 갇혀 육지로 돌아갈 수 없어 보인다. 언덕에는 여남은 채 집이 섬처럼 엎드려 있고 바다는 조용하고 쓸쓸하다. 사람의 소리도 짐승 우는소리도 들리지 않고 먼바다에서 달려온 파도만이 섬 언덕을 찰싸닥찰싸닥 두드린다.

고요하고 호젓한 옛길 위에서 수유간 마음자리를 순하게 가져본다. 여덟 선녀를 거느리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희롱하던 길고 긴 한 생이 사실은 일장춘몽이라고 옛사람은 이 섬에서 서록했다. 유한의 인생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를 찾아 항해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신산한 인간사의 거대한 파도가 한낱 물거품이 되어 부서질 때 비로소 살아간다는 것 또한 망집을 보태거나 그 다발에 묶인 것이라 느끼면서 말이다. 깊은 산속이건 외딴 바닷속의 섬이건 고립된 삶의 등 뒤는 슬프다. 옛사람이 떠난 후 초옥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남은 우물 터와 허묘에는 바람만 서성거릴 뿐 허허롭다.

노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거북이를 닮은 섬이 있다. 망망대해에 뜬 작은 섬은 나의 유년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다. 흰머리 희끗희끗 핀 중년이 된 지금도 고향 언덕에 서면 아득한 꿈을 그리게 하는 곳이다. 쉬이 범접할 수 없어 더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섬이다. 어린 시절 보얀 안개에 섬이 사라지면 겹겹 파도를 받아들이는 바닷가 절벽으로 길을 잃은 물새들이 울음을 물고 날아왔다. 소학교에 다니던 어느 봄날 언니와 오빠들이 그 섬에 간다고 했다. 호기심이 유별났던 나는 그들을 따라 바다로 나아갔다. 안중으로 보기에는 가까운 듯했지만 꿈은 먼 곳에 있다는 듯 작은 배로 가기에는 까마득했다.

낮에는 하얀 등대가 아른거리고 밤이 되면 작은 등댓불이 깜박이던 그곳은 무인도였다. 섬 한 면은 먼바다에서 거세게 밀려온 해풍에 시달려 절벽을 이루었고 또 다른 면은 완만한 언덕을 낀 돌섬이었다. 허허로운 바다에 홀로 서서 고독과 싸우며 먼바다에서 달려온 태풍과 짜디짠 바람을 견뎌야만 하였다. 날선 파도가 미친 듯이 몰아쳐 상처를 내어도 작은 섬은 생이 혼자인 사람처럼 바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곳은 내가 그리던 환상의 섬이 아니라 먼 곳에서 꿈을 안겨주고 그저 바라보는 그리움만으로도 좋을 섬이었다.

한때는 나 또한 망망대해에 홀로 선 섬과 진배없었다. 선한 마음으로 세상에 손을 내밀었다가 도리어 발등을 찍혔다. 험한 파도에 이리 밀리고 저리 떠밀리는 섬처럼 십수 년 동안 흔들렸다. 믿었던 세상이 나를 버린 듯 의지할 데 없이 외로웠다. 세상을 원망하며 쓰러져 잠든 날이 하루 이틀 아니었고 세찬 바람 속에서 발등에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속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천둥과 비바람이 치고 간 외딴 섬처럼 내 삶은 상처투성이였다. 세상은 가끔 눈이 멀어 그릇된 일이 참된 일을 해하여도 모르는 것 같아 소원했다.

고독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은 저마다 섬의 세계에 살며 예술을 낳는다. 귀양살이를 하던 옛 문호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바깥세상을 동경하며 글을 썼듯이 나 또한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책을 곁에 두었다. 섬이었던 옛 문호가 절망과 고뇌 속에서 꿈꾸던 세상을 그렸듯이, 나도 고독한 섬처럼 몸을 낮추고 꿈꾸는 삶을 그렸다. 깊어가는 포도주의 맛처럼 지친 내 심신에 윤기를 적셔주는 것이 꿈이었다. 망망한 바다 위의 섬처럼 일상으로부터 좀 더 외톨이가 되었을 때 존재의 가치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고 놓치고 있는 삶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고독을 극복해 보니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나로 성숙해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같은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처럼 사람은 혼자 서는 그때부터 섬이 되는 것이다. 마침표같이 늘어선 섬과 섬 사이에서 우리는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간다. 인연의 바다에 닻을 내렸을 때 스스로 움직일 동력조차 없이 외롭게 흔들린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도 뜻과 생각이 다르면 외딴 섬처럼 적막하다. 등 기댈 언덕조차 없어 늘 바람에 허전하다.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처럼 세상 풍파에 부대껴 울퉁불퉁 패인 자국마다 아픔이 서린 것이 사람이라는 섬이다.

섬 언덕바지 밭에서 갯바람을 맞으며 아낙이 김을 맨다. 작은 땅에 삶을 일구는 풍광조차 현실이다. 현실의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섬은 낭만이 실현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 역시 고독한 섬이다. 육지에서 소외되어 귀양살이를 했던 옛사람도 섬이었고 세간사에 떠밀리다 이곳까지 온 나 역시 섬에 불과하다. 뭍에서 떨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사람도 섬이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옛사람의 말대로 인생이란 봄날에 졸다가 꾸는 한낱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곁으로 나타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세계에 매진해야 한다. 사람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우리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지금 이곳, 마음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섬 언덕을 내려와 뭍으로 가는 배를 기다린다. 바람이 분다. 봄날 꿈을 꾸던 민들레가 하얀 씨앗이 되어 바람 따라 날아간다. 제 그리움 하나씩을 품고 환상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