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 김정화

 

 

단. 칸. 방.

어릴 적 우리 집은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들판 한가운데 내려앉은 둥근 초가지붕 하나. 마당과 경계 없이 사방으로 탁 트인 논과 밭. 새들의 울음을 싣고 흐르던 낮고 긴 강. 둥글게 그어졌던 지평선 그림자. 그리고 네 식구가 누우면 군불이 약해도 훈훈하기만 했던 방. 내가 태어나 이십 년 동안 살았던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방 안에 켜둔 호롱불은 밤이 깊도록 꺼지지 않았다. 가끔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흔들면 그을음을 내는 불꽃은 바람에 밀렸지만, 독서나 바느질을 방해하진 않았다. 시골 외딴집까지 전기선이 닿으려면 따로 전봇대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에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매일 호롱에 석유를 붓고 불을 댕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어쩌다 마실이라도 갔다 늦은 날이면, 아버지는 무화과나무 울타리에 등불을 하나 더 달아두었다. 멀리 보이는 외딴집은 들판의 섬이었고 그 등댓불은 어린 마음이 따라갈 길을 만들어 주었다.

집을 나서면 논두렁과 미나리꽝 길이 탯줄처럼 이어졌다. 한 시간 넘게 걸어야 읍내 초등학교에 다다를 수 있는 그 길은 촌아이 눈 뜨임의 길이었으며, 지금도 한 번씩 찾게 되는 회귀의 통로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읍내 친구 집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이 층 하늘색 양옥집에는 당시 드물게 수세식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친구 어머니는 꾀죄죄한 시골 아이에게 절편과 꿀이 담긴 간식을 내어왔다. 어린 눈에 비친 친구의 방은 경이로웠다. 작은 옷장과 혼자 쓰는 서랍장이 있었고 나무로 만든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었다. 놀라웠다. 아홉 살 아이에게 책상이 있는 자기만의 방이라니.

이후 소원은 내 방을 하나 갖는 것이었다. 게다가 작은 탁자라도 하나 놓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만의 공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방 한쪽에 이불을 쌓아 올려 몸을 숨겼고, 우산을 구석에 펼쳐두고 그 속에 쭈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 어떤 때는 쪽마루 아래 보자기를 발처럼 내려놓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이 들기도 했다. 나만의 공간은 무시로 지어졌다 헐리기를 반복했다.

훌쩍 이십 년이 흘렀다. 단칸방 생활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끝이 났지만 내 방은 없었다. 동네 복판으로 이사를 나와서는 어머니와 한방을 썼고, 어머니 죽음 후에 동생과 함께 지냈으나 여전히 자신만의 공간은 없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나는 국문학 공부를 하였고 막연하게 가졌던 문학의 꿈을 가까이하고자 인근 대학에서 개최하는 문학 강좌를 들으며 습작을 시작했다. 그즈음 우연히 책상도 밥상도 아닌 앉은뱅이 나무 탁자가 하나 생겼다. 젊은 공학도가 과제용으로 만들어 제출하고서 버린 것으로 아무도 그 탁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베란다 한쪽에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탁자 앞에 코를 박은 채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글감도 생각했다. 아마 그곳이 처음으로 갖게 된 나만의 작은 자리였지 싶다. 그러나 방에 대한 공간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동안 ‘자기만의 방’을 꿈꾸던 일을 잊어버렸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했던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이다. 종일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늦게 귀가하면서 탁자에 앉아 글 한 줄 쓸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마음의 문은 저절로 닫혔고 상처는 안으로 고였다. 곪은 속을 쏟아낼 나만의 방을 갖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나무 탁자를 다시 펼치기까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마음을 추스르고 수필이란 글밭에 발을 디디면서 구석에 세워둔 탁자를 주방 한쪽으로 옮겨왔다. 그곳에서 글을 써 내려갔다. 스스로 다독이며 자신의 껍질을 벗겨 내기로 작정했지만 쉽지 않았다. 부끄러운 삶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못하는 까닭이다. 글은 잘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자기만의 방’ 찾기에만 마음이 쏠렸다.

그러다 두어 해 전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 해풍이 부는 산자락에 소담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다. 세 개의 방과 거실이 딸린 집인데 창문 가득 푸른 산이 가까이 내려앉은 곳이다. 문간방 두 개는 딸에게 내어 주고, 나는 지척에서 나무가 흔들리고 초록 빛살이 번지는 창가 방을 선택했다. 책장을 옮기던 첫날에 책탑을 쌓는 일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그때의 나무 탁자가 제자리를 찾은 일이다. 나는 그 앉은뱅이 탁자를 방 가운데로 모셔왔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방에 탁자를 놓으면서 무한의 공간이 생겼다. 비록 좁은 방이지만 성찰의 자리이고 희망의 공간이며 문학의 산실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글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 여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