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밥/윤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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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새벽에 문을 나선다.
    오늘 친구들과 소풍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점심 준비로 찰밥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소학교 때 원족을 가게 되면 여러 아이들은 과자, 과실, 사이다 등 여러 가
    지 먹을 것을 견대에 뿌듯하게 넣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모여들었지만, 나는 항
    상 그렇지가 못했다.
    견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찰밥을 책보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따라가야 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숯불을 피워가며 찰밥을 지어 싸주시고 과자나 사과 하나
    못 사주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다른 여축은 못
    해도, 내 원족 때를 생각하고 고사 쌀에서 찹쌀을 떠두시는 것은 잊지 아니하셨다.
    나는 이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아는 까닭에, 과자나 사과 같은 것은 아예 넘겨다
    보지도 아니했고, 오직 어머니의 정성어린 찰밥이 소중했었다. 이것을 메고 문을
    나설 때 장래에 대한 자부와 남다른 야망에 부풀어, 새벽하늘을 우러러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말하자면 이 어머니의 애정의 선물이 어린 나에게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소풍 혹은 등산을 하려면 으레 찰밥을 마련하는 것이 한
    전례가 되고 습성이 된 셈이다. 오늘도 친구들과 야유를 약속한 까닭에 예와 같이 이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나선 것이다. 밥을 들고 퇴를 내려서며 문득 부엌문 쪽을 둘러봤다.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다가는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슬픈 일이다. 손에 밥은 들려 있건만 그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손수 숯불을
    불어가며 찰밥을 싸주고 기대하며 기르시던 그 아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으셨던가?
    그는 매일매일 그래도 당신 아들만이 무엇인가 남다른 출세를 하리라고 믿고 그의
    구차한 여생을 한줄기 희망으로 살아왔건만 그의 아들은 좀체로 출세하지 않았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고만 있지 아니했던가. 어머니는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그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먼 길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웃음을 보이려 했다.
    “나는 너의 성공하는 것을 못 보고 가지만 너는 이담에 꼭 크게 성공해야 한다.”
    그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모른다.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끝끝내
    아들의 성공을 믿으려던 그. 그 아들도 그때는 막연하게나마 감격에 어린 눈으로
    대답했었다.
    사실 그는 야망에 차 있던 청년이기도 했다. 환상에 사로잡히어 멍하니 섰던 나는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본다. 아침 여섯 시 반, 일곱 시 사십 분까지 불광동 종점으로
    모이기로 된 약속이다.
    여명의 하늘은 훤히 밝아오고 서글서글한 바람이 옷깃으로 기어든다. 나는 문을
    나서며 먼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백수(白首) 오십에 성취한 바
    없이 열한 살 때 메고 가던 그 밥을 손에 들고 소년 시대의 기분으로 문을 나서는
    사나이. 어머니! 야망에 찼던 어머니의 아들은 이제 찰밥을 안고 흰 터럭을 바람에
    날리며, 손등으로 굵은 눈물을 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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