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꽝과 오뎅’에 관한 미스터리

 
 
 

왜 꼭 단무지·어묵이라 부르라 강요하는지, 왜 길거리에서 먹는 게 더 맛있는지

 

얼마 전 지방에 내려갔다가 기차를 타고 올라오려는데 배가 고팠다. 내가 워낙 우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터미널의 한 스낵코너에서 우동을 시켰다. 우동이 나온 후 다쿠앙 좀 더 주세요 -물론 발음이야 다꽝이라고 했겠지만 - 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단무지에요 다쿠앙이 아니라, 했다. 그리고는 내가 단무지라고 발음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색을 하고 교정해주는 스낵코너 아주머니

실은 다쿠앙 더 주세요, 했을 때 나도 잠깐 망설였었고 굳이 다쿠앙이라고 한 것은 나 대로 뜻한 바가 있어서이긴 했다. 스파게티는 스파게티고 피자는 피자고 스테이크는 스테이크, 햄버거는 햄버거이고 심지어 우동도 우동이고 돈까스도 돈까스인데 왜 다쿠앙만 이렇듯 내가 무슨 나쁜 말이라도 발음한 것처럼 교정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요즘 계속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대로 해보자고 다쿠앙 더 주세요 한 것인데 순간 아주머니나 나나 마치 무슨 나쁜 발음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뉘앙스의 음식이 또 하나 더 있다. 오뎅 말이다. 오뎅은 도무지 어묵국이나 어묵꼬치 같은 이름으로 부르면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 아주머니는 아마 내가 오뎅 주세요 했으면 오뎅이 아니라 어묵이에요, 하고 날 빤히 바라볼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해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오뎅은 어묵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에 무와 곤약등을 넣고 국물을 우려낸 음식의 이름이니까 말이다. 굳이 말하면 어묵국, 어묵탕 이라고나 할까.

글쎄 내가 젊었더라면 아마, “아주머니 피자는 피자고 햄버거도 햄버거니까 다쿠앙이고 오뎅이고 그냥 그 나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죄가 아니에요” 했을까. “일본말 중에서 이씨조선이라든가 민비라든가 식민 지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지금도 논란이 되는 단어를 제외하고 음식이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인데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이상하게 꼭 번역을 해야 하냐구요. 나는 푹신의자나 얼음 보숭이나 그게 좀 이상하더라.....언어라는 게 원래 온 세계를 살아서 제 발로 돌아다니는 건데요. 그리고 그렇게 외래의 언어를 받아서 각 나라의 언어는 더 풍부해지는 거구요”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꽤 들긴 든 것 같다. 지금은 싸우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싸우는 사안이 먼저 생각나는 대신, 내가 싸운다고 북한이 국민을 배불리 먹이고 이 정권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면 그냥 맥이 쭉~~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터미널 한구석에서 나오는 뉴스의 화면들이 내 기운을 쪽 빠져버리게 해서 나는 그냥 “어쨌든 주세요” 하고 말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가 퍼붓더니 그 저녁 서늘한 바람이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풀벌레가 울고 있으면 제격인 밤이었다. 아아 드디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구나......하는 생각에 이불을 꼭 여민 채로 누워있는데 영 잠이 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였다. 여행 중에 과음에 과식을 한 탓에 체중이 불어나 저녁을 먹지 않고 어서 자려고 누웠는데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참으려고 생각하니 더 배가 고팠다. 아침에 괜히 그 아주머니 때문에 다쿠앙 우동 오뎅 하다가 오뎅에 꽂혀 버린 것이다.

나는 오뎅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남들 다 좋아하는 짜장면, 떡볶이, 튀김 등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오뎅만큼은 앉은 자리에서 남들의 서너 배는 먹었다. 지금도 길거리 지나가는 길에 (특히나 이제 가을이 된다 찬바람 이는 저무는 거리의 오뎅 꼬치! 추운 밤, 손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종종 걸어가다가 친구의 손짓에 따라가 횡재처럼 얻어 먹었던 잔 소주 한잔에 오뎅 꼬치 하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이었던가) 오뎅 파는 포장마차가 있으면 그날의 의상과 그날의 동행에 상관없이 발길이 머뭇거린다.

 

“이 담에 돈 벌면 오뎅 많이 사먹자”

 

 

 
 
 

대학 4학년 때였던가,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휴게소에 들렸다. 우리는 회비로 걷은 돈을 다 써버리고 겨우 터미널에서 집에 돌아갈 차비 정도만 가진 채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보니까 친구가 오뎅을 파는 코너 앞에 서 있었다. 아마 그날도 비가 내리고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뭐하니, 하고 물으면서 내가 다가가자 친구가 내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지영아, 우리 이담에 돈 많이 벌면 여행 갔다가 돌아올 때 오뎅 많이 사먹자”

솔직히 나는 내가 왜 우리 엄마가 늘 그러는 것처럼 비상금 하나 꼬불쳐두지 못하고 여행중에 기어이 소주 몇 병을 더 시켜서 그 비상금을 다 없앴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여운 내 친구가 얼마나 오뎅이 먹고 싶으면 내 손을 꼭 잡고 이담에 (오뎅 먹는데 무슨 이담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원!) 돈 많이 벌어 오뎅 사먹자는 말을 하다니 말이다. (그것도 웬만한 대학을 나오면 다 취업이 되던 1980년대 중반, 연대 영문과 졸업을 앞둔 4학년 여학생이 말이다) 만일 그 애가 남학생이었으면 나는 그 애가 가여워서 아마 내가 앞으로 데이트 할 때 오뎅 많이 사줄 테니까 사귀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다음부터 오뎅은 내게 더 애틋한 음식이 되었다. 아직도 지방에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오뎅이라는 말을 아무 느낌 없이 지나치지는 못한다. 그 친구가 만일 내 여자친구가 아니라 첫사랑이라도 되었으면 가슴이 미어졌겠지,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처음에는 내가 대체 왜 이러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이 몇몇 있긴 하다. 연기자 하희라씨가 펴낸 요리책에는 남편인 최수종씨가 어찌나 어묵을 좋아하는지 온갖 종류의 어묵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언제든 요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나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척해도 어색하지 않은 비결이 오뎅에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그 몸매는 어묵의 저지방과 오뎅의 담백함에 기인한 것이었나 싶은 생각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아무리 고급 음식점에 초대를 받아도 꼭 길거리에서 오뎅을 몇 개 사먹고 온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저렇게 입이 짧은데 어떻게 배가 저리 많이도 나왔을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비결이 그거였다.(그러고 보면 체중과 오뎅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 그리고는 일차에서 이차로 옮겨 가는 사이 또 포장마차로 가서 오뎅을 먹는다. 그리고 이차에서 삼차로 가는 길에 또 사라진다. 역시 오뎅을 먹으러 말이다. 그리고 삼차가 끝나 집으로 가기 전에 또 들러 오뎅 국물이라도 먹고 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오뎅 포장마차가 가깝지 않은 곳에서 저녁 모임을 하면 안절부절 못한다. 차수를 옮기는 사이에 오뎅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걸 두고 오뎅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오뎅 중독이라는 말이 있기는 한가? 어쨌든 이런 사람에 비하면 내가 오뎅을 먹는 것은 취미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고급 일식집에서 먹어도 그 맛만 못하더라

 

 

 

»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그런데 오뎅이라는 음식이 이상한 이유는, 만두나 튀김 같이 우리가 길거리에서 시작해야 하는 그 음식들은 대개 그 값이 고가가 될수록 맛이 있는데 유독 오뎅만은 아무리 고급 일식집, 아무리 비싼 오뎅 바에 가도 내가 길거리에서 먹는 그 오뎅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급 생선으로 만든 것보다는 약간 맛이 간(?) 생선으로 만들어 길거리 먼지가 살짝 조미된 그 오뎅 맛을 아무도 흉내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얻을 수 없다는 게 있는 게 신기하다. 게다가 오뎅은 사랑도 마음도 인격도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밤은 깊어가고 비 그친 후 바람은 서늘한데, 오뎅 생각에 시름에 잠겨 있던 나는 잠시 바람에 펄럭이는 달력을 훔쳐본다. 8월이 가고 9월이 온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 .......이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한다. 이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꼭 길거리로 가서 오뎅을 사먹어야지, 하는 결심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러자 조금 행복해진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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