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마음에도 면역력이 있다

작가

강인하고 지혜로운 또 하나의 나

'내면의 자기' 우리 모두에게 존재

걱정 말고 진정 자신의 길 가라고

어떤 상처도 이길수 있게 용기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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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1차 트라우마가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면, 2차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발생할 때가 많다. 예컨대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 때문에 겪는 상처가 1차 트라우마, 첫 번째 화살이라면, 그 학대 때문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기인식을 굳건히 해버린 채 마음의 창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는 것이 2차 트라우마, 두 번째 화살이다.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하려는 개인의 의지를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첫번째 화살은 막을 수 없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첫 번째 화살은 주로 어린 시절이나 사회 초년병 시절 예비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말한다. 두 번째 화살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에 상처를 받는지’ 우리가 알고 난 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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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면 두 번째 화살의 출처가 보인다.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비난, 혹은 가해자 스스로의 어처구니없는 변명과 적반하장식 대처가 주요 발생지다. ‘뭐 그런 걸 갖고 상처받고 그러니’라는 말,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남들은 다 참고 살아’라는 말이 모두 2차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내가 때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구타를 유발한 것이 문제다’라는, 피해자가 뭔가 처신을 잘못해 피해를 입은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모든 비난 또한 2차 트라우마에 불을 지른다. ‘그나마 다행이지, 그만하길 다행이지’라는 공허한 위로도 2차 트라우마를 발생시킬 수 있다. 내 상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말들, 내 상처를 어떻게든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상처입은 나의 존재를 무력화하는 말들이 2차 트라우마를 강화한다. 우리의 목표는 1차 트라우마를 막을 수 없는 대신, 2차 트라우마를 막을 수 있는 자기치유의 테라피를 개발하는 것이다. 상처에 취약해 점점 더 예민해지는 신체가 아니라, 상처보다 더 중요한 우리 인생의 보다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 상처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신체로 만드는 것이다.

나의 끈질긴 ‘2차 트라우마 가로막기 대작전’ 덕분에 나는 상처가 올 때마다 그 상처와 당당하게 대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상처를 피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처가 제 마음의 면역체계를 공격할 때마다, 나는 묻는다. 이 상처야, 너는 나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셈이니. 그러면 놀랍게도 내 안의 셀프, 내면의 자기라는 녀석이 용감하게 고개를 들며 이렇게 말한다. 무슨 소리야. 난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어. 잠시 쉬어가는 것뿐이야. 잠시 전열을 정비하고, 곧바로 너와 싸우러 나갈 테야. 각오해. 난 나의 상처보다 강한 존재야. 난 항상 상처를 이겨내왔어.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어. 내 상처를 이겨내고 끝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그 희망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어.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이길 거야. 이렇게 당차게 대꾸하는 제 안의 셀프를 만나게 된다. 천만다행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셀프(Self:내면의 자기), 즉 눈에 보이는 우리의 에고(Ego:사회적 자아)보다 훨씬 강인하고 지혜로운 또 하나의 나라는 모습이 존재한다. 에고는 늘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이기에 연기와 변신에 능하지만, 대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허영과 체면치레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낭비할 염려가 있다. 셀프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용기를 지닌 우리 안의 또 다른 현자다. 나는 지칠 때마다 그 셀프의 목소리를 듣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자칫 나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의 셀프는 오늘도 나에게 당당히 주문한다. 어떤 상처에도 굴하지 않는 내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결코 나 자신을 얕보지 말라고. 욕심나는 길보다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보라고. 아무도 널 가로막을 수 없으니, 걱정말고 진정 나 자신이 되는 길을 떠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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