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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던진 질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부리면서

정작 답변을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 시집『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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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보르스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실존철학에다 접목시킨 시를 즐겨 썼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계속된다.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많은 말들이 있다. 애디슨은 “진정한 행복은 처음엔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 다음엔 몇몇 선택된 친구와의 우정과 대화에서 온다.”고 하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당신과 리무진을 함께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이라고 했다. 

 

 벗을 억지로 구분하자면 두 종류가 있다. 지연, 학연, 직장에서의 인연 등에 의해 피동적으로 엮인 친구와 어떤 목적과 가치를 더불어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기투합된 능동적 친구가 있겠다. 물론 처음엔 피동적 사이였다가 능동적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편이 더 진실하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느 경우든 데면데면한 친구가 있고 듬뿍 정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씩 웃고 악수를 나눌 때도 정이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능동적 친구 가운데도 우정보다는 상호이익의 관계가 더 우선인 경우가 있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도 인간관계는 상호이익이 있어야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정은 모름지기 진실해야 한다. 친구의 아픔과 우울을 함께 공감하고, 가슴으로 관통시켜 그를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리라. 

 

 아무 일 없을 때에는 잘 몰랐던 사람의 성격도 다급한 상황의 반응에서 그 성격이 쉽게 노출된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슬슬 피해가는 비겁이 아니라 함께 고난을 나누어 가짐이 참된 의리며 진정한 친구의 도리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거나 말의 맞장구만으로 공감능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공감은 상대방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고, 그 심정으로 공명하는 것이다. 공감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거나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제거하지 않으면 공감이 들어설 자리는 비좁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없어진 자리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채워지면서 공감은 완성된다.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물론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은 뜨거워야 진정성이 확인되지만, 우정은 반드시 뜨거울 필요는 없다. 대신 우정의 가장 기본이 공감능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곧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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