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한글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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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1/10/08 미주판 21면 입력 2021/10/07 19:00

한글날 무렵이면 해마다 한글을 자랑하는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우수한 글자라는 찬양이 울려퍼진다.

  
하지만 현실 생활에서는 한글 대접이 영 말씀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망가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허물어져가고 있다. 외계어나 마찬가지인 신조어, 온라인 세상을 도배한 토막말들,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 범벅….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그렇게 오염되고 망가진 언어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를 들어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고, 남편을 아빠 또는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근친상간’이 일생생활이 된 것이다. 선생님을 쌤이라고 부른다. 쌤이라니? 엉클쌤을 말하는 건가? 이런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분들도 마구잡이로 천박한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어대명, 무야홍, 홍찍명 같은 천박한 말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산다는 데 있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피해가 심해진다.

언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환경이나 예술분야에서도 한글 홀대가 심각하다. 건물을 온통 뒤덮은 영어 간판이나 외래어로 된 제품 이름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그렇다. 가령 서예를 예로 들어보면, 한글서예는 구색 갖추기로 한 귀퉁이에 겨우 붙어 있는 형국이다. 한자, 한문을 써야 제대로 된 서예라고 여긴다. 한글 서예의 엄청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물론 그동안 많은 서예가들이 애정을 가지고 한글을 썼고, 개성적인 서체를 개발해, 궁체로만 인식되던 한글 서예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손재형, 김충현, 서희환, 김기승, 이철경 자매 등이 그런 고마운 분들이고, 신영복의 민중체 또는 어깨동무체도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글 서예는 글씨의 법(法)과 도(道)가 제대로 세워져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글을 파고들며 열심히 쓰는 서예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손글씨 또는 캘리그라피가 유행하는 바람에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예를 들자면 소주병에 붙어 있는 ‘처음처럼’이라는 신영복의 붓글씨 덕에 한글 서예가 사람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친근해진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예술적 평가가 어려워졌다. 캘리그라피를 서예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 의견이 분분하다.

뜻을 가진 서예가들께서 앞장서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서체를 개발하고 깊은 예술성을 일궈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글은 글자 수가 적은 소리글자이므로 방대한 뜻글자인 한자에 비해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표현의 가능성은 넓게 열려 있다.

서예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글 패션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이상봉, 한글 자모(子母)를 몸으로 표현한 무용, 한글의 조형미를 현대화시킨 그래픽디자이너 안상수, 한글을 소재로 삼은 미술작품 전시회 등등….

이런 활동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려는 문인들의 노력과 어우러질 때 한층 더 빛을 발할 것이다. 한글날만 요란 법석을 떨지 말고, 일 년 내내 고운 한글의 향기를 아끼고 다듬는 마음이 생활화되어야 할 텐데… 곳곳에 휴대전화, 인터넷, 문자 보내기, 카톡, 에스엔에스 같은 현대문명들이 버티고 있어 꼼짝 못하는 신세니… 세종대왕님 뵙기가 참으로 황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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