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부드럽게 우는 새소리 같았다. 아니 짧고 빠르게 부는 바람소리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들리는지, 무슨 소리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밤중 자다가 깨어 불을 켜면 소리가 사라질까 싶어 누운 그대로 귀만 열고 골목골목을 더듬었다. 이런 소리는 문득 밤중에 들리기도 하고 이른 새벽이나 낮에도 간혹 들려 궁금증을 더했다.

이웃에 가내수공업을 하는 작은 공장이 있다. 주차장으로 쓰던 마당을 몇 해 전부터 꽃밭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철철이 다양한 꽃들을 피워 드나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곳 마당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거릴 때 그 소리가 들린 듯 했다. 휘파람 소리였다. 집 나간 새를 부르거나 꽃망울을 물고 캄캄한 밤을 지나가는 화초들을 응원하는 것일까.

노래 경연대회에서 선두로 달리던 참가자가 어떤 노래의 간주로 휘파람을 불었을 때, 이미 노래에 깊이 빠져들던 관객들은 너도 나도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휘파람소리에 말려들었다. 노랫말이 아프기도 했지만 휘파람 소리는 이미 젖을 대로 젖은 사람들을 극점까지 몰아붙인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 휘파람을 잘 부는 사람이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나직하게 휘파람을 부는 뒷모습은 만화책을 찢고 금방 튀어나온 주인공 같았다. 가끔 버들이 휘늘어진 강둑이나, 동네 큰 나무 아래에 서서 휘파람을 부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어린 우리는 멀찌감치 서서 입술을 오물거리며 따라 불겠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며칠 째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젠 누군가를 부르거나 그리워할 일이 없어진 것일까. 느닷없이 고요를 뚫어대던 휘파람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잊고 있던 내 시각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완성되지 않은 휘파람을 불어본다. 그리움의 뚜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움이 사라진 자리는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고. 너무 적막하지 않느냐고.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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