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일


모두(冒頭)라고도 일컫는 서두의 어의(語意)는 대개 발단, 시작의 개념을 갖는다.
단문(短文)형식의 수필에 있어선 서두가 차지하는 비중이 시, 소설, 희곡등에 비해 훨씬 높다.
서두는 '첫인상' '일기예보' '예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서두라는 도입부가 좋지 않으면 끝까지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서두'는 글의
격(格)과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한 줄의 서두를 끄집에 내기위해 많은 시간에 걸쳐 고심한다. 헝크러진 생각의 실타래에서 첫머리를 찾아냈다면,
마음속에 이미 대강의 구성까지 이뤄졌다고 봐도 좋다. 고심 끝에 서두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셈이다.
단 한 줄의 서두를 얻기위해 피나는 산고(産苦)의 아품을 경험하기도 하고, 우연하게 쉽게 서두를 찾아낼 때도 있다.
수필에 있어서 서두는 '첫머리'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필의 경지랄까, 솜씨를 첫눈에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수필가 한흑구는 『나무』라는 수필의 서두를 찾아내는데 5년, 『보리』라는 서두를 얻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고 술회했다.
『나무』라는 작품의 서두를 끄집어내기 위해 수없이 찢고 다시 지우고 쓰고 하길 5년만에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라는 서두를 건지는데 성공했다. 이 서두는
『나무』의 결구(結句)이기도 하다.
유명작가의 경우도 한 글의 서두를 얻기 위해, 오랜 고뇌의 진통을 겪는다는 것을 안다면, 신인이나 초보자들은 '서두'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수필의 서두가 갖추어야 할 요건등에 대해서 任軒永(문학평론가)씨는 이렇게 제시한다.

1) 이색적인 의경제시나 사람의 흥미를 끌게 할 것
2) 속담, 격언, 일화, 명언을 인용한다.
3) 사실과 사건, 생각등을 거두절미하고 쑥 끄집어 낸다.
4) 장소나 시간, 분위기, 자연, 환경, 인물의 묘사들으로 시작한다.
5) 가정적 설문, 문제점 제시, 대화, 독백, 고전(古典)의 출전을 밝히는 것, 강조하고 싶은 것등을 제시한다.
6) 결론 부분, 강조하고 싶은 것등을 앞세운다.



수필 서두에 대한 유의점

수필의 서두에 있어서 유의점을 든다면 다음 사항을 생각할 수 있다.

1) 소박하고 차분하게, 글의 성격에 맞아야 한다.
2) 진부한 전제나 설명을 하지 않도록 한다.
3) 흥미, 기대, 호기심을 주도록 할 것
4) 함축, 상징성이 있도록 할 것
5) 본론의 내용과 동떨어진 것이 아닐 것
6) 독자들에게 전체 흐름을 혼돈시키지 말 것
7) 본론과 밀접하지 않은 부분을 도입부에 넣어서 처음부터 독자들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 것
8) 서두는 가능한 간결하게 할 것

수필 서두쓰기의 실제

수필의 서두를 어떻게 시작할까?
첫머리 도입의 방법과 실제를 몇가지로 예시해 본다. 작가의 성격, 취향, 개성, 문체에 따라 '서두'의 모습도 달라진다.

1) 주제나 제목의 해석으로 시작
보통 주제나 제목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끄집어 내면서 시작하므로서 주제를 선명하게 하고 흥미를 유발시키게 한다.

*김태길(金泰吉) 『낙엽』
'낙엽이다.' - 서두가 간결하고 산뜻하다. 제목을 재인식 시켜주고 있다.
'그것이 조락(凋落)이요, 죽음인 것이다.' -이는 결미인데 주제를 강조했다.

*이양하 『글』
'글을 쓴지 오래다' - 서두가 차분하고 겸손하게 출발하면서 제목을 뒷받침하고 있다.
' … 만일 내게 애인이 있어 이 글을 재미나게 읽었노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 - 이 부분은 결미인데 주제를 강조했다.

*공덕룡(孔德龍) 『펜과 칼』
'펜은 칼보다 강하다.'

2) 글을 쓰는 동기부터 시작

*김태문 『헤밍웨이가 사는 집』
'지난 여름 미국 출장길에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을 찾아볼 기회를 가졌었다.'

*반숙자 『나의 가계부』
'해마다 여성 잡지의 신년호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모 화장저의 가계부를 부록으로 내어놓고 있다. 십장생(十長生)의 그림이나 화려한 꽃무늬의 겉장을 보노라면, 살림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올해는 꼭 가계부를 써봐야!」하는 결심을 할직도 하다.'

*염정임 『침대에 관한 명상』
"언제인가부터 나는 침대에 관한 글을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3) 묘사에서부터 시작한다.

*姜凡牛 『나는 아직도 49세』
'병자년(丙子年)의 마지막 달력을 떼어버린다.'

*金時憲『빈자리』
'아홉시가 되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손에는 끈달린 검은 가방이 늘어진다.'

*김영배 『5월이 열리는 뜨락에서』
'오랜만에 목발짚은 몸을 엘리베이터에 싣고 내려와 현관 앞 콘크리트 난관에 기대고 섰다. 5개월만에 처음 나가본 바깥세상이다.'

*도창희 『임자없는 나룻배』
'늦가을 삽삽한 강바람에 촐삭대는 나룻배 한 척이 강물에 떠있다. 수양버들 밑둥에 묶여 임자는 보이지 않는다. 부는 바람에 부대끼어 긴 고비의 탄력은 팽창할대
로 팽창해 있다. 금방이라도 글만 끊기면 달아날 듯 바람의 인력에 못이겨 선체만 기뚱거리고 있다.'

4) 설명에서 시작한다.

*김소운 『두잔씩 커피』
'중년부인네 한분이 다방으로 들어와 커피를 마신 뒤에 '한잔 더'라고 두 번째 잔을 청했다.'

*서정범 『잘 먹어야 본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말이 생겼을까. 내가 어원사전을 쓰고 있는데, 그러한 자료를 얻고 확인하기 위해 알타이어권인 터
키, 위글, 가자르. 야크트 등 터키권과 몽골어, 부리야트어 등 몽골권과 만주 퉁구스어권인 오르촌, 에벵키, 에벵 우데헤, 나나이어 등의 시베리아를 현지 답사하면서
어학적인 자료외에 귀중한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철호 『색의 의미』
'색이란 것은 남녀간에 말하는 그런 애정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변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색'이란 두 가지의 형태로 구별할 수 있는데 첫째
는 모양을 나타내는 형색(形色)이며 둘째는 빛을 나타내는 현색(顯色)이다. 이 색이란 것을 불교에서는 형태가 있는 물질을 가리켜 색이라 말하고 있다.

*柳蕙子 『모차르트와 찰스램』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로 자작곡을 연주했다. 성장 후에도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가장 좋아한 악기가 피아노였던 만큼 '두개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세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등 복수 피아노 작품과 '네 손을 위한 소나타'까지 남겼다.'

5) 대화에서 시작한다.

*이상보 『제 얼 지키기』
' "아 유 래디?"
"네."
"세이 예스!"
"예스!"
1999년 3월 4일에 대한민국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른바 초등학교 영어학습 첫날의 광경이다.'

- 초등학교 초기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국어사랑'을 강조하는 글에서 첫장면을 대화체로 시작하면서 효과를 얻고 있다.

*고임순 『빈집』
"어멈아. 밥 먹자꾸나."
"네, 어머님."
"여기 있어요"
"엄마 내 용돈, 차비"
"엄마 내 체육복"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아침이면 내 몸은 열이라도 모자란다.

- 주부가 아침에 겪는 일상의 풍경을 대화체로서 효과 있게 나타내고 있다.

*장인문 『청소이야기』
' "이 동네 사십니까?"
"예 그렇소만,"
"이 동네는 양반 동넵니다."
"?"
"한번 보이소, 담배꽁초나 휴지 조각 하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얼마전 택시 기사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로 주거지를 옮긴 이후 20년 가까이되는 세월 동안 골목 안길을 청소하는 등 노력으로 깨끗한 마을이 되었음을 얘기하는 글인데, 대화체 도입부로 깨끗한 동네의 인상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6) 인용에서 시작한다.

*이 숙 『바람』
'바람이란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세상일을 가르친.'고 장자가 말했다.

*이희수 『외인촌』
'하이얀 모래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의 고독한 그림속으로 파아란 역등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인문계 고등학교 문학 시간은 사실 詩를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시에 관한 문제를 푸는 시간이다. '

*박지연 『바가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다.
*안병욱 『인생은 예술처럼』
'에드워드 카펜더는 '사랑은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7) 독백에서 시작한다.

*최규찬 『순진한 부자의 착각』
'살다 보면서 개인 사정으로 인해서 상대방의 간청을 고사(固辭)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은 나를 믿고 좋은 뜻으로 하는 부탁이지만 내 처지에서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그 간청을 거두도록 설득해야 할 경우에는 이만저만이 곤혹이 아니다.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가 혼례식의 주례이다.

*호병규 『거기 가는 길』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평을 본다. 몹시 피곤한 여정, 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두 손을 허리에 받치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본다. 속절없는 세월, 유수와 같다더니 어느덧 흘러간 60여 평생. 이제와 여기서니 꿈같은 세월이다.

8) 질문(의문)에서 시작한다.

*정숙자 『아버지를 닮은 불상』
'택시 안에서 잠시 후면 만나게 될 그녀를 생각해 본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

*김진수 『기쁨』
'누가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는가.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바다'이기도 하다.'

*문형동 『지선이』
"언니는 우리 아빠 봤어?"
지선이는 지금 몇 살. 내 어린 조카이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여서 몹시 귀엽다.'

*허세욱 『조명의 안팎』
'잔서가 아직도 기를 쓴느데 얼음판 구경이 웬말인가? 그것도 얼음위에 원무가 흐르고 조명이 왁자글 부서지는 아이스쇼 말이다.'

*박종숙 『바다』
'바다, 그 마음의 평화는 어려서부터 오는 것일까? '

*강경애 『인간의 가치』
'인간은 만들어 지는가. 영국의 유전학자는 잡념의 연구 끝에 복제 양(羊) 돌리를 탄생시켰다.'

9) 상징이나 비유에서 시작한다.

*피천득 『순례』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의 표현이다.'

*피천득 『수필』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정목일 『땅끝 마을 가는 길』
'절은 산의 한 가운데, 고요의 한 복판에 있다.'

*김 학 『진짜, 아니되옵니다』
'역사의 강물에는 건져올릴 물고기들이 많다.'

10) 일의 동기나 결과에서 시작한다.

*윤재천 『동행자의 이탈』
'자동차의 정기점검에 들어갔다.'

*정명숙 『나이 값』
'어느 벼룩시장을 지나다가 민화보았다.'

*김장호 『이승과 저승사이』
'아내는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주영훈 『두 이야기』
'책장 정리를 하는데 한 책갈피에서 누렇게 퇴색된 사진 한 장이 나왔다.'

*배혜숙 『검정고무신』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샀다.'

*김정희 『매화 꽃 그늘에서』
'새벽마다 나서는 남편의 등산길을 따라 나섰다. '

*지연희 『아들을 군에 보내며』
'지난해 12월 초 큰 아들이 군에 입대를 했다.'

*오희숙 『낯선 전화요금 고지서』
'때늦은 전화요금 고지서 한통이 날아왔다.'

11) 계절에서 시작한다.

*김병권 『그날의 증언』
'7월이다. 태양의 달이라고 일컬어지는 7월의 산하는 육중한 녹음에 짖눌려 질식할 것 같다.'

*고임순 『해빙기』
'4월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울고 있었다.'

*김구봉 『가을을 간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소백산 연화봉 밑 구인사의 공명당 앞 뜰에 서 있다.'

*이귀복 『목련에게 바치는 연가』
'입춘이 지나 구정을 넘기고 우수를 맞이할 무렵의 2월은 새순이 움트는 대지답게 젊고 싱그럽다. '

*박경룡 『찔레꽃』
'찔레꽃은 지고 흔적도 없다. 연인처럼 왔다가 연인처럼 떠난 것이다. 청순한 5월의 신부여, 나는 너를 그리워하며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가.'

12) 사색에서 시작한다.

*배대균 『침묵이 흐르는 곳에…』
'타인과 접촉하면서 행동이나 말을 한다면 이를 '대화'라 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아닌 자신과 말을 한다면 그것은 '침묵'하는 것이다. 침묵!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위대한 정신적 세계이다. 조용히 침묵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득은 실로 엄청나다. 만약 그로부터 침묵을 앗아간다면 그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만큼 마음의 양식으로 인간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유정희(兪正姬) 『목련나무의 여운』
'비오는 날, 창밖이 내다보이는 대청마루에 서서 뜰을 마주보며 두 눈 속에 담아둔 목련나무 두 그루를 떠올리고 상념에 잠긴다. 가을비에 젖고 있는 그루터기에 떨어진 낙엽들이 뒹굴고 있어 공허감으로 가슴이 가득해진다.'

*김시헌 『나무』
'지금은 겨울이다. 대부분의 나무가 잠속에 들어갔다. 분주하게 일하던 봄 여름을 보내고, 낙엽의 가을을 맞이 하더니 어느덧 하늘을 쳐다보면서 표정없이 서있다. 키
가 큰 미루나무 아래를 거닐어 본다. 싸움의 흔적같은 어수선한 낙엽의 조각이 흩어져 있는데도 모목(母木)은 아랑곳 없다는 듯이 바람부는 겨울속에 알몸을 매놓고 단단한 자세로 잠들어 있다.

*류지연 『인연』
'아, 나의 삶속에 우뢰, 번뇌와도 같은 인연들이 더러 찾아든다면 내 인생에 얼마나 축복이랴…. 나는 '만남'이라는 낱말을 무척 좋아한다. 뜨거운 입김 사이로 쏟아져 흘러나오는 만남이라는 말의 표현은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게 하는 그리움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