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표현과 일상적 표현/ 백남오

 

 

1.

  문학은 일상생활과 늘 함께 어울린다. 문학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특별한 언어예술 행위가 아니다. 우리 삶의 일부분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문학의 내용 그 자체가 우리 삶을 응축해 놓은 것이며 우리는 문학작품에 쓰인 인상적인 구절이나 표현을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한다. 흔히 보는 광고문, 안내장, 선전문구 등에서도 이런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생명을 가꾸듯 시어를 다듬고, 인생의 향기를 음미해 본다.(οο식품)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οοο시계)

 

  문학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 할 수가 있다. 문학은 독자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지니며 독자의 반응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한다. 따라서 독자는 작가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작품의 의미를 자신의 체험 속에서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해야 한다.

 

  특히 문학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함은 단지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그 문학적 현상을 변용하고 자신의 체험과 성찰을 구체적인 언어로 남들도 느낄 수 있도록 재창조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사랑은 작가를 만든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우리는 생활 속의 작가가 될 수가 있다. 문학은 일종의 인간학이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탐색 과정을 거칠 때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 다음 글을 보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스쳐 간 환한 빛, 나는 보았다. 나는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소나기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억세게 퍼부었다. 유리창을 열고 커튼을 젖히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억센 빗줄기를 맞으며 나는 서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비가 그쳤다.

  어둠을 몰아 버린 동녘 하늘에 뻗쳐오르는 새로운 태양, 나는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내게는 빛이 남아있다. 아직도 성한 두 눈과 두 손, 두 발 그리고 병들지 않은 싱싱한 마음, 이것만도 내게는 과분하다는 생각이 자성의 빗발로 나를 씻어 내렸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은 절망이란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들리지 않는 불행보다 볼 수 있는 희망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반숙자, ‘가슴으로 오는 소리’에서

 

  이 글의 화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감 속에서 새롭게 삶의 의미를 되찾고 있다. 바로 이런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이 바탕이 되어 감동적인 글을 창조할 수 있었다.

  같은 깨달음을 표현하여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감동의 깊이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실감 나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여 감동의 깊이를 더할 수가 있을까.

 

 

2.

  그 문학적 표현에 대하여 알아본다. 첫째로 상대방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하여야 한다. 이야기의 상황을 설정하고 배경을 묘사하여 주고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 인물이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하거나 대화로서 보여 주어야 한다. 다음 작품을 보자.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시간이 삼십분 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공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시간으로 삼십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은 이십분 동안은 공을 차라 고했다. 우리 공원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내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이 글은 1970년대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계층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묘사가 독자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구체적인 대상을 끌어들여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즉 느낄 수 있는 사물에 보이는 감각적인 대상에 견주어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가시고기를 생각하면 왜 자꾸만 아빠가 떠오르고 슬픔이 밀려올까요?

 

  세상에는 참 많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고 싶은 아버지는 진정 한 분입니다.

 

  가시고기는 이상한 물고기입니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에 어디론가 달아나 버려요. 알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 듯이요. 그럼 아빠 가시고기가 혼자 남아서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알들을 보호하는 거예요.

알에서 깨어나 무럭무럭 자라난 새끼들은 어느날 엄마처럼 제 갈 길로 떠나버리죠. 그리고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쳐박고 죽어 버린답니다.

  가시고기는 언제나 아빠를 생각나게 만들고, 내 마음속에는 슬픔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아, 가시고기 우리 아빠!

-어느 광고 문안에서

 

  문학적 표현은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사물을 끌어들여 형상화한다. 문학적 형상화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표현하는 비유, 상징 등의 표현 기법에 의해 주로 만들어진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어떤 대상과 연결시킬 때 문학적 창조인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대상의 모습이나 성격과 어울리는 사물을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위 글에서 아버지와 가시고기의 공통점은 자식을 위한 희생이다. 이 둘을 연결시킨 발상이 참신하다고 하겠다.

 

  세 번째로는 구절이나 내용을 반복하거나 열거하여 표현에 리듬과 탄력성을 부여해야 한다. 어떤 문장의 성분 요소나 유사한 내용을 반복하거나 열거하여 늘어놓을 때, 글에 리듬감이 생긴다. 특히 짝짓기, 즉 비교나 대조의 수법으로 서로 대구가 되어 호응을 이루도록 문장을 구성할 때, 리듬감이 형성되어 글에 탄력이 생긴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고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대기 속에서도 솔잎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엎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랜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남향 언덕 위에 누렇던 잔디가 파란 속잎을 날리고, 들판마다 민들레가 웃음을 웃을 때면, 너, 보리는 눈과 밭과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뒤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한흑구, ‘보리’에서

 

  이글의 탄력성은 어떤 연유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구절의 반복과 열거로 글의 리듬과 탄력이 생긴 것이다. 이런 운율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맥박이 뛰며 심장이 고동침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네 번째로 새롭고도 참신한 표현은 신선한 느낌을 주어, 생각이나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하여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세상의 진리는 의외로 단순할 수가 있다. 이 간결한 진실의 말이 때로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미 그 의미와 표현에 익숙해져 있을 때, 그 말은 진부하다. 진부한 소재와 표현은 자극과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미 예상되는 전개는 김빠진 맥주와도 같다. 따라서 보편적인 의미나 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할 때, 개성이 드러난 독특한 소재로 참신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어떤 영화, 어떤 글이 우리에게 긴장감을 조성하여 재미를 창출하는가를 생각해보라. 다음 글을 보자.

 

  오늘 밤은 유난히도 노란 달만이 빛난다. 밤이 깊어 갈수록 어느새 나도 노란색, 달도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드디어 난 노란 계란이 되었다. 달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별들이 지켜주는 안정감으로, 이제 난 부화할 시간을 준비한다.

-어느 학생의 일기

 

  이글은 어느 학생이 밤에 달을 보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적은 글이다. 평범한 내용이지만 진부하지 않고 새롭다. ‘노란 계란이 되어 부화할 시간을 기다린다.’ 이 얼마나 참신한 발상에서 나온 표현인가. 이렇게 새롭고도 참신한 표현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3.

  결국 문학적 표현과 비문학적 표현의 경계는 무엇인가. 문학은 언어로 빚은 예술이다. 따라서 예술적 가치로서의 아름다움, 즉 ‘미의식’이 중요한 덕목이 된다. 문학작품의 아름다움은 근본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수필의 아름다움 역시 수필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산문정신과 문학적 표현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문학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고도 한다. 이는 문학이 독자의 반응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독자는 작품의 의미를 자신의 체험 속에서 총체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하려 한다. 이 때문에 독자의 관심과 반응이야말로 문학작품의 생명력이 되는 것이다. 문학이 생명체와 같다함은 단순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자신의 체험과 성찰을 변용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재창조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문제는 문학적 표현이다. 문학과 일상의 명확한 경계는 무엇인가. 이 원초적이고 1차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에 봉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제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이론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어떤 문학 이론가도 그 경계를 명확하게 선을 긋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난해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 수필과 일상 사이, 그 경계를 어떤 식으로든 논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일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고 할 때 일단은 내용과 형식을 묶어서 보아야 한다. 체험과 깨달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수필의 기본적인 내용에 다양한 형식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이때 형식은 문학적인 표현과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된다.

  문학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감각적이어야 한다. 독자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야기의 상황을 설정하고, 배경을 묘사하고, 그 속에서 활동하는 수필적 자아를 창조하고, 그 자아가 활동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또한 구체적인 대상을 끌어들여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즉, 느낄 수 있는 사물에, 보이는 감각적인 대상에 자신의 사상을 투영시켜야 한다.

 

  그 표현에는 리듬과 탄력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것은 문학적 표현내지 형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장성분 요소나 유사한 내용의 반복과 열거를 통해 리듬이 생긴다. 비교나 대조의 수법으로 서로 대구가 되어 호응을 이루도록 문장을 구성할 때, 리듬감이 형성되고 글에 탄력감이 나타난다. 좋은 산문은 문장에 리듬감이 있어야 함은 오랜 세월 산문을 써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새롭고 참신한 표현은 신선하다. 생각이 강렬할 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다. 간결하지만 진실한 말이 때로는 힘을 발휘한다. 의미 있는 생각이나 정서를 독창적으로 표현한 창조적인 언어도 울림을 줄 것이다. 그 의미와 표현에 익숙해져 있을 때, 그 말은 이미 진부하다. 진부한 소재와 표현은 자극과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런 작품에 독자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문학적인 표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도 보다 감동적이고, 보다 아름다운 표현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가 있다. 일상생활 속의 가치 있는 체험과 성찰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