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맥 / 윤오영 

  다른 예술은 모두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서 전달되지만 문학은 기록된 언어가 의미로 바뀌어져서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달된다. 그래서 문학은 번역이 가능하다. 원문의 언어에서 오는 뉘앙스나 시각적 운율적 정서를 여실히 옮겨 놓지는 못한다 해도, 번역문을 통해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의 줄기를 불러일으키면 그 줄기를 따라, 그 테두리 안에서 상상적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의 줄기가 문맥(文脈)이다. 따라서 글에서는 문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문장에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이니, 대소문단(大小 文段)이니, 조응(照應)이니 하는 것도 이것을 규격화한 형식론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이런 형식적 규격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줄기 일관된 문맥이 없으면 문리가 통하지 아니한다. 논리적인 글은 이로(理路)가 정연하면 되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정서의 면면함이 물줄기와 같아야 한다. 일반문장에서는 논리적 문맥이어야 하고, 수필에서는 정서적 문맥이어야 한다. 한 마디 말은 반드시 그 다음 말을 전제로 써져야 하고, 다음 말은 반드시 그 앞의 말을 받아서 존립해야 한다.

 필요 없는 말이 중간에 끼면 문맥이 막히고, 있어야 할 말이 빠지면 문맥이 끊어지고, 강한 말이 올 자리에 약한 말이 오면 문맥이 시들고, 약한 말이 올 자리에 강한 말이 오면 문맥에 옹이가 생기고, 직서(直敍)할 자리에 우회하면 문맥이 혼미하고, 완곡해야 할 자리에 직서하면 문맥이 강박해지고, 두 줄기의 말이 병립하면 갈라져서 문맥을 이루지 못하고, 문맥의 순서가 바뀌거나 필연성이 결여되면 문장이 긴밀성을 잃거나 전체의 효과를 상실한다.

 한 마디로 해서 문맥이란, 글을 짜들어 가는 위치와 순서에 의해 결정된다. 번역이 비록 불충분해도 명작을 능히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문맥의 덕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재치 있는 뉘앙스나 미사여구(美辭麗句)보다 문장의 골격과 문맥의 흐름이 중요하다. 골격이란 사람의 생긴 바탕이요, 문맥이란 사람의 혈관이니, 사람의 생사는 혈액의 순환에 있는 것이요, 문사(文辭)란 얼굴의 화장에 불과한 것이다. 초심자들은 흔히 얼굴의 화장에 급급하여 골격과 생사의 근간인 혈관에 소홀하기 쉽다. 제일 먼저 문맥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면 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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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한약방  -피천득

 나는 학생시절에 병이 나서 충청도 어느 시골에 가서 몇 달 휴양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유하던 집 할아버지의 권고로 용하다는 한약국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한 제 지어 먹은 일이 있다. 그 의원은 한참 내 맥을 짚어보고서는 전신 쇠약이니까 녹용과 삼을 넣은 보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 약방에는 약재가 없고 약 살 돈도 당장 없다고 하였다. 사실 낡은 약장에는 서랍이 많지 않았고 서랍 하나에 걸려 있는 약저울도 녹이 쓸어 있었다. 약국 천장을 쳐다봐도 먼지 앉은 약봉지가 십여 개쯤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 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 그 이튿날 나는 그 한의와 같이 사-오십 리나 되는 청양이라는 곳에 가서 내 돈으로 나 먹을 약재를 사고, 약국을 해먹으려면 꼭 있어야 된다는 약재를 사도록 돈을 주었다. 약의 효험인지, 여름 시냇가에 날마다 낚시질을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을 잔 덕택인지 나는 몸이 건강해져서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돌려주었던 그 돈은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후 「세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속에서 로미오가 독약을 사는 약방이 나올 때 비상조차 없을 충청도 그 시골 약국을 회상하였다.  양복 한 벌 변변한 것을 못해 입고 사들인 책들을 사변통에 다 잃어버리고 그 후 5년간 애면글면 모은 나의 책은 지금 겨우 삼백 권에 지나지 아니한다. 나는 이 책들을 내가 기른 꽃들을 만져보듯이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듯이 대견스럽게 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구해 놓은 이 책들은 예전 그 한방 의사가 나한테서 돈을 취하여 사온 진피, 후박, 감초, 반하, 행인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황, 웅담, 사향, 영사, 지금정 같은 책자들이 필요할 때면, 나는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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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실제적인 내용은 「양복 한 벌 云云」이하가 된다. 그러나 시골 한약방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출발점이다. 실제적인 내용을 먼저 쓰고 한약국을 뒤에 서술하면 그것은 비유(比喩)가 된다. 그런 비유란 아무런 효과도 없다. 먼저 씀으로써 「흥(興)」이 된다. 흥이란 정서다. 여기서 비로소 전편의 정서가 산다. 우리나라 고가에 「사모곡(思母曲)」이 있다.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리도 없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이 흥이다. 사모곡이 빛나는 점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호미에 낫을 어머니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는 까닭에 그 노래는 잡쳐버린다. 
 

  학생시절의 회상. 병이 나서 촌으로 휴양. 유하게 된 집 할아버지. 그의 권유로 진찰. 의원이 맥을 본다. 전신쇠약. 보약을 먹게 된다. 이래서 이 한약방의 가난한 모습이 나타난다. 약제도 없고 약 살 돈도 없는 약국. (그래서 뒤에 돈을 취해 주게 된다.)약장의 서랍이 많지 않다. 가난한 모습이다. 약저울에 녹이 슬어 있다. 한층 강한 묘사로 가난한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하게 표현했다. 달리 길게 쓰면 문맥이 혼미해지거나 시들어 버린다. 천장의 먼지 앉은 약봉지는 강한 묘사가 아니다. 아랫말과 잇기 위해서 좀 부드럽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단을 바꾸어서 두 문단이 순하게 이어갔다. 「내 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로 문맥의 돌변을 피했다. 청양서 4-리나 되는 촌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비로소 밝혀진다. 돈 없는 약국 주인과 같이 갔으니 자연 약재 살 돈을 취해 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돈을 꾸어 달랬다거나 동정심을 바랬다거나 등등의 사설이 끼면 문맥이 침체된다. 그래서 돈을 주었다고 쓰고 「취해 주었다」고도 하지 아니했다. 다음은 병이 나아 휴양이 끝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낚시질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들던 생활에 스침으로써 한약의 효과나 한의가 용했다던가 하는, 이 글과 상관없는 데로 독자의 눈이 향할 것을 막고, 무드를 한층 곱게 할 수 있었다. 만일 낚시질 다니는 강촌의 풍경을 삽입하면, 풍경의 묘사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문맥은 흩어진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돈을 준 것은 물론 취해 준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짓고 결과를 빠뜨리면 글이 이가 빠지고, 필요 없는 사건은 군더더기가 된다.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이 두점을 넌지시 풀어 버렸다. 더욱이 「지금은」이란 석자를 잊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었으므로 다시 요약해서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며, 문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세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이 이것이다. 비상조차도 없을 충청도 그 시골 약국이란 말로 한층 도타워졌다. 여기서 끝내고 내용적인 본문으로 직결시켰다.

 

 이 책들은 …… 진피, 후박, 감초, 반하, 행인 같은 것들이라는 데서 우리는 그 천장에 걸렸던 약봉지 밑의 글씨를 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문장의 조응에서 오는 효과다. 이런 경우에는 약명을 한자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글 전체의 조화를 위하여 한자로 안 쓴 것 같다. 이 값싼 약들이 우황, 웅담들의 값진 약을 끌어낸다. 값싼 약으로 마무르지 않고, 우황, 웅담, 사향……같은 약이 아쉴 때면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한다는 데까지 와서 끝냄으로써 문맥이 생동한다. 이상 더 쓰면 사족이다. 문맥에 흠을 잡을 데가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작자가 일일이 인식하고 썼을 리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데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면 이 작품이 독자에게 안겨 준 것은 무엇인가. 고요하고 따뜻한 정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 줄기 아늑하고 따뜻한 정서를 얼룩이 안 지게 문맥의 흐름이 끌고 나갔다. 이 글을 좋아하고 아니하는 것은 읽는 이의 기호에 달린 문제다. 그 개성과 소재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문맥을 구김새 없이 살려 나가는 묘리는 같다.

 

 

같은 작가의 글에 「장미」란 글이 있다.
 
장미 -    피천득
  
 잠이 깨면 바라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고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 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이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싼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었다. 나는 그의 화병의 물을 갈아 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 놓았다.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나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하지도 않고 받아 가지고는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화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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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고 향기로운 수필이다. 그의 간결하고 섬세한 솜씨를 알 수 있다. 슬픈 사람에게도 외로운 사람에게도 기쁜 사람에게도 장미를 주어 보는 마음. 그러나 어딘가, 실감이 절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Y, C, K의 각 사건이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의 계속인 까닭이다. 문맥의 긴밀한 연결이 못된다.

 

 만일 K, C, Y로 순서를 바꾸어 꾸미면 장미를 산 기쁨이 주는 이의 행복으로, K의 정이 C의 생각으로 그리고 Y의 슬픔이 기쁨의 단조로 변하여 끝의 서운한 정서와 연결되어 효과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수필의 득은 오직 기구(起句)에 있다. 우리가 이런 글을 쓰자면 꽃장수가 와서 꽃을 샀다거나 꽃집을 지나다가 샀다거나 허두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허두에 별 의미를 담을 수가 없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허두를 단 한 자라도 비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의 <잠이 깨면 바라보려고 장미 일곱송이를 샀다.>는 서두는 그 한 마디 속에도 충분한 이미지를 담은 문학적 표현이다. 희유(稀有)의 가구(佳句)라 할 것이다. 독자가 끝의 <장미 한 송이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는 말의 여운을 느끼는 것은 이 첫귀의 후광이다. 문맥의 중요성과 아울러 기구(起句)의 어려움을 알 것이다.

 

 수필에서의 문맥이란 정서를 실어가는 노선을 말하다. 그것이 아니면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란 창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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