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을 기르는 여섯 단계/강원국

 

   글 쓰다보면 머릿속에 훤하게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글의 흐름과 방향이 잡히면서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는 확신이 든다. 이때부터 글쓰기는 속도를 낸다. 나의 글쓰기는 이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이전까지는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통찰은 거창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사방이 깜깜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주변을 분간하기 시작한다. 낯선 동네에 가면 동서남북이 구분되지 않는 깜깜이 상태다. 그런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모습이 전체적으로 그려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림 퍼즐을 맞출 때에도 전체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파악되는 시점이 있다. 바로 그때가 통찰의 순간이다.

 

   이런 순간은 별안간 찾아온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는 해법이 문득 떠오르고, ‘, 이게 이런 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느낀다. 작가들은 이를 뮤즈, 즉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여신이 찾아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직관은 그럴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그런 직관이 순간적으로 온다. ‘척 보면 압니다.’라는 직관은 유사한 사례를 많이 경험한 결과다. 남다른 안목과 식견으로 앞을 내다보는 혜안도 비슷하다. 직관이나 혜안은 의도적인 노력으로 가질 수 없다.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렇다. 하지만 통찰은 다르다. 여섯 단계의 노력으로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첫째, 자기만의 관심 주제나 분야를 갖는 게 먼저다. 유독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나 주제가 있어야 한다. 통찰은 관심을 갖고 있는 특정 분야나 주제에서 일어난다. 관심사가 없는 사람에게 통찰은 찾아오지 않고, 관심없는 부문에서 통찰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관심 분야는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 쓰는 일이다. 이전엔 그것이 소통이나 조직문화인 적도 있었다.

 

   둘째, 관심 갖는 것에 그쳐선 안된다. 그 분야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것에 관해 많이 알아야 한다. 머릿속을 그것으로 채워야 한다. 씨 뿌리지 않고 꽃은 피지 않는다. 맨땅에 헤딩해봤자 피만 난다. 통찰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해 입력을 해야 한다.

     

   셋째, 공부한 내용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입력했다고 다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드는 방법은 사유와 사색, 비판과 반론이다. 공부한 내용을 연결, 결합, 융합, 추리, 추론, 예상, 예측, 전망해보는 사유와 사색을 거쳐야 한다. 또한 공부한 내용에 관해 반론, 반박, 비판, 이의 제기, 비평해봐야 한다. 칼럼 하나를 읽으면 한 줄이라도 내 생각이 만들어져야 한다. 동영상 강의 30분 들으면 내 의견 한 마디라도 건져야 한다.

     

   넷째, 말해봐야 한다. 실제로 내 것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아니 혼잣말로라도 출력해봐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것이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알아야 하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빠져 있어야 한다. 말함으로써 내가 가진 것을 더 숙성시키고 소통을 통해 발효해야 한다.

  

   다섯째, 풀어야 할 숙제, 응답해야 할 질문이 있어야 한다. 통찰을 필요로 하는 문제나 사건, 사태가 존재해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통찰을 뇌는 일으키지 않는다. 그것이 간절하고 절박할수록 좋다. 비가 잘 오는 상황에서는 비를 오게 하는 방법을 찾을 리 없고, 그에 관한 통찰이 일어날 턱이 없다. 결국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의제나 실행과제를 선정하는 사람이 통찰력을 가질 확률이 높다.

 

   끝으로, 통찰력이 잘 일어나는 환경에 자신을 갖다 놓아야 한다. 나는 책을 읽거나, 카페에서 노닥거리거나, 지하철에서 멍 때리거나, 산책하거나, 반신욕을 하거나, 친구와 대화하거나 동영상 강의를 들을 때 아하!’하는 통찰이 일어난다.

   

   이때 찾아오는 통찰은 여섯가지 모습이다. 조각이 맞춰져 전체 윤곽이 종합적으로 파악되거나, 본질이나 원리, 이치를 깨닫거나, 사태나 사건을 일으킨 구성요소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갖게 되거나, 배경, 맥락, 취지가 이해되거나, 영향과 파장이 예측되거나, 문제의 원인과 이유를 알아 해결책이나 대안을 찾거나.

 

   누구에게나 통찰은 찾아온다. 60억 인류는 저마다의 통찰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얼마나 열심히 벼리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질 뿐이다. 나는 오늘도 글쓰기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해 읽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리고 반갑게도 통찰력에 관한 통찰의 순간을 맞봤다.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