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서의 수필

김 경 실

  오래전 문단 선배에게 대단히 모욕적이 질문을 받았었다
  ‘돈도 안 되는 수필을 왜 쓰느냐?’고.
  당시 나는 분위기 있는 곳에 앉아 맛갈스레 차를 우려 마실 줄은 알았어도 문학의 진맛은 아직 알지 못 할 때였기에 수필을 폄하하는 그런 질문에도 어리둥절하여 올곧은 대답 한마디 하지 못 하였었다.
  그 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라기보다 먼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알기위해 반평생 가슴앓이를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제 문학이란 예술성과 철학성이 하나로 조화되는 미학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터득하였다고나 할까, 문학과 예술은 환상의 결과이고 내 삶을 키워 온 것도 절반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문학은 산소와 같다. 우리의 숨소리이고 ,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삶의 정취다. 수필이 얼마나 진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나 하는 것은 어떻게 자신을 초월하고 독특한 맛을 우려내느냐에 달려 있다.
  금아 선생의 말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면 그것이 창작이 될 수 있을까? 창작이란 작가의 심연에서 우러나 의도되고 형상화된 것일진데 어찌 붓 가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랄 수 있겠는가.
  수필에서의 철학성은 인생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사상의 제시이다. 여기에 예술성이 조화된 미학은 인문학의 기본적인 학문으로 작가 삶의 표현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내겐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한 편의 수필을 순산하기 위해 얼마나 진통을 겪느냐 하는 것은 작가 각자의 몫이겠지만 고통 뒤에 탄생하는 산물이 나를 떠나도 제 몫을 할 수 있게 하는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수필작법이라고 상투적인 틀에 끼어 맞추다보면 곰삭은 주제 의식이 외려 빗나갈 때가 많아 나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고 편하게 문장을 연다.
  이렇게 나의 분신 같은 작품에 얼굴을 만들고, 목소리를 집어넣고, 숨소리를 불어넣어 생명력을 주기 위해 매일, 매일 붓방아를 찧어야 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다.
둘째는 발로 쓰는 수필이다.
  여기 저기 강의하는 곳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 시간에 써야 할 소재를 찾아가서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메모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셋째는 소재가 선택되면 다소 지출이 된다 해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행동에 옮긴다. 근래 관심을 쏟는 소재는 화려 장대한 뮤지컬이다. 티켓이 부담되는 수입 뮤지컬이라 해도 극중에서 얻어지는 감동과 공감대와 충만감이 글로 승화되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넷째는 생활주변을 돌아보면 특이한 소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 홀로 떠나는 환상여행이다. 묵은 의상과, 근래 유행하는 의상과 악세사리, 모자, 숄, 핸드백을 꺼내놓고 나만의 뷰티패션쇼를 연다. 이런 디테일한 나만의 패션쇼를 통해 중년에 자신감을 얻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독창성을 살리는데 포기하지 않는다.
  다섯째 모아진 소재는 오래 묵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둘러 집필하는 행위는 더욱 금물이다. 책상에 늘 준비되어 있는 이면지에 육필로 원고를 쓴다. 이면지 대여섯 장 뜯어낸 뒤에라야 워드작업에 들어간다.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수필다운 수필을 접하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하물며 마음에 드는 내 글 한 편 써 놓고 보면 마음이 풍요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디 돈 수백만 원 벌은 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돈 안 되는 수필이라 폄하했던 시니컬한 선배의 모습이 측은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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