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봄 문학 강의록 전문

 

수필과 시방(十方)의 상상력

 

                                                                       정순진 교수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조지 오웰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 쓴다.

 

정순진 <나에게 글쓰기는...>(참고자료 별첨)

말 걸기

-길 찾기

-가슴 열기

 

* 어떤 행위를 할 때 반드시 던져야 하는 근원적인 질문 두 가지 ; Why, How

 

2. 시방은 무엇인가?

 

불교용어 ; 시방삼세(十方三世)

시방 ; 동서남북 사방과 동남, 동북, 서남, 서북 사우, 그리고 상하

삼세 : 과거, 현재, 미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온 우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든 곳 그리고 모든 때

 

제가 제안하는 시방 ; 전후좌우, 상하내외, 역전

 

3. 상상력은 무엇인가?

 

수필-체험의 기록이라는 생각에서 상상력에 소홀 그러나 사실의 기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상상은 필수

 

상상의 토대는 관찰 ;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心不在焉 聽而不聞 視而不見]”는 대학의 구절 / 의 차이(2차원;3차원, 육안;육안+심안)

 

한자 볼 관(), 살필 찰()

 

-릴케의 일화 ; 로댕을 찾아가 무급 비서를 자처하며 대상의 본질을 관찰하는 법을 배움

-모파상의 일화 ; 스승 플로베르가 집 앞에 지나가는 마차를 관찰하고 그걸 기록하라는 스승 플로베르의 분부에 이틀만에 단조롭고 따분하고 쓸모가 없다고 응수하자 관찰이야말로 훌륭한 글쓰기의 연습인데 어째서 쓸모가 없다고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게나. 갠 날에는 마차가 어떻게 가며 비 오는 날에는 어떤 모습인가? 또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어떠한가? 말몰이꾼의 표정도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또한 뙤약볕 아래서는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면 결코 단조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될걸세.”

-왕희지의 일화 ; 글쓰는 비법을 묻는 사람에게 한 달 동안 뜰에 가득한 꽃나무의 이파리와 꽃술을 모두 세게 하고, 상에 오른 밥과 찬의 맛을 음미하게 했다.

 

상상 ; 서로 다른 것을 통합으로 이끄는 힘. 부분을 통해 전체를 상상하고 전체를 보고 부분을 상상하고, 구체적인 것을 보고 추상적인 것을 상상해내고, 추상적인 관념을 보고 구체적 디테일을 상상하기, 무질서를 질서로, 무형을 형상으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아야 할 것, 보아서는 안 되는 것까지 보려면 내면적, 심미적, 상상적 안목이 필요 관찰에 통찰과 성찰이 융합되어야 비로소 문학.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유영만, <상상하여 창조하라> 참조)

 

 

상식을 깨라 유혹하라

 

1. 거꾸로 보라                    1. 늘여라

2. 옆에서 보라                    2. 줄여라

3. 위에서 보라                        3. 하나로 합쳐라

4. 밑에서 보라                    4. 두 개로 나누어라

5. 안에서 보라                    5. 색깔을 칠하라

6. 밖에서 보라                        6. 하얗게 만들어라

7. 가까이 보라                        7. 까맣게 만들어라

8. 멀리 보라                            8. 투명하게 하라

9. 좁혀서 보라                    9. 시각에 호소하라

10. 넓혀서 보라                  10. 청각에 호소하라

11. 빨리 보라                      11. 후각에 호소하라

12. 느리게 보라                       12. 미각에 호소하라

13. 입장을 바꾸어 보라         13. 촉각에 호소하라

14. 눈높이를 낮추어라           14. 미워하라

15. 눈높이를 높여라              15. 사랑하라

 

이걸 한 마디로 요약해 시방의 상상력이라 이름 붙이다.

*별첨 자료 ; 정순진의 <나에게 글쓰기는...>, 함민복의 <사과를 먹으며>

 

 

나에게 글쓰기는...

 

나에게 글쓰기는 말 걸기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는데 당신은 어떠신지 묻는 일이다. 나는 글쓰기 훈련을 편지 쓰기로 했다. 물론 그때는 그게 글쓰기 훈련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연인에게 아침 하늘이 어땠는지, 길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느라 끊임없이 편지를 써댔다. 일기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쓰는 글이지만 편지는 고정된 독자가 있는 글이다. 하물며 나는 그 독자의 마음을 사고 싶어하는 상태이다. 그러니 하루에 두세 통을 쓴다 해도 마음을 담아 정성껏 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가족을 이룬 다음 가족들에게 말을 거느라 글을 썼다. 그 전까지 내가 쓰는 글은 논문이나 평론이라 문학적 사안에 대한 내 주장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딸과 아들은 자라는데 나는 점점 바빠져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소통을 위해 식구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쓰고 서로 나누기 위해 가족신문을 만들었고 226개월 동안 100호를 만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다사다난한 일은 핏덩이를 낳아 한 사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길러내는 일이다. 그러자매 그 사이 어려운 일도 기쁜 일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서로의 글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한 덕분에 무수한 파도를 넘어 아이들은 자라났고, 지금 모두가 이 자리에 와 있다.

연인과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니 글쓰기는 내가 아는 사람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거는 일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말이 바로 그 자리에서 듣고 대답하는 형식이라면 글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이라 평생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 일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안 되지만 내가 쓴 글은 글을 읽기만 한다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말을 건다. 실제 만나지 못했어도 글만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고 닮고자 노력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누군가, 언젠가 내 글을 펼쳐들 사람에게 말을 거느라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는 길 찾기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내력이 합해져 글이 되고 그건 결국 내가 살아온 길이다. 무엇을 바라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왔는가? 그걸 기록한 것이 글이기 때문이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 써가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게 아니라 오솔길, 뒤안길을 걷고 걸어, 사람이 붐비는 번화한 길 대신 오가는 사람이 드물고 간혹 이게 길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수풀과 잡목 우거진 곳을 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글 덕분이다. 길이 길로 이어지듯 글은 글로 이어지며 그 글은 마음과 마음,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통로가 되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걸어가게 해준다.

나에게 글쓰기는 가슴을 여는 일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머리 쓸 일만 많아지고 머리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들면서 가슴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생활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데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저 좀 보듬어 달라고 여기저기에서 소리를 냈다. 왜 이렇게 감정은 예민해서 대충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가. 이대로 두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살자면 가슴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아 주저앉아 글을 썼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글을 쓰느라 돌아보고, 둘러보고, 내다보자 삶의 속도가 늦춰졌다. 산산이 부서진 마음이 그대로 흩어지는 대신 다른 존재를 향해 열렸다. 삶을 풍부하게 사는 일은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감정을 존재의 에너지로 삼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나보다 지금 조금 더 넉넉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다 글을 쓸 수 있었던 덕분이다.

미리암 엘크스는 리투아니아에 있던 코브노 게토에서 존경받는 연장자였다. 그녀는 홀로코스트에서 일어난 비인간적 행위들과 남편 엘크하난 엘크스 박사의 죽음을 이겨낸 후, 그녀를 지탱해준 두 가지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하나는 빵 조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러진 빗이었어요. 어머니는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빵을 남겨두곤 했지요. 그리고 당신이 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밤이든 낮이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빗으로 머리를 빗었답니다.” 우리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끊임없는 몸짓들 가운데서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연민과 공감이다. 우리는 모두 한계가 있는 존재이지만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 언제 어떤 상황에 있든 당신이 느끼는 것이 옳다고 공감하고, 당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슴을 연다면, 당신과 내가 연결되고, 세상 만물과 연결되어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당신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내가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몸짓은 글쓰기이다. 생존을 위한 몸짓, 일상적인 몸짓을 사람의 무늬로 바꾸어 해석하면서 상처와 고통에서 눈 들어 그 너머를 응시하고, 떨어지는 수천, 수만의 이파리가 뿌리에게 돌아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음미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말 걸기이고, 길 찾기이고, 가슴 열기이다. 말과 길과 가슴이 하나로 모아져 당신과 연민과 공감을 나누고 삶의 무늬를, 그 무늬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위하여.(*)

*마크 네포,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박윤정 옮김, 흐름출판, 2018, 427-428.

 

 

 

 

 

사과를 먹으며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 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 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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