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10 수필미학 –문제작가 이은희-2020. 

 

인간존재론적 사유와 해석 그만의 심안과 혜안

- 이은희의 수필들을 중심으로 -

 

최원현

 

1. 들어가며-수필가 이은희

 

참 답답한 날들이다. 2020년대가 열리면서 얼마나 큰 기대와 소망을 펼쳤던가. 한데 첫 한 달도 다 못 보내고 그런 희망과 기대가 무너져버렸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침략자가 순식간에 온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어 버렸다. 겪어보지 못 했던 사태 앞에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움츠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쉬 지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희망의 해였던 2020년도 단 한 장의 달력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후련히 마음이 터지는 숨을 내쉴 수도 없다.

이런 때 수필가 이은희의 작품집들을 두루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이미 지면을 통해 만났던 작품들이고 또 책으로 엮은 후 보내와 한 번 더 보았던 작품들인데 모두 꺼내놓고 다시 읽자 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면서 그의 작품 속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면서 그의 문학적 열정과 사유 깊은 작품들에서 나도 몰래 큰 행복감에 젖는다.

이은희는 천상 수필가다. 수필가가 아니 되었으면 어쩔 번했는가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물론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능력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은희는 천상 수필가이고 수필가여야만 한다.

수필은 그야말로 진솔한 삶의 이야기다. 그만큼 그런 글을 쓰는 작가의 삶도 진솔해야 한다. 진솔한 삶? 삶이 어찌해야 진실하고 솔직한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삶에 진실하다는 것은 지극한 겸손이요 낮아짐의 삶이다. 낮다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도 되지만 대상에 보다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는 말이다. 주어진 일에조차도 그럴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도 낮아짐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삶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삶의 경지? 하지만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이은희의 수필 속에 나타난 삶 그리고 삶을 향한 그의 자세는 몇 겹의 삶을 되돌아온 자처럼 숭고한 울림이다. 그만큼 삶을 고귀하게 정성스럽게 받들며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이은희는 1967년 충북 청주에서 1남6여 중 맏이로 태어나 1991년 결혼 1남1여를 둔 엄마이면서 ㈜대원의 전무이사인 커리어 우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도 전에 직장인이 된 후 남다른 삶의 열정과 투지로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여 2001년에 충북대학교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까지 취득했지만 넘쳐나는 문학에 대한 열정 또한 감당할 수 없어 2009년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며 문예지도사 자격증까지 획득한다.

그는 2004년 수필 <검댕이>로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의 전체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수필계의 스타로 등장한다.

수상 작품집《검댕이》에 이어 2005년 4월 같은 제목으로 첫 수필집《검댕이》(수필과비평사)를 출간함으로 한 번 더 ‘검댕이’ 바람을 일으킨 그는 2007년 4월엔 충북개발공사의 문예창작지원금을 받아 두 번째 수필집《망새》(수필과비평)를 출간하고 그 책으로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런가하면 2008년 계간《수필세계》가을호(통권제18호)에 ‘우리시대의 수필작가’로 집중조명 되며, 2009년에는 삽화를 곁들인 수필집《버선코》(수필과비평)를 출간하여 다음해인 2010년에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을 수상한다. 그의 문학적 질주는 계속되어 2011년 8월엔 충청북도문화예술기금을 받아 사진이 있는 수필집《생각이 돌다》(수필과비평)를 출간하고 헤르만헷세문학상대상(2011), 신곡문학상본상(2012), 충북여성문학상(2013), 민들레수필문학상본상(2013) 등을 수상하면서 수필가로서의 진가를 높이며 입지를 다진다. 2014년엔 포토에세이집《결》(수필과비평)과 선집《전설의 벽》(수필미학사)을, 2017년엔《결을 품다》·《문화인문학》(선우미디어)을 출간하는데《결을 품다》로는 한국문인협회의 제5회 박종화문학상(2019)을 수상케 되며, 그 전 2018년에는 제14회 구름카페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기념선집《춤추는 처마》(문학관)도 출간한다.

이와 같이 이은희는 숨 가쁠 정도로 삶을 살면서도 문학적 열정을 다 하는데 그것이 가정주부요, 큰 회사의 임원이면서 이를 감당하고 있다는 데서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런 그에게 수필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그가 부둥켜안고 함께 살겠다고 하는 수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2.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하찮은 것을 귀함으로

 

오늘의 이은희가 있게 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작인 <검댕이>가 아닐 수 없다. ‘검댕이’는 이은희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그의 대표작으로까지 회자되는 <검댕이>가 당선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고(故) 김시헌 선생과 김우종 교수는 심사평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이은희의 <검댕이>는 한국의 수필문학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입증할 만한 수작이었다. 문장력뿐만 아니라 수필이 갖취야 할 예술로서의 문학적 기법에서 특히 우수성을 나타냈다. 작품의 소재는 곤충 한 마리 사슴벌레의 관찰기에 속한다. 그것을 구입하고 기르다가 잃어버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재미보다도 그 벌레를 통해서 작가 자신의 인생을 깊이 있게 짚어보고 보다 값진 삶의 길을 발견한 것이 귀중한 성과다. 사슴벌레가 자유를 찾기 위해 철망 상자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성공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보다 더 귀중한 삶의 길을 찾았다는 얘기는 큰 암시를 준다. 즉 사슴벌레는 나라는 인생의 상징적인 소재로 쓰임으로써 상상을 통한 비유법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수필의 예술성을 확보한 것이다.’ 라며 수필문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 작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작품이 태어나기까지가 궁금해진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글재주가 있어서였을까. 결코 아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참으로 힘들고 멀기만 한 문학의 길’이라 했다. 스스로 ‘가슴 속에 허망한 꿈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고까지 했다. 그만큼 힘든 문학에의 여정이었고 허망한 꿈으로까지 생각했을 만큼 높게만 쳐다보이던 문학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힘들고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던 문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숙명 같은 절대적인 힘이 작용했었다. 바로 ‘어린 가슴에 회한과 그리움을 남기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신 분’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가 운명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던 그녀는 그 지독한 그리움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살아있음 곧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절절히 가슴으로 느끼면서 다시는 가져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애태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였으니 글쓰기는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출이랄 수 있다. 그래선지 그의 모든 글쓰기엔 알게 모르게 어머니가 담겨있거나 그걸 시발로 하거나 채취로라도 같이 하고 있다.

 

‘검댕이’는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들여온 1만5천 원짜리 사슴벌레다. 웬만한 애완곤충은 다 거쳐 갔을 만큼 아이의 곤충 사랑은 컸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다른 가족에게 뒤처리가 맡겨지는데 사슴벌레 또한 그랬다. 그런 사슴벌레가 간이로 만들어준 집에서 살던 중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을 도와준(?) 작가의 두 마음은 작품 속에서 묘하게 여운을 남긴다. 이은희는 사슴벌레의 삶을 그냥 보지 않았다. 아니 사슴벌레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자신의 삶을 보았다.

 

모든 부분을 고속질주로 이루어낸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에 걸린 듯 가슴 아파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건만 이유 없이 허전하며, 신열을 앓듯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물질만능 위주의 사회에 물든 내 모습, 순수감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문득, 내 순수영혼을 잃고 욕망만 높아진 삶이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화려한 불빛을 쫓아다니는 불나비 같았다.

노랗게 단풍이 든 느티나무 아래에서 까르르 웃던 열아홉 소녀의 그림자가 그립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던 나는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 사유의 창을 열어 묻고 되묻는다.

그 동안 나는 내내 주위의 환경을 탓하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에겐 언제나 벗어날 수 있는 열려진 문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현실에 안주해버린 날 조롱하는 듯 했다. 나는 검댕이 보다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으며 실체 없는 고민을 늘어놓던 나의 몸부림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검댕이> 중

 

늘 있던 일처럼 이번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이고 그까짓 곤충 한 마리가 탈출을 기도하건 그게 성공을 하던 모른 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그 사슴벌레가 바로 나 같다는 생각과 함께 생명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거기다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일일 수 있는 것도 눈과 마음과 생각이 따라가곤 하는 그였기에 그 또한 특별함으로 고귀함으로 안아 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사슴벌레의 용기에 비해 자신은 얼마나 비겁한 존재인가 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회의와 반성을 의미화 내지 형상화로 내 삶과 연결해 낸다.

어머니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있는 존재다. 어머니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서 떠나버렸을 때 세상은 곧 암흑이고 절망이 된다. 이은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고 했다. 생전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거라던 말씀이 떠오르면서 겉으로는 강한 척, 독한 척,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우처럼 연기도 하면서 타인 앞에서 약하고 여린 가슴을 감추어야 했던 자신을 생각했다. 그러나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자신을 철저히 감추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숨 가쁜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석을 지키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삶의 역정을 되짚어 보았다고 했다.

사실 그에겐 언제라도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열린 문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안주는 그 문으로 나갈 수 없게 했다. 그게 어디 이은희 만이랴. 현대를 사는 우리 대개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하찮아 보이는 사슴벌레는 그렇지 않았다. 그걸 감히 실행했던 것이다. 삶이란 지극히 평범한 것일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먹고 일하고 조금씩 나아져 가는 그런 일상을 살려한다. 그러나 이은희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한 마리 새 같은 자신을 보았고 그래서 자유를 향한 날갯짓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면서 열려있는 문보다 파랑새처럼 먼 데서 문을 찾으려고만 고뇌했다. 그러다가 온몸을 던져 철망을 탈출하려 상처투성이가 된 가련한 사슴벌레를 보게 되었고 거기서 진정한 자아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 검댕이는 굳이 왜 그곳을 탈출하려 했을까. 검댕이를 보면서 그는 욕망과 순수와의 대립과 갈등의 세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검댕이가 찾아 나선 그 세계야말로 진정으로 자연과 동화된 생활 속의 자신을 만나는 곳이 아녔을까. 그렇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체험을 통한다면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진실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거듭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마음은 진실한 것을 보기 위한 눈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한다. 여기서 간격의 필요성도 본다. <멀리보기>는 바로 그런 마음 씀이다. 그 대상을 온전히 보고 알고자 한다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간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른 잔디도, 천년 묵은 은행나무도, 무량수전 처마의 선도, 어찌 그것 만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람과의 관계도 거리만이 아니라 삶의 속도에서 멀리보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이은희는 지극히 자연하고 평범하고 하찮은 것들 속에서 소중한 진리를 찾아낸다. 그런 그의 마음은 <날것에 대한 열망>에서도 나타난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무소속의 시간에 머물 필요가 있단다. 날것,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 야성의 것, 거친 것, 왜일까. 세상 속에 서있는 나의 겉모습은 드러나 보이지 않는 내 안의 불안을 보여주진 않지만 실은 늘 당도하지 않은 것들에 불안해하는 초조한 눈빛이라는 것이다. 치장한 나에게서 참 나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은희는 그런 숨겨진 자신조차도 볼 줄 안다. 아니 그런 자신을 발견한다. 평범한 나를 특별하게 봐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나를 평범하게 보는 눈도 필요하다.

그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사진은 풍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그의 마음을 찍는 것이다. 그 순간은 그의 마음에 머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보는 풍경이란 뭔가. 그 또한 욕심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틈새로 들어온 태양을 내 위치에서 노을을 담는다는 건 나만의 욕심이다. 주위 환경이 받쳐주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감상하는 것으로 나의 욕망을 접’<도시의 노을>는다. 중요한 것은 그게 욕심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걸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의 특별함, 그만의 소중한 것이 된다. 그가 내려놓은 것이 오히려 그렇게 하니 특별하고 소중한 것을 아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그러고 보면 이은희 삶에서 이런 내려놓음이 참 많다. 내려놓음은 낮아짐인데 그 낮아짐과 내려놓음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하지 않았나싶다. 그는 ‘소나무 곁을 지나며 잠시 나도 한 그루의 소나무가 되고’<차이>, <토우>에선 생각 없이 기계처럼 살아온 날, 물욕과 명예만을 위해 질주하는 현대인 나를 보는가 하면 <틈>에선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살 볕뉘처럼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처럼 그의 삶 그리고 그가 보고 느끼는 것, 어쩌면 사소하고 평범하달 수 있는 것들이 이은희를 만들고 자라게 하고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작은 것, 하찮은 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이야 말로 이은희 수필 쓰기에서 어머니와 함께 글을 풀어내는 힘인 것이다.

 

3. 한국적인 것들의 수필에 대한 사명감

 

이은희의 수필에선 과거가 현재로 와 머문다. 시공간을 초월한다. 그 발단은 앞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낮게 보기이다. 아니 눈 맞춰 보기다. 눈 맞춤으로 그들과 대화한다. 아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다. 그렇고 보면 이은희의 글쓰기 첫 단계는 눈 맞추기이고 두 번째는 그들 말을 듣는 것이고 세 번째에야 내가 묻거나 생각한 것을 조합하는 일이다.

그는 모든 것에는 그들만이 지닌 고유한 표정과 그곳에 있어야 할 존재의 독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무심하게 스치던 작은 사물과 무엇보다 오래된 것들과의 대화는 스스로를 많이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그 출발점에 어머니가 있는데 어머니는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그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계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망새’도 사랑의 수호신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를 닮았다고 본다.

그렇게 삶의 노정에서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길 위에서 무심코 스친 물상들, 그리고 문명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볼품없다고 소외시켰던 낡은 것, 오래된 것들에게까지 애정을 갖고 보면서 그들을 위한 연가를 부른다.

뿐 아니라 세월의 더께가 앉은 것에도 마음을 준다. 그래서 오래된 풍경을 좋아하고 풍화로 부서진 낡고 불투명한 빛깔로 남아있는 옛 물건과 물상에 정이 간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불국사 극락전 돌계단 측면에 그려진 버선코에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재해석하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은 그의 삶의 몸부림에서 기인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자기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옛것, 사라져 가는 것들일까. 아니다. 그가 그토록 애를 태운 것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옛’이 되어가면서 옅어지고 얕아지고 얇아지고 희미해져 가는 안타까움이다. 영원히 그대로일 수 없는 것, 소멸 되어 가는 것,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없어져버릴 수도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머니를 잃어본 그의 가슴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테마 포토에세이집인《결을 품다》(2017)에선 자신을 지구여행자라 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결이라고 본다. 결은 나이테일 수도 있지만 삶의 흔적 곧 상처다. 바람의 상처, 햇빛의 상처요, 시간의 상처다. 꽃결, 사색의 결, 전통의 결, 삶의 결, 그리고 바람(소망)의 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은 결이라고 보는 것도 결은 옛것이고 전통이고 삶의 흔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그런 ‘보이지 않는 걸 가르쳐준 당사자가 바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를 흔들고, 강물에 물결을 일으키고, 갈대의 머리털을 헝클어뜨린 바람’<바람> 같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식은 텃밭에 심은 배추가 저절로 배춧속 포기를 늘리고 김장도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게 어디 있던가.’<몸으로 쓴 시> 어머니가 몸으로 쓴 시를 자식들에게 보여주었듯 세월은 시간은 어제는 우리에게 오늘이란 거울을 통해 수많은 얘기를 몸의 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은희의 수필을 읽다보면 때로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의 생각이 시퍼렇게 날선 칼을 보는 것 같아서다. 생각은 누구에게나 자유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결과 이전에는 오리무중이던 것이 결과로 보여지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거나 손뼉을 치며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결국 신선하고 경쾌하고 참신한 생각을 내놓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지만 하늘과 땅의 차이일 수도 있다.

수필 <로꾸거 로꾸거>를 보면서 예리한 통찰력과 그만의 낯설게 보기를 실감한다. ‘로꾸거’는 ‘거꾸로’를 거꾸로 말하기다. 그녀는 올해의 사자성어처럼 마음에 새기는 네 개의 글자가 있는데 곰(熊) 문(門) 운(運) 공(空)이란다. 왜일까. ‘곰’을 거꾸로 보면 ‘문’이 되고 ‘운’을 거꾸로 보면 ‘공’이 된다. 그녀는 한자 뜻과 한글을 병용하며 의미를 해석한다. 곰(熊)은 웅녀로 미련스러울 만큼 고난을 참아내서 인간이 된다는 설화에 기인하여 인간이 되는 문(門)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운(運)은 행운이지만 거꾸로 하면 빈 공(空)이 된다는 것이다. 요행·운수·기회 같은 것도 결국 인생은 공(空)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해석은 그만의 독특한 발상적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말한다. ‘간혹 난 이렇게 세상 보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아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내공을 다진다’고. 그래서 불행하다고 여기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랑 ‘로꾸거’를 부르며 새 꿈을 꾸자고 한다.

그런가 하면 <생각이 돌다>도 그만의 새로운 시도다. 대청호 미술관과 상당산성 산길에서 흰색 흰무늬 화병과 소파와 위트 넘치는 장승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통해 수필을 극화 시킨다. 1막은 미술 더하기의 발상으로, 2막은 산길에서 만난 장승들과의 대화로 생각 돌기를 한다. 대상을 대화의 주체로 끌어들여 나대신 그들이 말하게 하는 또 하나의 실험은 그가 문학의 ‘낯설게 하기’가 어떤 것인가를 다각도로 시도해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의미로 보이게 하느냐에 더 관심을 갖는 그만의 글쓰기는 그래서 아름다운 생경함으로 독자를 더 긴장 시키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은희의 수필이 한국적인 것, 한국적 정서를 찾아내고 그것을 문학화 하여 남기려 하는 노력은 애절할 만큼 진중하다.

 

4. 이은희 수필의 생명력(힘)

 

이은희 수필은 <검댕이>를 출발로 끊임없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이은희 수필이 독자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고 평자들로부터도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이은희 수필의 힘 곧 그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째는 오래 되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착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은희는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좋은 작품을 발표했고 또 수필집도 많이 출간했다. 그 중에서도 등단 10년 즈음에 낸 선집《전설의 벽》은 이은희 수필을 알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머리말에 그의 수필관이 들어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세월의 더께에 낡은 빛이 드러난 예스러운 멋을 즐긴다.’ 그 이유는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새것도 옛것이 되고 마는 법, 모든 만물은 돌고 돌아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 역사와 시대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한 연결고리는 내 삶과 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의 글들은 ‘오래된 것을 만나고 돌아와 점점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 가슴으로 담은 글’로 ‘시대의 격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장인의 흔적을 보’는 것이며, ‘그것을 빚은 옛사람의 정신과 숨결’을 알고 느끼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오래된 것은 왜 그토록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는 큰 것이 아닌 작은 것들에서 큰 것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곧 ‘문화재를 고품격으로 끌어올린 소소한 물상들을 톺아봄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았고 그것들이 오늘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를 보고자 한다.

하기에 그런 대상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행복해한다. 특히 자신의 감각과 체험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만나 탄생시키는 미래의 새로운 예술이라는 데서 자신의 존재감을 맛보려 한다. 그렇기에 아예 사라져 없어져 버린 것들에서도 상상을 통해 화려하고 번성했던 그 시대를 유추하면서 보이지 않는 선인들의 정신과 숨결과 손길을 확인한다. 그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옛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되는 문사(文士), 등대처럼 한 줄기 빛이 되면서 세파에도 꺾이지 않는 문사가 되고자 함이란다.

 

둘째는 순수 한국미, 토속적 전통을 찾아내고 기리려는 마음이다.

이은희는 순수 한국미, 토속적 전통을 찾아내고 기리려는 마음 가득 글쓰기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더 진실하게 더 가깝게 나아가고 다가갈 수 있는가를 고심하다 글에 사진을 더해 본다. 이는 물상에 대한 정확하고 세밀한 다가가기를 위해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다 분석하고 그들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들으려 눈으로도 듣고 귀로도 보는 다각적 하나 되기의 시도다.

 

‘그리운 것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쉬이 잠들지 못합니다. 분주한 틈새로 파고든 물상은 아니 생각들은 나의 숨통을 틉니다. 참 아름다움은 보는 것만이 아닌 느끼는 진리의 갈피임을 알게 하지요. 이런 내 모습은 나와 인연이 된 물상과 소통을 위한 몸부림이며 삶의 증거일 것입니다. 검댕이, 망새, 버선코에 이어 사진이 있는 수필집 <생각이 돌다>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의 그릇에 담아 여러 날 삭힌 작품들입니다.’라며 사진이 있는 수필집《생각이 돌다》머리말에서도 말했듯 숨겨진 미·전통·냄새·마음까지 찾아내는 끈질긴 인내력을 투자한다. 그런 그의 노력의 결실들이 작품이 된다.

 

셋째는 삶의 실천으로서 몸의 시(詩)다.

이은희는 집에도 풍경을 단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풍경소리는 단절된 벽을 통과해 닫힌 마음을 여는 소통의 도구’로서 ‘내 마음에 풍경을 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마음의 경종이다.<물고기, 날다>그런가 하면 큰 돌, 돌멩이, 자갈, 자잘한 돌들로 켜켜이 몸을 부딪쳐 의지하는 난쟁이 탑들에서 각양각색 사람들이 올린 수많은 염원들을 본다. 거기서 신기(神氣)까지 느끼며 전율한다. 그러면서 내 가족의 안녕만을 위해 기도하던 자신을 발견하며 부끄러워한다.<난쟁이 탑> 그것만이 아니다. 무주 설촌봉에서 만난 주목 밑동과 쓰러져 죽은 주목들에서 받은 충격, 사오십 대 돌연사를 보면서 느꼈던 섬뜩함을 여기서 본다. 내 모습인 것 같아 불안해한다. 왜 죽었을까. 너무 곱게(?)자라서일까. 그러나 ‘주위에 나무처럼 치열하게 몸 시(詩)를 쓰며 사는 이들이 많다’며 그걸 몰라줄 뿐이란다. 그리고 화려하고 아름답기보다 앞품이 넉넉한 나무를 닮은 삶의 몸 시를 쓰고 싶단다.<몸 시>이은희는 이처럼 삶 자체가 문학이 되고 문학을 통해 삶을 더 반듯하게 가져가려 애쓴다. 곧 그에게 문학은 삶의 실천으로서의 몸 시인 셈이다. 그래서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그의 수필들이 스며드는 것이다.

 

넷째 그의 수필엔 생활에 밀착되고 융화되어 발산되는 에너지가 있다.

포토에세이집《결》은 대상과 소통하는데 안내자가 될 것을 자청한다. 그들과 교감으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겠다는 것이다.

‘내 안에는 보물창고가 있습니다. 삶의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표정이 숨겨져 있듯 사람마다 갈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삶은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쓰는 수필이지만 실제 생활은 너무 힘들고 거칠고 가파르다. 그가 맡은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오름이 작다고 얕보았던가. 맥없이 걷다가 덩굴줄기에 걸려 넘어진다. 바로 일어설 수가 없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억새밭에 누우니 편안하다.’<오름이>는 그, 그에게 편안함은 무언가. 숨 가쁜 그의 ‘삶-생활’에서 오죽하면 넘어져 누워있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겠는가.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 그이기에 ‘인간도 나무처럼 그 사람만의 마음의 결이 있으리라. 그가 살아온 행적에 따라 그의 결은 다르리라 본다. 결은 그의 겉모습만 보고 ‘잘났다. 못났다’고 가늠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내로라하는 지성인은 누가 봐도 알잖은가. 무엇보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니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리라.‘ <결>며, 결국 내 삶의 결도 그리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게 또 살아가는 힘일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이은희는 모든 되어지는 것들이 하나같이 의미가 있기에 소중하고 그런 것들이 깨달음으로 삶에 힘이 되어준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늙어간다는 건 역시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문명을 멀리 하고 헛된 욕망을 비우며, 세상일에 초연해 지는 일이 쉽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늙는다는 건 결코 서글픈 일만은 아니라는 걸, 오래된 절집을 오르내리며 깨닫는다. <잘 늙은 절>

 

그의 사유는 그렇게 받아들임에서 또 다른 파장을 만든다. <북청사자놀음>에선 부모가 현실에 대한 통찰력과 한걸음 앞서 혜안을 떠서 꿈이 많은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했고, <집>에선 유년시절, 커다란 산처럼 말없이 딸들의 성장을 바라보신 아버지, 툇마루나 안방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집안에 수선할 곳을 찾아 고치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그 아버지가 며칠 후 어머님 곁으로 홀연히 떠나신 감정을 말하고 있다.

<터줏대감>에선 기와지붕에 얹힌 홍매화가 한 폭 수묵화처럼 아름답지만 고목의 고졸한 맛이 더 좋은 것은 봄날의 나목으로 서있는 모습이 수행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런가 하면 <그림 맞추기>에선 화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의 퍼즐을 맞추며 소중한 가족의 한 마음 된 모습을 본다. 그렇게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사유거리다. 심지어 <토끼풀>을 보면서도 낮은 포복의 겸손한 몸가짐으로 여름내 지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꽃송이를 보며 그 기품을 찬양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수필 속에서 품어내는 에너지는 따뜻함이다. 생활에서 얻는 편안함이다. 생활에서 받는 여유로움이다. 생활과 조곤조곤 나누는 정다운 이야기다. 그래서 읽음의 공감에서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고 새 힘이 솟는다. 문학으로의 수필은 이런 치유와 회복으로 인간의 소소한 행복을 공유한다.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놓치기 쉬운 것, 잘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것,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그런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다. 이은희의 수필들은 그런 목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 그래서 직선의 삶이기보다 곡선의 삶을 찾고 심안과 혜안으로 세상을 보려 하며 보이지 않는 것에는 상상을 더하여 자기만의 선명한 대상을 찾아낸다. 뿐 아니라 그렇게 다각적으로 인간 존재를 규명한다. 그게 이은희 수필의 생명력이요 힘이다.

 

5. 나가면서

 

이은희 수필들을 읽고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데도 한국 혼의 부활과 전통미의 발견에 목적을 두고 있는 그의 수필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숨어 있다가 글이 되어주는지 신기할 정도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는 작가, 수필의 지경 아니 자신의 문학 지평과 지경을 넓혀가는 일에 전력을 경주하면서 검댕이적 삶을 쉬지 않는 인내와 꿈은 바로 이은희 문학의 누구도 넘보기 힘든 뛰어난 힘이다.

그런 그의 마음 곧 영원성을 잘 나타낸 <망새> <궁> <폐사지에 가다> <바람이 남긴 것> 등과 전통성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미의식을 표명코자 한 <버선코> <실죽> <업> <토우> <괘릉> <골목길> <폐타이어> <양푼예찬> <교두각시> <맥놀이> 등과 거기에 자연 그대로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 <결> <춤추는 치마> <주령구> <오름, 오름, 오름> <불비상> <라르고> 같은 작품들은 바로 이은희가 그만의 심안과 혜안으로 인간 존재론적 사유와 해석으로 창조해 낸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분명 이은희는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놨을 것이고, 만들고 있을 것이고, 만들어 갈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열정과 아름다운 욕심으로 나아가는 그가 더욱 거룩한 부담감으로 우리 수필 문단 그리고 한국 문단에 더욱 격 높은 수필의 탑을 높이 쌓아주길 기대한다.

 

 

최원현 nulsaem@hanmail.net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사)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주간. 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현석김병규수필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누름돌》등 17권, 문학평론집《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 중학교《국어1》《도덕2》등에 수필 작품이 고등학교 《국어1》《문학 상》등에 수필 이론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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