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교론 / 권대근

문학에 있어서 내용(사상)이 더 중하냐 형식(기교)이 더 중하냐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가장 타당한 답은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다 같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이 모든 문학의 공통적 요소라면 기교는 각종 문학 양식의 특색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느 특정 문학을 말할 때는 그 표현 기교가 대상이 된다.

문학에는 시가 있고, 소설이 있다고 할 때는 소설 아닌 점, 시 아닌 점이 논제가 된다. 수필도 일반 문학으로서의 통성과 수필만이 가진 특질의 수법이 없을 수 없다.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말로 덮어 버릴 수만은 없다. 문학마다 형식이 같지 않다. 또 변천이 있어 왔다. 그 수법에서 따라서 그 문학의 성격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필은 다른 문학처럼 일정한 룰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있다. 그러나 룰이 없기 때문에 그 작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법이라 하지 않고 수법이라 했다. 수법이란 작법이 일정하지 않은 대신 얼마든지 개발 내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작가마다 독특한 수법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수필 창작의 어려움이 있고 또한 쉽게 덤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수필의 수법

수필은 그 형식이 자유롭고 특별한 격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어떠한 구속이나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쓰는 사람의 자유의사와 각자의 방식이나 취향 등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따라서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형식이나 수법, 또는 격식이나 룰 같은 것에 굳이 제약받거나 구속될 필요는 없다. 또한 어떤 특별한 형식이나 수법, 또는 격식이나 룰 같은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수필의 특색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인 수필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그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나름대로의 어떤 수법에 의해 쓰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작가가 의식적으로 썼든 무의식적으로 썼든 그 수법은 수필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몇 가지 수법들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수필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몇 가지 수법, 즉 그 표현 방법이나 표현 방법에 따른 여러 가지 분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것은 보는 관점이나 견해 등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10가지 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법이라는 말은 수필의 구성과는 의미가 다르다. 수필의 단위 즉 구조나 구성이 단락의 성격이나 주제문의 위치에 따라 삼단 구성, 사단구성 그리고 두괄식, 미괄식 등으로 불리어진다면, 수법은 수필의 내용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른 구성법이라 할 수 있겠다.

1) 열기식 수법

서로 다른 내용들을 열거해서 한 편의 수필을 완성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내용은 얼핏 서로 별개인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작품 전체에 있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상호 보완 작용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높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욱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이 수법을 사용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내용들을 서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전체적인 통일성과 구성의 치밀함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오히려 내용이 산만하고 작품 전체의 통일성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수법은 소설이나 시 또는 희곡에서는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오직 수필에서만 가능한 수법이다. 양주동의 , 안톤 슈낙의 , 피천득의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얼리트 빛과 흑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한 종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흘러 다니는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처녀의 가는 손가락이 때 묻은 서류 속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어린 아이의 배고픈 모양. 철장 안에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백설……

안톤 슈낙의 의 일부다. 서로 내용이 같지도 않은 한 토막 한 토막씩으로 끝나는 글들을 열기해서 무드를 살려 나가며 자기의 정서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수법은 시에도 소설에도 희곡에도 적용되지 않는 수필만이 가능한 수법이다.

2) 질서식 수법

비교적 초보자들이 쓰기에 편리한 수법이다. 이 수법은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또는 공간적인 질서에 따라 차례대로 써나가는 것을 말한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구성은 일기나 여행수필에 많이 쓰이고 공간적 질서는 소설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하고 있다. 수필의 묘는 이렇게 시간적인 구성과 공간적인 구성이 적절히 혼합될 때 참신한 맛을 준다.

그러나 너무 시간적인 순서에만 입각해서 쓰다 보면 자칫 무미건조해지고 나열식이 되기 쉬우며 문학성과 예술성이 떨어질 염려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법에 의해 수필을 쓰고자 할 때는 특히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바쁘게 대문을 나선다. 대문 밖은 골목길이고, 골목을 조금 나가면 한길이 된다. 한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다. 점심 보자기를 든 사람, 예쁘게 차린 처녀, 반백이 된 노인, 자전거에 올라 탄 사람, 땅에서 금방 일어난 듯한 초등학교 어린이 등, 그들은 하나의 긴 대열을 이룬다.(중략)

그리하여 직장 근처에 이르게 된다. 나는 여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이르면 앞과는 다른 또 하나의 대열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하얀 깃을 단 여학생들의 대열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이 한꺼번에 몰려오니까 대열이 이루어진 것이다.(중략)

교문을 들어서고 넓은 운동장을 거쳐서 교무실에 도달한다. 여기에는 나와 똑 같은 교사들이 집결되어 있다. 아침이면 모여들고 저녁이면 흩어지는 또 하나의 대열을 이룬다.(김시헌)

이 수필은 학교 교사로서 아침에 집을 나서 근무처인 여학교까지 가는 과정과 여학교에서의 일을 시간적 순서대로 그려나가면서 그때마다 느낀 갖가지 상념들을 결부시켜 놓은 작품이다. 이처럼 어떤 사실과 그에 따른 상념들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서 차분히 그려나가는 방식이 바로 '질서식 수법'의 수필창작인 것이다.

3) 소설식 수법

이야기의 내용을 사건 중심으로 긴박감 있게 소설식 수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수필에 다양성과 변화감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오직 수필만이 갖는 장점이다. 말 그대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수필을 쓴 것인데, 이러한 수법은 생동감과 긴박감을 넘치게 하고, 독자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사실적 묘사의 효과도 크다.

그러나 이 수법이 남용되거나 잘못 쓰이게 되면 수필이 아닌 소설로 혼동하게 할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필의 특성과 효과를 약화시킬 염려도 있다. 또 수필을 쓰는 자세나 방법이 안이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소설식 수법을 수필에서 사용할 때에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 이러한 수법은 수필의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므로 꼭 필요하거나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삼가는 것이 좋다.

"김 양이 곧 올 것이라우. 엄한 가정이어서 부모님 몰래 짬을 내어 오자니 깨로 시간이 좀 걸릴 것이로구먼. 규수는 사남 삼녀 중 막내이니, 안성맞춤이여. 셋째 딸은 묻지도 말고 장가들라는 옛말이 있지 않은 게라우. 그러니 자리는 이 이상 좋은 데가 썩 드물 것이로구먼."

"예, 그렇다면 내 처지와 엇비슷한 가문이오. 나는 경망스럽거나 히히덕거리는 여성은 제발 싫소. 착하고 참한 규수이기를 바라오. 곧장 와 주었으면 해요."

우리는 시간의 흐름마저 망각한 채 열을 올리다시피 하여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깔려 온통 어스레하였다. 우리는 그녀가 빨리 나타나 주기를 바라면서 방 안으로 되돌아갔다.(이기봉)

이 수필은 특히 대화체의 문장을 많이 사용한 소설식 수법의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대화체의 문장에서 나타나는 지방 사투리를 실감나게 묘사함으로써 사실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 예화식 수법

이것은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 어떤 예화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으로서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빠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와 예화가 잘 맞지 않으면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엉뚱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 또한 예화가 너무 길다 보면 작가가 직접 전하는 내용이 짧아져 자칫 내용이 부실해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안이한 방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비교적 쓰기 쉬운 타입이나 교훈적으로 흐를 약점이 있다.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자극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권태감을 주기 쉽다. 그러나 기술의 요지를 살리면 충만한 정서를 불러 일으켜 생명력이 넘치는 수필이 될 수 있다.

낙상으로 입원 중인 시인 김남조 선생님을 문병 갔을 때, 병상의 김 시인께서 오히려 문병 간 우리를 위로하시려고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아마도 누구나 자신의 짐이 가장 힘겹고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생애야말로 제일 비극적이며, 한 권의 소설이 되고도 남을 정도의 우여곡절 투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도 더 기막힌 비극의 주인공으로 자기가 살고 있다고 아파하며 절망하며 신을 원망하리라.

그러나 이런 우리 자신이야말로 김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의 그 사람인지도 모를 일, 아마도 가장 가볍고 견디기 쉬운 십자가를 지고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십자가가 자신의 능력보다 가볍다고는 생각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 누구도 하나님께 좀더 무거운 좀더 고통스런 불행의 십자가로 바꾸어 달라고는 하지 않으리라. 이겨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고통과 역경에는 처하도록 하시지 않으신다는 신의 자비를 나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것 같다.(유안진)

이 수필에서 작가는 김남조 시인이 병실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예화로 들려주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5) 호흡식 수법

이 수법은 문맥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논리의 모순이 없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전체적인 구성이 짜임새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물 흐르듯 유연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수법의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문장력이 뛰어나고 구성력 또한 치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숙달되고 뛰어난 글 솜씨가 없이는 쓰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만큼 이런 수법으로 쓰인 수필은 독자들이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고, 수필을 읽는 맛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문맥을 끊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이어가는 수법이다. 말이 끝나는가했는데 다음 말을 이어지는 방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문장에 달의를 얻지 못하고는 쓸 수 없는 수법이다. 문장이 난잡하지 않고 긴박감과 호기심 속에 계속 새로운 내용으로 이어지는 수법이다.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고 문장의 우아한 맛을 주는 수법이다. 격동적이고 격정적인 수필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은 날마다 길을 간다. 하루도 길을 가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야 정상이다. 사람들은 아침에 집을 나서서 길을 가고, 저녁에 집을 향해 길로 돌아온다. 집을 나서서 남자는 일하러 가고, 주부는 장을 보러 가고, 젊은이는 학교에 간다. 어린이가 놀이터에 가고, 늙은이가 말벗을 찾아갈 때, 모든 직장인은 일터로 가고, 일터가 없는 사람은 일감을 찾아간다. 이렇게 어디로든 가는 데가 길이다. 평일에 일하러 가는 길과 휴일에 놀러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길을 가는 것이다. 가까운 길도 있고 먼 길도 있다. 나서서 떠나는 길이 있으면 일어나 돌아오는 길이 있다. 이처럼 사람이 가고 오는 데가 길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되풀이 되는 동안에 땅 위에 난 자국이 길이다. 처음에는 들과 산으로 사냥하러 가고 냇가로 물고기를 낚으러 가면서 밟은 자국을 따라 길이 났음직하다.(김용구)

길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계속 되면서도 그것이 물 흐르듯 유연하며 논리적 모순이 없는 글이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구성이 짜임새 있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호흡식 수법의 수필이다.

6) 기술식 수법

이 수법은 수필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서 수필들 중에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 가장 많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술하듯이 차분하고도 체계적으로 열거해 나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수필 초보자들에게 가장 널리 쓰이고 있으며, 또 수필 초보자들은 이러한 방식부터 충분히 습득하고 난 후에 다른 방식도 써보는 것이 좋다. 평범한 문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묘사해 가는 수법이다. 문장의 배치에 따라 글의 맛이 달라진다. 묘사와 작가의 생각을 함께 잘 구사하면서 침착하게 우회적으로 써 나가면 그대로 하나의 수필이 된다. 음미의 여지를 주면 우아한 맛도 있다.

그이의 근무지 이동시기와 아이들 시험기간이 겹쳐 함께 오지 못했다. S는 늦게야 관사를 찾게 되었다. 산판이 많은 고장이라 나무를 땔감으로 쓴다고 했다. 으스스해지는 한기에 우선 부엌부터 살펴보았다. 아궁이에 부지깽이가 세워져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부지깽이였다. 산득산득 차가운 연탄집게를 잡던 손끝에 부지깽이는 부드럽고 정감을 느끼게 한다.

아궁이 가득 장작을 밀어 넣고 신문지를 돌돌 말아 쏘시개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 이쪽저쪽 불길을 일구어가는 재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몰랐다. 불을 다 때고 나니 불길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불길이 멎자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벌겋게 피어오르는 숯불 같았다.(최소사)

이 수필은 부지깽이에 관한 작가의 추억과 일화, 그리고 그에 얽힌 여러 가지 상념들을 기술식으로 차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7) 시화적 수법

수필들 중에는 시적인 형식과 시적인 표현 방법, 또는 시적인 묘사나 시적인 언어로 쓰인 수필이 있는데, 이러한 수법으로 쓰인 수필을 가리켜 '시적인 수법의 수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시적인 수법의 수필'은 그 표현 방법이나 내용 등이 자못 시적이며 간결하면서도 산뜻하고 군더더기의 말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언어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고 고상한 분위기가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적인 수법의 수필은 자칫 시와 혼동되거나 시의 모방인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으나 시적인 수법의 수필과 시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또한 시적인 수법의 수필은 시와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특히 시적인 수법의 수필을 쓸 때에는 작품의 문학성이나 문학적 효과, 또는 표현의 극대화나 전달 효과 등 필요에 따라 시적인 형식과 시적인 표현 방법, 시적인 묘사나 시적인 언어 등은 사용하더라도 수필로서의 고유의 특성이나 수필로서의 가치 등을 잊고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시의 특성과 장점, 수필의 특성과 장점 등을 효과적으로 접목시켜 보다 문학성·예술성이 뛰어나고 가치 있는 수필로서 재차 태어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욕망은 없는 것.

그러나 그대들 사랑하면서도 또다시 숱한 욕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면 다음의 것들이 그대들의 욕망이 되게 하라!

녹아서, 밤을 향하여 노래하며 달려가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지나친 다정함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그대들 상처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리게 되기를.

날개달린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사랑의 또 하루를 향하여 감사하게 되기를.

정오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명상하기를.

황혼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그런 다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음속으로부터 기도하고 그대들의 입술로 찬비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칼릴 지브란)

이 수필은 얼핏 시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적인 수법의 수필로서 세계의 명수필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한편의 멋진 시인가 하면 수필이고 수필인가 하면 산뜻한 시인 그러한 수필은 필요 없는 말이 제거된 면면한 정서가 고아한 품위를 이루고 있는 글이라 하겠다. 심중에 있을 때 뜻이 되고 말로 표현되는 것이 글이라면 수필은 곧 마음속에 품은 뜻이다. 그 뜻이 남발하지 않는 언어로 정제되어 간결하면서도 유창한 언어로 표현된 글이 시적 수필이다.

8) 논리적 수법

설리적 수법이라고도 한다. 흡사 논설문처럼 사물의 이치나 주장을 조리 있게 따지고 설득력 있게 제시해 가며 쓰는 수법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수법으로 쓰인 수필 작품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설득력은 있으나 문학적인 향취나 재미는 적다. 사물의 이치를 공평하게 서술한 글이라 할 것이다. 즉 논설적인 이러한 글은 잘못하면 자기의 감정에 빠지거나 편벽된 주장에 빠져 진리에 이르지 못할 염려가 없지 않다.

조금이라도 지적인 냄새를 풍기면 실패한다는 말은 바로 이 수법으로 수필을 쓸 때를 두고 한 말이다. 수필은 정서적 감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수필은 우리의 가슴에 호소한다. 논리적인 글은 우리의 머리에 호소하는 것인 만큼 독자들로부터 감동을 받아 내려면 보다 더 논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여인의 '한'도 존재의 여지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 '한'이란 말이 남녀 관계를 떠난 다른 일들에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녀간에 있어서는 '한'의 전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도 있으나, 다른 경우에 생긴 '한'이란 미움 또는 증오가 그 전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 문제를 벗어난 '한'이란 자신의 불행이나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 때문에 '원수'라는 말에 쓰이는 '원'과 같은 뜻이 된다. 그 때문에 이러한 '한을 푼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원한을 갚는다'는 뜻이 된다. 곧 옛날 여인의 '한'은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고도 애절한 것이지만, 남녀 관계를 벗어난 '한'은 증오심과 복수심이 그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흉측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김학주)

설리에 낭만이 없으면 문장이 건조하고, 수사적 표현을 동반하지 아니하면 청신한 맛이 없고, 유머가 없으면 문장을 읽는 맛이 없고, 정열이 없으면 진실감을 주기 어렵고, 묘사의 구사가 아니면 독자에게 기쁨을 주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인 수법으로 쓴 수필도 서정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9) 서정적 수법

서정성이 짙고 서정적인 감정 표현이 짙게 나타나 있는 형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수필은 흔히 '서정 수필'이라고 한다. 또한 수필은 원래 서정성이 짙고 인간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수필 작품들 중에는 이 같은 서정적 수법으로 쓰인 것들이 많다.

인간의 정이 움직이면 언어로 표현되고 그 이지가 발달하여 문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정이 겉으로 드러나면 문장이 유치해지고 정이 허술해지면 내용이 허전해진다. 정으로 가득 채우면 문장에 해가 미치기 쉽고 듬성듬성 서술하면 내용이 헷갈리게 된다. 서정수필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김동인의 수필 한 편을 예로 들어 보겠다.

그의 유서가 피로 되었다. 그 유서에는 사년 전에 ××로 ××고을에 살던, 그때 열 두 살 났던 영애라는 처녀를 찾아서, 그 처녀가 그 때 어떤 과객이 준 수정으로 만들은 비둘기를 가지고 있거든, 자기의 유산 전부를 주어서 비둘기를 사서, 자기와 같이 묻어 달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때의 소녀가 아직껏 그 비둘기를 가지고 있을 것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의 주검은 수정 비둘기와 함께 무덤으로 갔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누워있던 나는, 한 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났다. 때는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날, 곳은 모란봉 중턱에 있는 어느 조용한 곳이었다.

서정성은 수필에 없어서는 안 될 본질이라는 사실이다. 서정성은 수필의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유서를 쓰고 죽은 젊은이의 믿음이 정으로 유로되어 문장 속에 유현하게 나타나 있다.

10) 서사적 수법

서사, 설리, 서정, 묘사는 수필의 중요 내용이요, 소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편의상 그 비중에 따라 설명하기 위한 것이요, 반드시 그렇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비서정적인 묘사 없고, 서사나 설리도 서정을 떠나서 존립하지 않는 동시에, 서사가 아닌 설리나 서정이 없다. 서사적 기법으로 쓰인 수필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객관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수필 작품에서는 서정적인 묘사가 많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또한 불필요한 군더더기의 말이 적으며 침착하고도 냉정한 자세가 엿보인다. 김동리의 다음 수필이 이 계열에 속한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은 한길에서 골목길을 세 번이나 ㄱ자로 꺾어 접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골목이 좁고 깊고 어두워서 밤이 늦어서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 서울과 같이 강도 절도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이 판에 밤마다 그것도 대개는 술까지 좀 취해서 이곳을 지나다녀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나는 아무리 술이 취했을 때라도 이 골목을 지나는 동안에는 정신이 바짝 긴장되곤 했다. 더욱이 품안에 현금이라도 좀 낫게 가졌을 때엔 우정 동행이 될 만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이라도 기다렸다가 같이 골목으로 들어서곤 했다.

모든 수필에 생기를 전하고 사물을 묘사하는 데는 사물을 따라 정서도 함께 울먹이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은 서정을 떠나서 쓰일 수 없다. 그러므로 서사 수필 역시 서정을 완전히 초월한 수필이란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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