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시제 표현그 오해와 진실

                                                                                             여세주

 

 

1. 문학적 글쓰기에서의 시제 표현

 

글을 쓸 때에 대개는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만을 생각하면서 기술해 나간다그렇게 해도 어법에 맞게 기술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문장을 진술할 때 곧잘 드러나는 오류는 대부분 지나쳐 버린 실수에서 비롯된다모국어를 온전히 습득한 사람은 잘못된 문장을 가려내어 바로잡을 수 있는 직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도, ‘말이 된다안 된다를 쉽게 판단하는 것이다모국어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이미 문법의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시제 표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우리는 수필을 창작하면서 문법적 차원의 시제 표현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언어 습득 과정에서 이미 갖추게 된 문법의식을 활용하여 시제를 적절히 구사해 낸다특히한국어에서의 시제는 문법 요소로 인식되기보다는 의미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수필을 창작할 때 시제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문제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이때의 망설임은 문법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수필 창작에서의 시제 표현은 단순히 시간 지시적 기능만을 표시하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그렇다면수필을 창작하면서 시제 표현의 문제에서 머뭇거리는 까닭은 언어 현장에서의 시제 표현과 문학 텍스트에서의 시제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그래서 작가는 문학적 표현 기교나 효과의 차원에서 시제 표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2. 한국어의 시제 표현

 

시제란 상황의 시간적 위치를 지시하는 문법범주이다. ‘상황의 시간적 위치란 시간 축의 어느 시점에 상황이 위치해 있음을 지시한다상황의 시간적 위치는 기준시점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따라서 시제는 기준이 되는 어떤 상황시에 대한 다른 상황시의 위치발화시에 대한 상황시의 위치시간부사가 지시하는 참조시에 대한 상황시의 위치로 파악된다과거시제는 기준이 되는 발화시나 상황시참조시 앞의 어느 지점에 해당 상황이 존재함을 표시하는 형식이고비과거시제는 기준이 되는 발화시나 상황시참조시의 시점이나 그 이후의 시점에 해당 상황이 존재함을 표시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항상 말하는 시점이 시제를 결정하는 기준 시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기준시점을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말하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타내는 경우와문장 안에 있는 다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그것이다기준시가 발화시로 고정되어 있는 시제로 표현하는 경우와상황의 발생 기점을 기준으로 그것과의 상관관계에 있는 시제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전자를 절대시제후자를 상대시제라고 이르기도 한다.

 

(1)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줄곧 영화를 보았다.

한국으로  비행기에서 줄곧 영화를 보았다.

 

(2) 앞으로 그 사람을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 오는은 행위가 이루어진 과거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를 나타낸 것이고 (1)  한국으로 오기 전인 과거의 시점에서 볼 때 미래의 예정을 나타낸 것이다. (2) 만날은 절대시제를, (2) 만나는은 상대시제로 나타낸 것이다다시 말하면, ‘만날은 발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미래이고, ‘만나는은 만나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시를 기준으로 하여 현재인 것이다.

한국어의 시제는 과거와 비과거의 대립으로 이분체제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은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서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은 예정의지추측 등의 의미를 전달하는 서법이지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라고 보지 않는다예컨대, ‘이미 왔겠다/왔다는 과거 시제, ‘지금 경주에는 비가 오고 있겠다/있다’, ‘내일 경주로 가겠다/간다는 현재와 동일한 시제 상에 있을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학교문법에서는 아직 ‘--’을 미래시제를 표현하는 형태소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어의 시제는 매우 복잡하지만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제 표현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그렇기는 하지만여기에서 시제 표현 방법을 간략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국립국어원의 한국어문법1에 의거하여 요약한 것이다.

 

1) 과거시제 표현

 

과거시제를 표시하는 형태소는 문장의 종결형과 연결형그리고 관형사형에서 고루 나타난다종결형에서 과거시제 표현은 알다시피 ‘-/-’으로 표시한다. ‘-었었-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데이 형태는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이 현재와 다르거나말할 때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나 현재와는 시간상 거리가 멀어 단절되어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그러나 연결형의 경우모든 연결형에 과거시제 형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3) 나는 책을 읽고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셨다.()

나는 책을 읽었고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셨다.()

 

(4) 나는 어제 책을 읽고낮잠을 자고영화를 보았다.()

나는 어제 책을 읽었고낮잠을 잤고영화를 보았다.(#)

 

연결어미 ‘-로 이어질 경우에는 문장에 따라서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3)의 경우, ‘-로 연결된 문장에서 주어가 다를 경우에는 (3)에서처럼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말을 종결형에만 표시하든, (3)처럼 연결형과 종결형 모두에 표시해 주든 문장이 모두 자연스럽다. (4)와 같이 주어가 같을 경우에는 종결형에만 시제 표시를 해 주어야 자연스럽다한편내용이 과거인 경우에도 ‘--’과 함께 쓰이지 못하는 연결어미가 있다. (5)에서 보듯이 ‘-아서/-어서’, ‘-다가’, -(), ()려고, -()면서, -() ‘ 등이 그들이다.

 

(5)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에 갔다.

친구들과 놀면서 밥을 먹었다.

소나기가 내리니제법 시원해졌다.

 

한편 ‘-다가’ 등의 연결어미는 (6)에서처럼 과거시제나 현재시제로 모두 표시할 수 있으나 각각의 의미가 달라진다. (6)는 고향에 가는 도중에, (6)는 고향에 가서 친구를 만난 경우를 각기 나타낸다.

(6) 고향에 가다가 친구를 만났다.()

고향에 갔다가 친구를 만났다.()

 

관형사형에서도 과거시제는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과거시제 관형사형은 동사의 어간 뒤에 ‘-/-을 붙여 만든다. (7)는 동사의 어간 뒤에 ‘-이나 ‘-을 붙여 만든 과거시제 관형사형이다.

 

(7) 어제 읽은 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어제 만난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저것이 내가 만든 작품이다.

 

2) 현재시제 표현

 

현재시제는 종결형과 관형사형에서 표시하는 방법이 다르다종결형에서 현재시제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종결어미를 그대로 쓰면 된다그런데 주로 글에 많이 나타나는 평서문 현재시제형은 (8)에서 보듯이 ‘--/--’을 붙여 표시하고형용사나 명사+이다의 경우에는 특정한 형태소가 실현되지 않는다관형사형의 현재 표시는 종결어미와는 달리 어간 끝음절에 ‘-/-/을 붙인다.

 

(8) 수미는 지금 책을 읽는다.

요즘 나는 매우 바쁘다.

내 동생은 고등학생이다.

나는 예쁜 꽃이 좋다.

 

현재시제를 나타내는 말은 현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상황의 시간적 위치와 상관없는 보편적인 진리습관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사실미래에 일어날 것임이 분명한 일을 나타내는 경우에도 현재시제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9)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고향에서 며칠씩 머문다.

며칠 후에 다시 고향에 간다.

 

(9)는 변화지 않는 사실을 의미한다. (9)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습관을 표현한다. (9)는 분명히 정해진 미래의 사실을 이야기 하므로 현재시제 문장을 사용한 것이다.

 

3. 수필의 시제에 대한 오해

 

1) 통일된 시제 표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수필의 시제 표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손광성이 수필의 시제 표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그는 수필가들의 시제에 대한 불감증을 개탄하면서 시제의 빈번한 이동으로 인한 일관성 없는 시제 표현이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고 진단한다.

일관성 있는 시제 표시는 시간상의 위치가 동일한 상황의 기술에서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말하고자 하는 대상이 달라지면 시제도 그것에 합당하게 이동한다따라서 한 편의 수필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매우 복잡하게 얽히면서 혼용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뿐만 아니라발화시를 기준으로 한 절대시제 표현과 상황시를 기준으로 삼은 상대시제 표현을 동시에 실현하여 시제를 자유자재로 전환시키는 한국어의 시제 표현 특성도 시제 표시의 일관성을 방해한다지나간 체험과 발화 순간 사색을 섞여놓은 수필에서도 일관성 있는 시제 표현을 기대할 수 없다체험은 과거형으로그것에 대한 사색은 현재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단일구성으로 이루어진 수필이라 하더라도 한 편의 작품 전체가 하나의 시제로만 일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복합구성을 취하고 있는 수필에서는 시간상의 위치를 달리하는 여러 상황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시제 이동이 불가피하다그렇기 때문에수필의 시제 표현이 매우 혼란스럽다고 한 손광성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시제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그의 제안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그러나 기술하는 대상의 시간상 위치에 대한 고려는 무시한 채무조건 시제를 통일시켜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시제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현상을 두고 시제 표현의 오류라고 운운하는 것은 더구나 잘못된 지적이다시제의 통일은 일관된 시제 표현이 가능한 경우에만 유효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시제 이동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수필의 담론적 특성이나 한국어 시제 표현의 특성을 고려한 상태에서 시제의 통일성을 요구해야 될 것이다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이런 날도 어김없이 산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멀리서 뒤뚱거리며 내려오는 그분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인적이 드물어 더욱 반갑다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다……(중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파른 산길을 십 년 넘게 오르내리는 분이다지팡이도 없이 넘어질 듯 불안해 보이지만그건 보는 사람의 생각이다사지가 멀쩡한 사람보다 더 잘 걷는다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자주 만나다 보니자연스럽게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백승분, <어찌 좋아하지 않으리>에서)

 

상황시와 발화시를 일치시킨 이 글에서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시제로 표현되어 있다시제의 통일을 위해 마지막 문장의 시제도 현재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마지막 문장의 상황시는 그 앞의 상황시보다 분명 앞서는 시간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시제의 통일을 기한답시고 이 문장을 자주 만나다 보니그분과는 농담까지 주고받는 사이다.’로 현재형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이렇게 바꾸게 되면 지시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가능하다면시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독서의 수월성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오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시제의 불통일성에 대해 시시비비할 수 있는 작품들은 수없이 발견된다상황별로 일관성 있는 시제 표현이 수필의 가독성을 높일 수 있다면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일관성 있는 시제로 표현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2) 수필의 기본시제

 

손광성은 수필의 기본 시제를 두 가지라고 주장한다. “추상수필과 구상수필그리고 서정수필일 경우는 시처럼 현재시제가 기본이지만서사수필일 경우는 기본시제가 소설처럼 과거시제이다.”고 한다이양하의 <나무>나 김진섭의 <백설부>는 모두 현재시제가 기본이지만피천득의 <인연>이나 김소운의 <도마소리같은 서사수필은 과거시제라고 그 근거를 들고 있다그런데 수필에서의 시제 표현이 이렇게 단순화될 수 없다손광성이 제시한 수필의 네 가지 하위 양식이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구분된 유형은 아니지만그 구분 근거인 제재에 따라서 기본시제가 달라진다고 할 수 없다서사적 사건을 제재로 삼은 작품도 현재시제를 기본시제로 삼을 수도 있고구체적인 사물 및 추상적 관념그리고 작가의 서정을 제재로 삼은 작품도 얼마든지 과거시제로 표현될 수 있다수필의 제재와 시제는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이양하의 <나무>나 김진섭의 <백설부>에서의 현재시제 표현은현재에도 지속되는 사실이나 항구적 속성을 전달하려는 화자의 의도에 따른 것일 뿐이다다시 말하면구체적인 사물의 지속적인 속성이나 추상적 의미를 마치 보편적 진리인 것처럼 표현하고자 했기에 현재시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피천득의 <인연>이나 김소운의 <도마소리>는 발화시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이전에 벌어졌던 상황을 전달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과거시제로 표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어의 시제는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매우 복잡하여 그러한 언어 현상을 설명해 내기가 쉽지 않다학자들마다 견해도 다르다. <나무>에서의 첫 문장만 보아도 그렇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는 시작점이나 끝점이 없는 상태성 상황을 표현한 문장이다현재의 상태를 나타낼 뿐과거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문장이다그렇다면 여기서 쓰인 '--'은 과거시제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 된다만약과거시제는 현재 더 이상 참이 아닌 상황을 기술하는 데 사용되거나 과거에 국한된 상황에만 결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면이때의 ‘--’은 시제 표지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이와는 반대로, ‘-은 과거를 나타내며 현재에 지속되는 상황에도 과거형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상황시의 경계가 시제 의미를 세우는 데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과거시제가 상황의 끝점이 확인되는 조건에서만 선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따라서 이 문장에서 ‘--’의 성격이나 시제 구분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나무는 덕을 지녔다.’에서의 시제 표현이 잘못되었다거나 현재시제로 바꾸어야 시제 표현의 일관성이 실현된다고 할 수는 없다.

 

3) 시제 표현의 오류와 적절성

 

한국어 시제 표현의 복잡한 현상이 이러한데도손광성은 구체적인 작품을 사례로 들어 시제 표현의 오류라고 하면서 시제를 통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그가 제시한 네 편의 수필 모두에서 시제 표현의 오류는 발견할 수 없다그 가운데 두 편만을 다시 검토해 보기로 한다다음 수필은 이태준의 <작품애>라는 수필의 일부이다.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a기동차에서다. 책보를 메기도 하고끼기도 한 소녀들이 참새 떼가 되어 재갈거리는 틈에서 한 아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흑흑 느껴 울고 b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우는 동무에게 잠깐씩 눈은 던지면서도 달래려 하지 않고무슨 시험이 언제니아니니내기를 하자느니 하고 저희들끼리만 c재깔인다. 우는 아이는 기워 입은 적삼 등허리가 그저 d들먹거린다. 왜 우느냐고 묻고 싶은데 마침 그 애들 뒤에 앉았던 큰 여학생 하나가 나보다 더 궁금하였는지 먼저 e물었다. 재잘거리던 참새 떼는 딱 그치더니 하나가 대답하기를,

개 재봉한 걸 잃어버렸어요.”

f한다.

학교에 바칠 걸 잃었니?”

아니야요바쳐서 잘했다구 선생님이 칭찬해 주신 걸 잃어버렸어요그래서 울어요.”

큰 여학생은 이내 우는 아이의 등을 흔들며 g달랜다.

울문 뭘 허니운다구 찾아지니울어두 안 될 걸 우는 건 바보야.”

이 달래는 소리는 기동차 달아나는 소리에도 퍽 맑게 들리어나는 그 맑은 소리의 주인공을 다시 한 번 돌려 h보았다. (이태준, <작품애>에서)

 

손광성은 이 작품에서의 시제가 이유 없이 바뀌고 있다고 하면서 지문의 시제를 과거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발화시즉 작품을 쓰는 시점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세운다그러나 한국어에는 발화시를 기준으로 하는 시제와 상황시를 기준으로 하는 시제가 한 문장 속에서나 동일한 상황 안에서도 허용되므로 자유자재로 시제 이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우선손광성은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기동차에서다.’라는 첫 문장은 오류라고 지적하였다과거를 지시하는 부사와 함께 현재시제를 사용하였으므로 잘못된 문장이라는 것이다그러나 한국어에서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엄마는 내일 온다.’라든가 지금 아기가 잠들었다.’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따라서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기동차에서다.’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기동차에서였다.’는 모두 가능한 표현이다시간부사는 상황시 지시상황의 시간 틀 지시상황시의 일부 시점 지시 외에 기준 시점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는데여기서 어제는 상황시를 지시하고 현재시제는 상황시를 기준 시점으로 한 상대시제로 표현된 경우이다. ‘어제 학교에서였다./어제 학교에서다.’ 또는 어제 기차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어제 기차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가 어느 경우나 어색한 표현이 아닌 것을 보아도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기동차에서다.’의 시제 표현은 오류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한국어의 시제는 말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시제(절대 시제), 다른 사건의 발생 기점을 기준으로 그것과의 상관관계에 있는 시제(상대 시제)를 매우 자유롭게 사용하므로이 문장은 한국어 시제 표현의 특징을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현재시제로 표현된 문장들은 소설이론에서 이른바 역사적 현재로서의 현재시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작가가 자신의 시점을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로 옮겨서 표현한 것이다작가가 목격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현재시제로 표현하는 기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따라서 이 수필에서 현재시제로 표현된 문장들을 모두 과거시제로 바꾸면오히려 이 글이 주는 효과를 떨어뜨리게 된다과거시제와 현재시제를 혼용하여 표현하더라도 독자는 그 상황이 어제 기동차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현재시제로 표현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따라서 이 수필은 시제의 혼란이 아니라 혼용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수필의 시제 표현이 잘못된 부분은 없다다만작가의 의도가 현장감을 높이려는 데 있다면, b(있었다) e(물었다)를 현재시재로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앉았던은 과거완료상을 나타낸 것인데이를 현재완료상을 나타내는 앉아있는으로 바꾸면 의미가 달라진다이때의 았던은 과거를 지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벌어진 시점에 앉아있지 않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도록 사용된 것이다.

송광성에 의해 시제의 오류로 지적된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검토해 보자손광성은 이 작품의 시제를 모두 과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면서 시제 일치는 수필뿐 아니라 모든 문장이 지켜야 하는 우리말의 규칙이다.”고 하였다손광성이 말하는 시제 일치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한 편의 수필이 시제의 통일을 이루고 있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한국어에는 시제 일치의 규칙도 없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a깎았다고 b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c좋다는 d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e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f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 만나기 g어렵다는 h것이다. 비로소 마음이 확 i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j뉘우쳤다. 참으로 k미안했다.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

 

송광성에 따르면, C f는 방망이의 성질을 말한 것이고 g는 생활 속의 진리를 말한 것이므로 현재형으로 써야 하지만, b, d, h를 모두 과거로 고쳐야 된다고 주장한다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b, c, d, h, f, g는 모두 사건이나 상황과의 동시간화에 의한 상대시제를 표현한 것이다굳이 과거로 고칠 필요가 없다그대로 두더라도 시제가 혼란스럽지 않고 시제의 오류라고도 할 수 없다이 작품에는 오히려 작가의 의도적인 시제 운용의 기교가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담론의 주체인 화자의 행위는 과거시제로객체인 아내의 행위 즉 간접인용에 의한 대화는 현재시제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내의 행위는 현재시제로 표현하여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하고화자 자신의 행위는 과거시제로 말하여 객관화하려고 한 것이다.

 

4. 수필에서의 시제 운용

 

수필을 창작할 때 시제의 결정은 제재로 삼고자 하는 상황을 먼저 떠올린 후 그 시간적 위치를 가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상황을 시간 축의 어느 위치에서 구현할 것이냐의 문제이다발화시즉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상황의 시간적 위치를 표현한다면수필은 과거시제 표현을 기본으로 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작가의 기억에 의존하여 지난날의 체험을 회고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수필을 창작할 때기준 시점에서 어떤 상황이 지닌 시간상의 앞뒤관계가 어떠한지를 따져가면서 시제 표현을 하면 큰 무리가 없다그러나 과거 사실에 대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모든 수필의 시제가 과거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필에서의 시제 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질 수 있다발화하는(글을 쓰는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과거시제를 기본 시제로 사용하는 경우상황이 벌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현재시제를 기본 시제로 사용한 경우과거시제를 기본으로 삼되 부분적으로 현재시제를 넘나드는 경우가 그것이다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필에서 시제 형식과 시간 지시 사이의 불일치를 허용하는 데 따른다그런 점에서 일반 시제와 문학 텍스트의 시제는 다르다문학 텍스트에서는 시제의 지시적 의미가 약화된다.

 

1) 발화시를 기준으로 하는 과거형

 

과거시제를 기본 시제로 선택할 때에는 해당 상황을 발화하는 시점 앞에 위치시키는 경우이다상황이 현재 순간 앞에 놓인 한 지점에 위치하는지 혹은 한 구간을 점유하는지또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체 구간을 차지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과거의 상황이란 과거에 국한된 상황 혹은 현재와 구별되는 지난 상황이라는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 것이다오직 과거 시간에 위치한 상황이라는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수필에서 과거시제는 말하기 위주의 요약 서술에서 많이 나타난다과거시제 표현은 과거-저곳에서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나 상황을 서술하는 것이므로상황을 바라보는 화자의 위치는 상황 외부로 가정되어 있다화자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그 상황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조감하는 초월적 시선을 갖추는 셈이다화자인 작가 자신마저도 과거-저곳의 거리를 두고 관찰되는 대상이 된다.

 

아침 출근길 고속도로가 주차장이었다. ‘쌀시장 개방 협상 국회 비준 반대’ 시위로 경찰과 농민 단체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방송을 들었다나는 그 사실을 알고 교통 체증에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오늘 출근이 늦어 오전 수업을 하지 못해도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크게 미안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느긋하게 기다렸다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에는 초겨울 아침 햇살이 청명하게 빛났다햇빛 속으로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허리를 굽혀 괭이질하는 형님과 마늘 논에 엎드려 김을 매는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갔다순간 나의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신재기, <형님이 보내 준 쌀 한 말>에서)

 

이 작품에서는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 단체의 시위로 교통 체증이 있어나고 있는 고속도로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과 그런 상황 속에서 떠오르는 사색을 전달하고 있다과거시제로 표현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저곳에서 있었던이미 확정된 사실을 전달하는 입장이다그러므로 해당 상황과 화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작품 내적 세계와 독자와의 객관적 거리를 만든다따라서 현재시제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과거시제로 표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객관적 신뢰성을 보증해 줄 수 있다수필이 주관적인 체험을 전달하는 것이기는 하나공감을 넓히기 위해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것처럼 표현하고자 한다면 경험을 역사화하여 과거시제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과거시제를 기본 시제로 선택한다는 것은 작가가 역사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2) 상황시를 기준으로 하는 현재형

 

수필을 창작할 때 현재시제를 기본 시제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현재시제 표현은 해당 상황의 발생 시점이 발화 시점과 일치함을 나타낸다제재로 삼은 어떤 상황이 실제로는 과거에 일어나서 이미 종결된 것일지라도 현재의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이다어떤 상황이 벌어진 그 시간을 발화의 시점과 의도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인데이러한 전략적 시제 표현을 독자는 매우 자연스럽게 수용한다수필의 경우현재형으로 전달하더라도 독자는 과거의 상황으로 인식한다.

 

녹슨 철문을 민다. ‘삐거덕’ 된 소리를 낼 뿐 꿈쩍도 않는다팔에 힘을 실어 힘껏 밀자 겨우 비켜선다.

마당에는 풀이 자욱하다놀란 잡초들이 수런거리며 일어서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가려던 내가 오히려 뒷걸음질이다자기들이 주인인 양 기세가 대단하다아무리 뽑아내어도 다시 태어나는 질긴 목숨일진대두 달여를 발걸음 하지 않았으니 오죽할까. (류재홍빈집에서)

 

이와 같은 현재시제 표현은 지금-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 자체를 재현해서 드러내 보이는 효과를 준다보여주기 방식의 표현에 더 적합하다는 말이다현재시제로 표현할 경우화자는 먼 거리에서 어떤 상황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 나타난다화자는 상황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자신의 행위를 그려낸다따라서 현재시제 표현은 독자가 글쓴이와 동일한 인상을 받거나 동일한 상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독자로 하여금 해당 상황에 몰입하게 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살아있는 현장은 역사적 상황이 아니며 객관적 상황도 아니다화자가 어떤 상황을 지금 이곳에서 직접 겪고 있는 것처럼 전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상황에 몰입하고 동화되도록 하여 긴장감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3) 과거의 현재화 또는 역사적 현재

 

수필 쓰기에서 과거시제 표현을 통해 지나간 어떤 상황을 전달하는 가운데 동일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현재시제로 이동시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과거시제를 기본 시제로 사용하되 부분적으로 현재시제로 표현하는 것이다.

 

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해 그늘이 마당에 드리우면동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소를 몰고 천마산 중턱에 오른다머슴애도 계집애도 할 것 없이아이들은 산허리 펀펀한 골짝에 도착하여 소고삐를 풀어준다소들이 저희끼리 어울리며 풀을 뜯는 동안아이들도 어울려 놀기 시작한다자치기도 하고가시나무 잎 한 줄기를 따서 손가락으로 퉁겨 잎사귀 먼저 따내기 시합도 한다편을 갈라 등말 타기 놀이를 할 때도 있고곰배팔이나 기마전을 하기도 한다.

놀이를 하다 보면 소들은 숲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그때서야 소를 찾아 산을 오르는 사이어느덧 천마산 꼭대기에 이른다아이들은 낙동강을 바라보며 길길이 고함을 치기도 하고숙연히 턱 괴고 앉아 끝도 없이 먼 나라까지 흘러가곤 한다그러다가 골짜기 사이로 눈부시게 서 있던 햇살이 지평선에 누우면소고삐에 매달려 산에서 내려온다칼국수로 저녁을 때운 아이들은지칠 줄 모르고 다시 뒷산에 모여 강강술래도 하고 진놀이도 하며 밤이 이슥토록 놀았다. (여세주고향에서)

 

이 작품에서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문장들은 현재시제 표현을 하고 있다현재시제 표현을 통해 독자는 상황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경험하게 된다과거의 현재화로 독자들은 훨씬 더 현장감을 느끼면서 읽게 된다이러한 전달 방식은 수필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흔히 확인되는 시제 변용이다고전소설에서는 현재시제로 줄곧 표현하다가 마지막 서술어만 과거회상시제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이러한 변용을 소설이론에서는 역사적 현재라고 한다.

동일한 상황을 전달하면서 시제를 통일시키지 않았다고 하여 시제표현의 오류라고 할 수 없다이러한 시제 변용은 과거시제의 단순한 대용물이면서현장감이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한 전략적인 시제 표현이다작가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표현 방식의 책략인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이때에 활용된 현재시제를 시제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5. 문학적 기교로서의 시제 표현

 

수필은 지나간 시간에 겪었던 경험을 표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과거시제를 기본으로 하는 장르다그러나 발화시를 기준으로 하는 과거형뿐 아니라 상황시를 기준으로 하는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과거시제를 기본으로 하되부분적으로 과거의 현재화에 의한 시제 이동을 꾀할 수도 있다실제로 수필의 시제 표현은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그러므로 수필의 제재에 따라 기본 시제를 달리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몇몇 작품의 실상이 그렇다 하더라도 수필의 제재와 시제는 필연적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제재가 수필의 시제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수필 쓰기에서 시제 표현은 문법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문학적 기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어떤 시제로 대상을 기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문법적 선택이라기보다 문학적 표현 효과에 따른 선택인 것이다기대하는 효과에 따라 시제의 선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특히 수필에서 현재시제의 경우그 지시적 의미는 상실되고 과거형으로 읽혀지는데이는 수필의 시제가 문학적인 표현 기교로서 구실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이런 현상은 과거시제로 표현된 소실이 현재의 상황처럼 읽혀지는 것과는 상반된다.

한국어의 특성상 시제 표현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문맥 속에서는 물론이고 문장 속에서도 절대시제와 상대시제가 혼용되므로 한국어의 시제는 과거와 비과거를 수시로 넘나든다한 편의 수필 속에 두 가지 시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은 한국어 시제 표시의 이러한 특성에 따른 것이다그러므로 수필에서의 시제 혼용을 혼란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시제 활용의 문법적 오류는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서의 수월성을 감안하고 문학적 효과를 고려하여 기준 시점을 명확히 설정하고 가급적 일관된 시제로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제 표현 방법이라 여겨진다.

(수필미학 통권6, 2014 겨울)

 

여세주

문학평론가,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주요 저서로 심각하지 않은 심각성의 미학논리적 글쓰기 이렇게 하면 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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