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기 좋은 때 / 김정화

 

 

전염병으로 칩거가 길어지고 있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열리던 각종 행사도 취소되고 사적 모임과 문학 세미나도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일상에 제동이 걸렸으니, 주변의 문인들은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글밭의 수확을 올리는지 안팎으로 조용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시들한 일상에 트로트 음악이 위안과 용기를 준다. 그동안 신파적이고 천박한 중년 음악이라는 선입견과, 왜색적이며 촌스럽다고 천대받던 일병 뽕짝 음악의 품격이 놀랍게 달라졌다. 트로트맨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숨겨진 명곡들이 터져 나오고 성악과 마술, 태권도와 에어로빅. 삼바춤과 폴댄스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비인기 종목의 부상이 반갑고 젊은 가수들의 노력과 열정이 더없이 가상하여 평소 텔레비전을 가까이하지 않던 나도 어느새 그들의 찐팬이 되었다.

 

한국인의 신명의 역사는 대단하다. 고대 제천행사를 하면서부터 춤과 음악으로 신명을 풀어내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애도 우리 민족은 한번 놀기 시작하면 술 먹고 고기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사흘 밤낮을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흥취가 오늘날 대중음악과 접목되어 트로트라는 가장 한국적인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트롯맨들의 열정과 퍼포먼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들에게 유명 피디가 몇 가지 애정 어린 충고를 했다. 롱런의 비결은 먼저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삶의 규칙을 정해 건강을 지키고 이미지 관리를 잘하라는 뜻이겠다. 다음으로 끝없는 연습을 해야 함을 강조했다. 천하의 조용필도 연습을 하니 잘 부른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에게서 습작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 또한 좋은 노래를 많이 들을 것을 권고했다. 역시 진정한 글쟁이가 되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때 희수를 넘긴 노 작가 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텔레비전 앞에서 웃음과 눈물짓고 감탄과 찬사를 보내느라 서너 달 리모컨만 부여잡고 있을 때, 그분은 한 권의 책을 묶었다고 알려왔다. 혼신을 다한 트롯맨들에게 위로받은 감동을 이백여 쪽의 글로 엮어낸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대재앙 속에서도 《데카메론》을 집필한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떠올랐다. 불행을 맞닥뜨리게 되어도 체념하거나 굴하지 않으며, 맞서 싸워 지혜로 살아남는 인간상들이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작가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현실의 흐름을 포착하여 언어의 지문을 찍어내는 일이 작가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안방팬으로만 머물지 않고 펜으로써 화답한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정신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문인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문학하기 좋은 때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트롯맨들의 열정이 세대의 벽을 허물고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듯이, 작가라면 이 칩거기에도 부지런히 글밭을 가꾸어야 하리. 부디 훈풍이 불어 백지의 이랑마다 글꽃이 만개하길 기원하면서.